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목요세평] 홍콩에서의 라면 한 봉지

서경홍 충남대 인문역량강화(코어)사업단·철학박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입력 : 2017.10.11 16:27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서경홍 충남대 인문역량강화(코어)사업단·철학박사

홍콩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출장 끝에 열흘간의 연휴가 이어지는 바람에 출발 전에 할 일이 많았다. 가기 전날 야근까지 하면서 일을 마무리 하고 밤늦게 퇴근하여 짐을 꾸렸다. 짐이라고 해봤자 옷가지와 세면도구가 전부였다.

제법 큰 캐리어가 텅텅 비었다. 곧장 편의점으로 가 라면과 즉석카레, 이것저것 주워 담아왔다. 해외에 나갈 때 먹거리를 전혀 챙기지 않는 나를 보고 아내가 “웬 라면?” 하며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홍콩의 날씨는 시월이 코앞인데도 한국의 삼복더위보다 더 후텁지근했다. 토마스 만의 '베니스에서의 죽음'에 나오는 시로코 열풍이 아마도 이러했으리라. 홍콩에서의 업무일정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금년에만 두 번째 홍콩방문이다. 지난 겨울에 충남대학교 코어사업단과 홍콩한인상공회의와 MOU를 체결하기 위해 왔었고, 이번엔 인턴학생들을 살펴보고 격려하기 위해서였다.

충남대학교 코어사업단은 대학인문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사업단으로 지난해부터 시작했다. 대전·충남 지역에서는 충남대학교가 유일하게 선정되어 기초학문심화, 글로벌지역학, 인문기반융합전공, 대학자체모델 등 4개의 커다란 분야에서 학문후속세대를 지원하고 해외언어문화체험, 국내·외 석학초청학술대회, 강의교재개발, 각종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홍콩 인턴프로그램은 글로벌 인재양성을 위한 산학협력프로그램으로 지난 7월 초에 시작하였다. 홍콩한인상공회 산하 기업들이 모두 20명의 인턴을 모집하였는데 그 중 9명이 충남대학교 학생들이 합격하였다. 처음의 시도였지만 큰 성과였다.

실무자인 나로서는 기쁨 이전에 이들이 해외 인턴십을 성공적으로 마칠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책무였으며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우선 단톡방을 만들어 항상 긴밀한 연락을 주고받았으며, 그들의 어려움을 해결주려고 노력하였고, 때로는 선생으로서, 때로는 아버지 같은 마음으로 격려하고 위로해주었다.

겉으로 보기에 홍콩에서 해외인턴 생활이 화려하고 좋아보이기도 하겠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은 점도 많다. 경험과 연륜이 적은 청년들이 가족의 품을 떠나 혼자서 6개월 동안 직장생활은 쉬운 것이 아니다. 도전정신과 끈기, 그리고 자기한계를 극복하지 않으면 중도포기하기 일쑤이며 실제로 그런 일도 종종 있다고 한다.

학생들이 근무하는 9개의 기관과 기업을 일일이 방문하는 일정은 도착 당일 오후부터 시작되었다. 호텔에서 짐을 풀고 옷을 갈아입자마자 한국광광공사 홍콩지사와 홍콩타임즈, 그리고 SL 엔터프라이즈를 방문하였다.

기관대표들이 반갑게 맞아주었고 인턴학생들 모두 건강하고 밝은 모습이었다. 대표들은 하나같이 “충대 학생들은 역시 다르다. 성실하고 예의바르며, 학습능력도 뛰어나다”고 입을 모아 칭찬하였다.

무더위에 이곳저곳 이동하느라 셔츠가 땀에 범벅이 되었지만 그런 것과 아랑곳없이 나도 기쁘기만 했다.

둘째 날의 일정은 더 빡빡했다. 홍콩한인상공회와 Extrans Holdings 등 여섯 개 기업을 둘러봐야했다. 구룡의 북쪽인 츄엔 반에서 시작하여 지그재그로 이동, 홍콩 섬까지 오는 경로였다.

홍콩 타임즈에 근무하는 인턴학생이 길안내를 맡아 주었다. 지하철과 택시를 이용하여 동분서주하며 각 회사를 방문하였다. 무역, 제조, 금융, 컨설팅 등 업종이 모두 다른 분야에서 우리 인턴들은 열심히 근무하고 있었다. 기업대표들 역시 하나같이 성실하고 열심히한다는 칭찬이었다. 인턴학생들은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학교의 명예를 위해서 적지 않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인정을 받고 있었다.

그날 저녁 학생들과 모임이 있었다. 학생들의 의견을 물어보니 한국음식을 먹고 싶다는 게 중론이었다. 아리랑이란 한국음식점에서 그들은 만났다. 메뉴는 삼겹살. 홍콩에서 삼겹살은 그들에게 특별한 메뉴였다.

인턴이 먹기엔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그들은 삼겹살이란 고기 자체가 아니라 고향을 맛을 느끼고 싶었을 것이다. 가격이 워낙 비싸 맘껏 사주질 못해 아쉬웠다. 나의 캐리어에 가득 채워 간 라면을 그 자리에서 나누어 주었다. 모두들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좋아했다. 한 여학생은 등을 돌리고 찔끔거렸다. 라면 한 봉지가 뭐라고….

내 마음도 짠했다. 최소한의 생활비로 열악한 주거환경을 견뎌내며 정규직 못지않은 업무를 하면서 자기극복과 학교의 명예를 위해서 열심히 생활하는 학생들 앞에서 내가 홍콩에서 흘린 땀만큼이나 기쁨과 애틋함이 눈물이 마음속에 흘렀다. 이들을 보며 인문학도들은 더 이상 ‘문송(인문학도라 죄송합니다)’이 아니라 ‘문자(인문학도라 자랑스럽습니다)’라고 말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서경홍 충남대 인문역량강화(코어)사업단·철학박사 

저작권자 © 충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충청신문기사 더보기

하단영역

매체정보

  • 대전광역시 중구 동서대로 1337(용두동, 서현빌딩 7층)
  • 대표전화 : 042) 252-0100
  • 팩스 : 042) 533-7473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황천규
  • 법인명 : 충청신문
  • 제호 : 충청신문
  • 등록번호 : 대전 가 00006
  • 등록일 : 2005-08-23
  • 발행·편집인 : 이경주
  • 사장 : 김충헌
  • 「열린보도원칙」충청신문은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 노경래 (042-255-2580 / nogol69@dailycc.net)
  • Copyright © 2024 충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ilycc@dailycc.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