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독립기념관, 9월의 독립운동가 한국광복군 고운기 선정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입력 : 2017.08.29 17:18
  • 기자명 By. 장선화 기자
[충청신문=천안] 장선화 기자= 독립기념관(관장 윤주경)은 국가보훈처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고운기를 2017년 9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아래와 같이 개최한다.

이번 전시회는 독립기념관 야외 특별기획전시장에서 다음달 1일부터 한 달 동안 열리며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전례식 기념사진 등 10점을 전시한다.

고운기는 1907년 함경남도 문천에서 태어났다. 그의 본명은 공진원이며, 고운기는 낙양군관학교 한인특별반 시절 신분을 숨기기 위해 사용했던 이름이다.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공진원이 아닌 고운기란 이름으로 서훈을 받았다.

그는 1931년 말 만주의 한국독립당이 창설한 한국독립군의 제6중대장으로 임명되었다. 1932년에는 중국군의 대표들을 만나 한중연합부대 합작을 성사시켰다.

이후 한중연합군은 경박호전투, 동경성전투, 대전자령전투 등지에서 일본군을 크게 무찔렀다.

1933년 말 김구는 한인 청년들을 군사간부로 양성하기 위해 낙양군관학교에 한인특별반을 설치하고, 북만주에서 활동하던 독립군들에게 입학을 권유하였다. 고운기는 1934년 2월 동료들과 함께 낙양군관학교 한인특별반에 입교하여 병기학ㆍ전술학ㆍ통신학 등 각종 군사훈련을 받았다.

1938년 11월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의 대장을 맡아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항일의식을 고취시키는 선전활동을 주도하였다. 1939년 임시의정원 함경도 의원, 1940년 한국독립당의 감찰위원으로 선출되어 활동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정식 군대로 한국광복군이 창설되자 제2지대장으로 활동했다. 제2지대장으로 임명된 후 서안을 거쳐 내몽고 지역으로 파견되어 한국광복군 대원 모집활동을 전개했다.

1942년 중경으로 돌아와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한국광복군의 자율적인 활동을 제한하던 ‘9개준승(準繩)’을 취소시키는 활동을 전개하다가 병을 얻어 1943년 37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적을 기려 1963년 건군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저작권자 © 충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충청신문기사 더보기

하단영역

매체정보

  • 대전광역시 중구 동서대로 1337(용두동, 서현빌딩 7층)
  • 대표전화 : 042) 252-0100
  • 팩스 : 042) 533-7473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황천규
  • 법인명 : 충청신문
  • 제호 : 충청신문
  • 등록번호 : 대전 가 00006
  • 등록일 : 2005-08-23
  • 발행·편집인 : 이경주
  • 사장 : 김충헌
  • 「열린보도원칙」충청신문은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 노경래 (042-255-2580 / nogol69@dailycc.net)
  • Copyright © 2024 충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ilycc@dailycc.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