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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세평] 220967과 23151997

서경홍 충남대 인문역량강화(코어) 사업단 선임연구원·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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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7.08.09 16:16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서경홍 충남대 인문역량강화(코어) 사업단 선임연구원·철학박사

이 글의 제목을 보고 의아해 할 것이다. 앞의 숫자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뒤의 것은 나의 군번이다. 나의 군번이야 아직도 기억하고 있지만 아버지의 군번은 얼마 전 본가에 갔다가 어머니가 고이 모셔놓은 아버지 유품 속에서 발견했다.

세간에 4성 장군을 둘러싼 일로 시끄럽다. 보기와 입장에 따라 큰일이 될 수도, 별일이 아닐 수도 있다. 이 소식을 접하며 30년 전의 나와 그리고 그보다 훨씬 전의 아버지의 군대시절이 떠올라 씁쓸했다.

사형제를 둔 아버지는 장교생활을 했고 아들들은 모두 사병으로 군복무를 마쳤다. 내가 초등학교를 입학하기도 전에 아버지는 전역하였다. 강원도 어딘가에 싸리나무 울타리가 쳐진 우리 집, 그 집에 자주 들러 밥을 먹던 군인들, 탱크의 캐터필러 자국이 깊게 패인 신작로 정도가 그때의 기억이다.

어머니는 당시 30대 중반이었는데 아버지의 부하들이 집에 오면 꼭 밥을 챙겨주고 구멍 난 양말을 갈아 신겨주고 하다못해 금장이처럼 누런 러닝셔츠를 입고 있으면 아버지 것을 내어주셨다고 한다.

나는 임진강이 코앞인 곳에서 군대생활을 했다. 중화기병이었던 나는 대대장의 운전병을, BOQ(독신장교숙소)의 당번병을 부러워했다. 그러나 나나 그들이나 모두 나라의 신성한 부름을 받고 국방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똑같은 군인이었다.

작년 가을, 군과 관련된 모 기관의 위탁을 받아 ‘독일군의 지휘철학’을 연구한 적이 있었다. 그 핵심은 ‘내적 지휘’라는 것이었는데 광범위한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쉽게 설명하자면 외적인 강압에 의한 지휘와 복종이 아닌 인간의 존엄성을 바탕으로 군인의 본문을 자발적으로 지키고 임무를 수행하자는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침해받을 수 없다.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이 국가권력의 의무이다’라고 독일 헌법 1조에 규정하고 이를 근간으로 ‘기본권은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독일연방군의 모든 구성원에게 효력을 발생한다.’ 이것이 내적 지휘의 핵심이다. 이 때문에 독일은 자국의 군인을 ‘제복을 입은 시민’이라고 정의한다. 문제의 그 4성 장군은 독일육사에서 유학까지 했다던데 거기서 뭘 배우고 왔는지.

1, 2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독일군은 침략군, 범죄자라는 오명을 써야만 했다. 독일은 연방군의 재창설을 앞두고 많은 고민을 하였다. 1950년 가을 구 독일국방군의 장교들로 위원회가 구성되어 힘머로트란 산골의 수도원에서 독일군의 정체성과 역할에 대해 논의하고 군대의 내적 조직을 구상하였다.

여기에는 군인에 대한 정치적, 윤리적, 교육적 과제가 담겨져 있고 독일과 유럽에 대한 방어의무를 강조하고 자유로운 인격체로서의 존재, 책임감있는 국민으로서의 행동, 임무수행을 위한 준비태세 유지를 요구한다.

독일군 지휘철학에 관한 연구를 계기로 지난 6월 독일 내적지휘센터의 두 명의 장교가 한국에 와서 발표한 세미나에 참가하였다. 거기에 모인 사람들의 궁금증은 군대 내의 자율과 자유가 군기를 무너뜨리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독일군 장교의 “그렇지 않으며, 오히려 그 반대이다”라고 명료하게 답했다. 세미나에 참석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국에서는 그것이 통하지 않을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렇다. 여기는 독일이 아닌 한국이다. 그러나 불가능의 근본적인 문제는 군인을 인간이기 전에 군인이란 역할로만 인식한다는 것이다.

흔한 말로 서울역 앞에는 ‘사람도 많고, 군인도 많은 것’이다. 제복을 입는 순간 군인은 시민이 아닌 그냥 군인으로 전락한다. 일반시민과 전혀 다른 종(種)이 되어 버린다. 그러니 별들이 지배하는 또 하나의 행성이 탄생한다.

“아들처럼 생각해서….” 문제의 4성 장군의 부인이 기자들 앞에서 한 말이다. 그 부인이 군인을 아들이 아니라 몸종이라 생각했더라도 그들에게 그런 비인간적 행위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보급품이 좋아지고 사병들의 월급을 올리고 하는 것만이 군대발전의 능사가 아니다. 군의 체질과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별들의 세계부터 변화해야 한다. 별은 항상 저 하늘 높은 곳에서만 반짝거리지 않는다. 때론 유성이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도 한다.

사단장 앞에서 전역신고를 마치고 나오던 날, 위병소를 지나자마자 목에 걸고 있었던 군번인식표부터 떼어 버렸고 지금은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나의 아들 세대들은 제대를 하고도 인식표를 오랜 세월 자랑스럽게 보관하고 물려줄 수 있는 군 생활을 하길 희망한다.

서경홍 충남대 인문역량강화(코어) 사업단 선임연구원·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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