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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으로] 문화의 광장 ‘아고라 (Agora)’

한기연 시인. 평생교육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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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7.10.16 16:29
  • 기자명 By. 충청신문
▲ 한기연 시인. 평생교육강사
열흘간의 황금같은 연휴에 집에서 추석특선영화를 빠짐없이 보면서 밤낮이 바뀐 시간을 보냈다. 연휴가 끝나고 다음날은 긴 연휴의 후유증으로 하루 종일 힘들었다. 일상으로 제 자리를 찾는 동안 벌써 10월의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토요일 아침, 재료가 가득 들어 있는 캐리어를 끌고 집을 나섰다. 오늘과 내일 이틀에 걸쳐 열리는 ‘북(BOOK)페스티벌’ 체험코너를 위해 며칠 전부터 밤늦도록 준비를 했다. 이른 시간이지만 오전 10시부터 열리는 행사 준비로 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오늘 행사는 J군에서 두 번째 열리는 ‘아고라 북(BOOK)페스티벌’이다. 처음 행사제의를 받고 ‘아고라’라는 이름이 귀에 쏙 들어왔다. 
 
‘아고라’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인 폴리스(polis)에 형성된 광장이다. 이곳에서 민회(民會)와 재판, 상업, 사교 등의 다양한 활동으로 시민들의 일상생활의 중심이 되면서 ‘사람이 모이는 곳’이나 ‘사람들의 모임’ 자체를 뜻하게 되었다고 한다. 
J군에서 군립도서관 주변으로 열리는 ‘아고라 북(BOOK)페스티벌’에 참가해 보니 일반적인 독서축제와는 사뭇 달랐다. 많은 사람들이 책을 중심으로 모여서 공연도 즐기고 작가와의 만남을 콘서트처럼 진행하며 곳곳에 즐길 수 있는 체험거리를 펼쳐 놓았다. 책에 대한 딱딱한 이미지와 거부감을 줄이고 놀이처럼 쉽게 펼쳐 볼 수 있는 판을 벌려 놓은 것이다. 어린 자녀를 동반한 젊은 부부를 많이 볼 수 있었지만 어르신들을 위한 이혈체험도 있었다.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도록 옥상 작은 음악회, 영화상영, 아나바다 장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었다. 
 
평면과 활자로만 이루어진 책이 아니라 팝업 북에서는 공룡이 발톱을 드러내고 달려 들 것만 같았다. 한지 등에 동물캐릭터를 만들면서 이야기를 구성하고 코스모스꽃잎은 손수건에 가을빛을 물들였다. 아이스팩 안의 젤은 방향제로 재탄생되었다. 동화책을 읽어 주는 소방관 아저씨들을 똘망똘망한 눈으로 보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도 보였다. 무생물인 책을 중심으로 문화적인 요소를 가미해서 사람들이 거리낌 없이 다가와 즐기는 축제의 장이 되었다.
 
체험코너를 진행하느라 축제를 충분히 즐길 수는 없었지만 화장실을 가면서 보게 된 도서관 1층은 쉼터 같은 느낌을 주었다. 긴 탁자에는 갖가지 꽃차가 투명한 유리병 안에서 빛깔 곱게 우러나고 있었고, 사람들이 자유롭게 앉아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책은 책꽂이에 꽂혀 있어야 한다는 편견을 깨고 마차모양의 북(BOOK)트럭에 책이 꽂혀 있고, 아이들이 그 안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시끌벅적 소란스런 가운데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우리가 자랄 때만 해도 도서관에서는 조용히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숨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하고 드나들 던 곳이다. 이제는 많은 도서관이 시대의 흐름을 읽고 남녀노소 누구나 사랑방처럼 찾을 수 있는 문화의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도서관만 해도 온돌로 된 영유아 방이 있어서 엄마가 아이에게 소리 내어 책을 읽어 주기도 한다. 또한 푹신한 소파도 있어서 편안한 자세로 책을 읽을 수 있기도 하다.
 
요즘 곳곳에서 ‘북(BOOK)페스티벌’이라는 이름으로 축제가 열린다. 단순히 읽고 지식을 쌓는 책의 의미보다는 책이 주는 다양한 감성을 느끼고 그것으로부터 표현되어지는 문화를 담고자 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오래된 문구를 앞세워 ‘책을 읽자’고 공허한 외침을 계속하기 보다는 스스로 즐거움을 찾아서 모이는 광장이 되고자 하는 변화이다. 
 
썰물처럼 사람들이 빠지고 축제가 끝나간다. 그러나 ‘아고라’는 그 자리에 남아 있다. 나는 지금 문화의 중심에 서서 깊어가는 가을을 만끽하며 오랜만에 하늘을 쳐다본다.
 
한기연 시인. 평생교육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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