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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청렴사회의 길은 아직 먼가?

이상호 천안아산경실련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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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7.10.22 18:56
  • 기자명 By. 충청신문
 
올해 가장 귀가 가려운 사람은 대법관과 국민권익위원장을 지낸 김영란(金英蘭, 1956년 11월 10일~)씨일 것이다. 그분이 국민권익위원장으로 있던 시절 청렴대한민국을 위해 소위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을 제안하였고, 부패청산을 향한 국민염원은 우여곡절 끝에 미흡하지만 국회를 통과하여 시행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법을 놓고 논란이 많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전국한우협회·한국인삼협회 등, 한국농축산연합회 소속 농민단체들이 개최한 ‘김영란법 시행 1주년 토론회’(9월 26일)에서 “농축수산물의 ‘소비절벽’이 심각한 수준이다. 농축수산물은 설이나 추석 명절에 60~70%가 판매되는데 김영란법으로 농축수산인들이 벼랑 끝에 서게 됐다. 꽃은 뇌물이 아니다. 마음의 선물이다, 한우고기 소비가 30% 가까이 줄었다. 한우식당들의 잇따른 폐업으로 한우고기 소비기반이 급격히 무너지고, 상대적으로 값싼 수입 쇠고기의 국내시장 잠식이 가속화되고 있다. 한꺼번에 선물세트 100~200개를 주문하는 큰 손들이 자취를 감추었다”고 하면서 ‘즉시 법을 개정, 김영란법 적용대상에서 농축수산물을 제외하라’며 기습 시위도 벌였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김영란법 개정안은 모두 15건, 그중 10건은 적용대상을 좁히거나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고, 농축수산물을 제외하자는 법안은 6건이다. 자유한국당 ‘김영란법 대책 태스크포스(TF)’ 팀장인 이완영 의원(경북 칠곡·성주·고령)은 “김영란법 적용대상에서 농축수산물은 제외해야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필자는 이 내용을 보면서 농축수산인들 피해가 큰 것은 안타깝지만, 우리나라가 얼마나 청탁과 접대로 얼룩진 부패사회였는가를 보여주는 것 같아 한숨이 나왔다. 
 
지금 우리 사회는 ‘장사가 잘 안되면 김영란법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강하다. 2년 전 개업 때부터 가끔 가던 칼국수집이 있었다. 개업 때 ‘자주 와 달라’는 주인에게 소주 ‘처음처럼’을 시키면서 덕담으로 “처음처럼 한결 같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런데 2년 정도 지나면서 반찬이 부실해지고, 청결도 전만 못하고 친절도 부족해졌다. 지난 여름 그 집에 갔을 때 손님이 거의 없었다. 주인은 대뜸 김영란법 타령을 했다. 나는 “7000원짜리 칼국수도 대단한 접대의 대상인가. 모든 게 김영란법 탓이구나”라고 생각했다. 그 후 난 그 집에 가지 않는다. 
 
국제투명성기구의 조사에 의하면 한국의 부패지수(CPI)는 2014년 43위로 2004년부터 줄곧 40위권이었다. 2017년 한국의 부패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중 29위였다. 선진국은 부패 방지를 위해 오래전부터 선물 수수에 매우 엄격하다. 미국은 1회에 20달러(약 2만3000원) 연간 50달러(약 5만7000원)이내에서, 영국은 25파운드(약 4만2000원)에서 30유로(약 5만원)이내에서, 독일은 기관별로는 25마르크(약 3만2000원)이내이며 특히 법무부는 5마르크(약 6500원)이내로 엄격하다. 싱가포르는 어떠한 금품이나 향응도 일체 금지되어 있다. 
 
농축수산인들의 애로를 안다. 그러나 이제 소비 패턴도 바뀌었다. 경영합리화와 정부 지원 확대로 생산단가를 낮추고 ‘실속형·소포장 상품 개발’과 품종 다양화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선물이나 접대가 아니라 스스로 사서 먹고 즐길 줄 아는 국민 문화 성숙의 시대로 바꾸는데 국민 정부 모두가 동참하여야 한다. 
 
김영란법에서 농축수산물을 제외하는 것은 ‘김영란법 물타기’가 될까 두렵다. 법률 격언에 ‘예외 없는 법은 없다’고 하지만 예외가 많거나 잘못되면 법은 무용지물이 된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선물로 보내온 물건은 아무리 작아도 은혜로 사랑하는 마음이 맺어져 편애하게 된다 : 饋遺之物 雖若微小 恩情旣決 私已行矣(목민심서 율기육조. 청렴)”고 했다. 비록 작은 선물이지만 때로는 대단한 위력을 발휘하며,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 간에는 기억해 달라는 징표가 되어 뿌리치지 못할 끈이 될 수 있다. 부패 없는 사회를 향하여 어렵게 만든 김영란법을 지키고 다듬으며 모순을 제거할 일이지, 특정 업계를 제외하는 일은 청렴사회의 길을 포기하는 일이 될까 두렵다. 청렴한국의 길은 아직 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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