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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포럼] 드라마에서 시작된 오지랖

김상균 다트기획 대표·전 대전문화재단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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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7.10.12 16:09
  • 기자명 By. 충청신문
▲ 김상균 다트기획 대표·전 대전문화재단 사무처장

단군 이래 최장의 긴 추석연휴를 보냈다. 오랜만에 함께했던 친지들이 각자의 삶의 터전으로 돌아간 후에도 몇 날의 꿀 같은 연휴가 더 있었다. 평소 시간이 있어도 방구들 신세를 지는 체질이 아니지만 환경의 동물이라는 걸 실감하듯 여유로움을 즐겼다.

연휴 중 어느 날이었다. 하루 종일 전편을 재방송해주는 드라마에 시선을 뺏기고 있는데 군대 생활하는 모습이 나왔다. 갓 입대한 신병이 무엇인가 잃어버린 탓에 공동책임을 물어 소대원 전체가 완전군장을 하고 연병장 100바퀴를 돌고 난 후 벌어지는 일들로, 주인공이 남자들 세계를 이해해 가는 장면을 코믹스럽게 그린 장면이었다.

하는 일 하나 없어 쓸모없게 보였었던 왕고참이 유일하게 낙오하지 않고 얼차려를 받았고, 자신을 감싸주는 배려에 선임다운 리더십을 느끼며 존경심이 발로한다. 그리고는 왕고참의 완전군장을 정리해주다가 그 안에서 나오는 꾸겨진 신문지 덩어리들을 보며 어이없어 하는 반전을 일으킨다.

이해가 안 되는 독자들을 위해서 보충 설명하면, 군인의 완전군장이란 전시에 필요한 물품들을 군장에 넣고 모포(담요)를 말아 군장 테두리를 두른다. 정확하다고는 볼 수 없지만 당시에 그렇게 꾸린 완전군장의 무게는 대략 45㎏이 넘는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왕고참은 군장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필요한 물품 대신 신문지를 부피 있게 구겨 군장을 채우는 요령을 핀 것이다. 군장은 껍데기만 있는 셈이 된다. 아마도 제대로(?) 된 군대 생활을 하신 독자들이라면 대부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지 않을까 싶다.

필자는 최전방에서 군대 생활을 했다. 이름만 대면 이구동성으로 “고생했겠다”라고 할 만한 X골부대였다. 매일 훈련과 작업이 반복되는 일상 중에 한 달이면 불시에 걸리는 비상이 적어도 세 번 이상이었다. 전시를 대비하여 진지 투입 직전까지의 훈련을 반복해서 실시하는 것이었다.

매트리스 등 야전에서 사용하지 못하는 큰 비품들은 한 곳에 적재하고 야전에서 필요한 물품들로만 군장을 꾸려 연병장에 집합했다. 최전방이었기에 실탄이 들어 있는 탄창 10개를 지급 받아 허리춤에 찼고, 방독 두건이 장착되어 있는 방독면을 허벅지에 두르는 것이 완전군장에 포함되었다. 방탄모가 전군에 보급되지 않은 시기였으니, 알철모까지 쓴 완전군장의 무게는 경험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는 실감이 나지 않을 것이다.

비상이 걸리면 왕고참들의 동작은 참 굼떴다. 자신들만의 군장을 꾸리고 내무반의 물품 적재와 정리는 후임들의 몫이었으니 당연지사. 설상가상으로 그들의 군장과 탄창은 비었고 방독면 주머니에는 건빵이 들어 있기가 일쑤였다. 드라마에서처럼 말이다.

군복무 중 실제상황이 발생했다가 해제된 사건이 있었다. TV에서는 실제상황이라며 공습경보가 울렸고, 부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필자는 그때 훈련의 중요성과 고참병들의 리더십에 감탄하며 대한민국 군인의 믿음직함에 우쭐했던 경험이 있다. 고참병들이 솔선수범하며 능동적으로 움직였고 동작 또한 매우 민첩했다. 진지투입 전까지의 모든 상황이 일사분란했다. 연병장에 집합할 때까지의 시간은 훈련 비상시 걸렸던 시간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단축되었다.

고참병들은 이미 훈련에 익숙해 있었지만, 훈련 비상시에는 요령을 피웠던 것이라는 것을 몸으로 느꼈다. 연병장에 집합한 후 상황은 해제되었고 대대장의 훈시가 있었다. 멋지게 짧았던 훈시. “역시 제군들은 믿을 만하다!” 군령에 의거 술을 마실 수 없는 지역이었지만, 그 날 저녁 대대장 직권으로 각 소대마다 막걸리가 배달되었다. 평소의 훈련과 경험 많은 왕고참들의 위대함을 깨달은 날이었다.

친구들의 아들 또래들이 군복무를 많이 하고 있다. 대부분 사병으로 더러는 장교로. 독자들 주변 지인 역시 복무를 하고 있거나 전역한 젊은 또래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비록 편견일 수 있어 지탄을 받을지도 모르지만, 몇몇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들을 나열하며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얼마 전 전역한 친구 아들은 자신이 군인이지만 선임이 후임들 눈치를 봐야 하는 우리나라 군대가 정말 걱정된다 하고, 장교로 복무하는 친구 아들은 사병 엄마들이 부대로 전화해서 아들 안부를 묻는 데 일일이 대응하기가 바쁠 정도라고 한다. 나머지는 생략한다. 필자만이 듣는 말인지 독자들에게 묻고 싶다. 글쎄, 이런 상황이 바람직한 것일까?

김상균 다트기획 대표·전 대전문화재단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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