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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아침에] 눈물의 고희연(古稀宴)

정관영 공학박사·우석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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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7.11.19 16:16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정관영 공학박사·우석대학교 겸임교수

 가을 날씨치고는 회색하늘이 음산하기만 하다. 퇴근 무렵 갑자기 지인의 고희연 초대를 받고 우리 동료는 의기투합하여 대전으로 향했다. 고속도로상의 차창에는 물 폭탄이라도 쏟아 붓는 듯 앞을 분간하기 어렵다. 고투 끝에 당도한 고희연회장은 가족과 그룹 계열사 임직원이 함께하고 있었다.

100수 시대에 고희연의 자리는 임직원들을 격려하는 훈훈한 자리였다. 계열사대표들은 이구동성으로 K회장의 고희연을 축하하는 덕담을 들려주었다. 얘기를 듣는 내내 회사경영을 위해 리더의 고충이 얼마나 클까를 생각하며 문득 현대건설을 떠올렸다. 세계적 기업 현대건설도 무수한 파고를 견디고 고희를 맞았기 때문이다.

광복 직후인 1947년 창립해 6·25 전쟁의 폐허 위에 도로를 닦고 건물을 세우는 것을 시작으로 올해 창립 70주년을 맞은 것이다. 현대건설이 국내 건설사 중 역사가 가장 오래된 기업은 아니다. 그러나 창업자인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이 집념과 뚝심으로 국내를 대표하는 건설사로 키워냈다. 전후 복구사업으로 출발한 현대건설은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토목 분야를 주축으로 전기·플랜트·건축 등 전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대했다.

소양강 다목적댐과 1966년 착공 당시 세계 최대 규모였던 한국비료 울산공장, 단양 시멘트 공장 건설 등은 현대건설이 종합건설업체 1위로 성장할 수 있게 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현대건설은 1960년대 후반 ‘국가의 대동맥’으로 불린 경부고속도로 건설의 주역이기도 하다. 이 사업의 성공으로 전국은 일일생활권으로 연결됐고 자동차 산업과 토목기술은 비약적인 발전을 할 수 있었다.

서산 간척사업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도전이었다. 1970년대 인구 밀도가 높은 국가 중 하나였던 우리나라에 ‘국토 확장’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현대건설은 서산 간척사업을 통해 여의도 면적의 30배, 남한 면적의 1%에 달하는 국토를 새로 만들어냈다. 당시 공사 막바지에 물살이 너무 빨리 방조제 물막이 공사가 중단되자 고(故) 정주영 회장은 대형 폐유조선으로 물 흐름을 막아 놓고 현장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흙이나 버력(잡돌)으로 물을 막는 독특한 방법을 제안해 공사에 성공했다. 훗날 ‘유조선 공법’ 또는 ‘정주영 공법’으로 불리게 된 이 기술은 해외에서도 각광을 받았다.

1965년 태국 고속도로 공사(522만 달러)로 해외 건설시장에 첫발을 내디딘 이후 지금까지 해외 59개 국가에서 821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총 해외수주액은 1227억 달러로 국내 1위다. 1970년대에는 중동 특수를 맞아 오일달러를 벌어들이는 데에 견인차 역할을 했다. 1976년 ‘20세기 최대의 역작’으로 불리는 사우디 주베일 산업항 공사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면서 글로벌 건설 시장에 이름을 알렸다.

이후 2005년에 완공한 이란 사우스파 4·5단계는 국내 건설사의 해외 플랜트 수주 사상 단일 규모로 최대(16억 달러) 공사로, 이를 수행하면서 숱한 기록을 남겼다.

현대건설의 우수한 기술력과 사업 수행 능력에 감동한 당시 이란 하타미 대통령이 “사우스파 전체가 완공될 때까지 현대건설은 절대 이란을 떠나선 안 된다. 이곳에 남아 나머지 공사도 모두 수행해 달라”며 눈시울을 붉혔던 일화는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지 않은가.

상념에 잠겨 있을 때 오늘의 주인공인 K회장이 등단했다. 처음에 시작한 태평연와에서는 많은 흑자를 보았지만 한일세라믹에서는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고 토로하며 울먹이다가 소리 내어 울었다. 고희연회장은 숙연했다. 모두가 함께 눈시울을 적셨다. 주력사업인 한일 세라믹을 지키기 위해 부동산을 모두 처분했단다. 회사가 어려워 직원들에게 봉급을 주지 못할 때는 재원이 마련 되는 대로 제일 먼저 말단 직원부터 봉급을 지급했다고 하며, 불평 없이 따라주고 믿어준 직원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고 격려했다.

영웅은 몇 줄 소리 없는 눈물을 흘릴 뿐이라고 말한다. 참고 눌려 가슴에 묻으면 소리는 눈물로 변해 눈가에 맺힌다. 직원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서로 포옹하는 환호성 속에서도 홀로 눈물을 떨궜다.

K회장의 모습은 환호하는 주위 사람들과는 분명 달랐다. 평소 특유의 무덤덤한 모습과도 딴판이었다. 가까운 임직원까지도 깜짝 놀랐다고 하니 예사로운 눈물은 아닌 것 같다. K회장은 자상하면서도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더욱이 눈물을 흘린 뜻밖의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간의 사업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 준다. ‘사업은 직원들의 삶의 터전이다’라고 말하는 그의 언행에서 눈물의 의미를 알고도 남음이 있겠다. 그런 K회장에게 고희는 남다른 감회로 다가왔을 것이다. 한일앤택을 비롯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내진기업 태평피엔이도 함께 성장시키며, 힘들었던 기업경영을 끝내 지켰다는 감격이 한꺼번에 밀려와 눈물샘을 터뜨린 것이다.

K회장은 우리 그룹은 중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 우리나라 5개국 직원들이 근무하기 때문에 글로벌 기업이라고 위트를 날려 한바탕 폭소를 자아냈다.

K회장의 고희연에서 흘린 눈물은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직원들에게 감동과 신뢰를 주었다. 그는 분명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 경제 리더가 되리라 믿는다.

정관영 공학박사·우석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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