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세상 읽기] 한글 문해

이종구 학부모뉴스24 편집국장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입력 : 2017.10.18 15:59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이종구 학부모뉴스24 편집국장
훈민정음(訓民正音)해례(解例) 정인지 서(鄭麟趾 序)에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한글)을 창제하고 그 배움에 대한 “지혜로운 사람은 하루아침 안에 깨칠 것이요, 어리석은 사람도 열흘 안에 배울 수 있다”라는 말이 있다. 인류 역사상 3년간의 기간에 만든 최초이며 최고의 문자인 한글에 대한 가치를 충분히 대변하는 말이라 할 수 있다.
 
훈민정음 예의(例義) 편에는 초성, 중성, 종성의 소릿값에 대한 예를 알기 쉽게 풀이하고 있다. 우리가 책에서 익히 보아온 사진처럼 “ㄱ牙音如君字初發聲 -ㄱ은 君이라는 글자를 읽을 때 소리 나는 첫소리와 같다” 라는 말은 우리 한글이 소리글자라는 성격을 명확히 규정짓고 있다. 물론 ㄴ, ㄷ… 등 모든 초성 소릿값을 적절한 글자의 읽기로 설명하고 있다. 물론 중성도 “ㅏ如覃字中聲 - 아는 담자를 읽을 때 가운데 소리와 같다”라고 설명하며, 종성은 초성을 다시 쓰되 그 소릿값을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적절한 보기와 설명으로 어리석어도 열흘이면 깨우칠 수 있다고 한 한글이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초등의무 교육을 실시한 지 70년이 넘는 지금도 한글 문해교육이 교육 현장의 과제이다. 일부교육청에서는 한글 문해교육 전문가 양성, 한글 문해교육을 위한 초등 1학년 담임교사 연수, 초등 1학년 한글 문해 상황 전수 검사 등 갖가지 시책을 펴며 한글 문해 교육에 힘을 쏟고 있다. 열흘이면 충분하다고 한 세종대왕의 바람은 어디로 가고 한글 문해 교육이 문제가 되고 있을까?
 
잠깐 우리 교육 현장-초등 1학년 과정을 되돌아보면, 입학한 초등 1학년 학생들의 학교생활의 가장 큰 과제가 ‘받아쓰기’이다. 일부 출판사에서는 ‘받아쓰기 단계장’이라는 것을 판매하고 있다. 학교에 따라서는 ‘읽기’ 교과서의 낱말과 문장을 10개 정도씩 묶음을 만들어 학생들이 집에서 연습하고 이튿날 받아쓰기를 하기도 한다. 잘하는 학생은 괜찮지만, 한두 개 틀리기라도 하면 어린 학생들이 받는 강박은 심하다. 어머니들이 더 난리이다. 밤새 어머니는 불러주고 학생은 받아쓰고, 그렇게 연습하고 결과가 좋지 않으면….
 
한글은 인류역사상 최고의 소리글자이다. 한글 해득의 첫걸음에서 곁길로 비켜 간 것이 없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필자의 우둔함인지는 몰라도 우리 교육 현장에서 소리글자를 그림글자로 가르치지는 않는지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학교’라는 낱말을 학교라고 계속 쓰는 것은 암기가 되어 쓸 수 있을지는 몰라도 학교라는 소릿값을 익혀 다른 글자를 읽는 전이 효과는 없지 않을까? ‘학’을 ‘ㅎ+ㅏ+ㄱ’로 낱소리를 구분하여 알게 하면 세종대왕식 학습이 되지 않을까?
 
필자가 꽤 오래전 교직에 있을 때, 초등 1학년을 담임하며 한글 해득에 많은 고민을 했었다. 그러다가 훈민정음을 보고는 크게 반성을 했었다. 소리글자를 그림글자로 가르친 어리석음이었다.
 
그래서 3월 초 입학한 학생들에게 하루에 한 낱자씩 소릿값과 이름, 필순을 익히도록 했다. 1학년 3월 교육과정은 학교생활 적응기이다. 그 과정 속에 한 낱자를 하루에 익히도록 하니 학생들 부담도 적고, 모든 학생들이 한글 낱자를 이해하게 됐었다.
 
결과는 필자 자신도 예측 못 한 놀라운 현상으로 나타났다. ‘독감 예방’ 포스터 앞에서 학생 하나가 “드오윽 그아음 여이 브아응”하고 읽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 잘 읽는구나. 좀 빨리 읽어볼까?” 하니 그 학생이 “드오윽,,드옥, 독”하고 읽는다. 바로 세종대왕식의 방법이 아니었을까? 그 후로는 필자가 1학년을 맡은 경우 단계장을 사용하지 않았다. 낱자를 익힌 후에 낱말을, 낱말을 익힌 후에 문장을, 문장 구성을 익힌 후에 문단 구성을 체계적으로 지도하며 각각의 짜임새를 구조적으로 지도하니 1학년을 마칠 즈음에는 9문장 3문단의 논술문도 짓게 된 경험을 하게 됐었다. 
 
강원도교육청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학부모 86.6%가 1학년 단계장과 알림장 쓰기 반대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들에게 많은 스트레스를 주는 받아쓰기 단계장, 폐지되길 바라는 부모들의 마음이다. 이에 따라 강원교육청은 1학년 초 알림장과 받아쓰기를 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부디 세종대왕식 문해 교육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한글날이 긴 추석 연휴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늘 보아온 일이지만 올해도 한글날 전후로 ‘한글사랑’이라는 말이 몇 번 반짝 등장하고 지나갔다.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에서 아멜 선생님의 가르침이 새삼스럽다. “말과 글을 잃지 않으면 감옥 안의 죄수가 옥문 열쇠를 갖고 있는 것과 같다”는.
 
이종구 학부모뉴스24 편집국장
 
저작권자 © 충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충청신문기사 더보기

하단영역

매체정보

  • 대전광역시 중구 동서대로 1337(용두동, 서현빌딩 7층)
  • 대표전화 : 042) 252-0100
  • 팩스 : 042) 533-7473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황천규
  • 법인명 : 충청신문
  • 제호 : 충청신문
  • 등록번호 : 대전 가 00006
  • 등록일 : 2005-08-23
  • 발행·편집인 : 이경주
  • 사장 : 김충헌
  • 「열린보도원칙」충청신문은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 노경래 (042-255-2580 / nogol69@dailycc.net)
  • Copyright © 2024 충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ilycc@dailycc.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