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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아침에] 나만의 웰 다잉(well-dying)

허영희 대전보건대 간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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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7.08.06 16:10
  • 기자명 By. 충청신문
▲ 허영희 대전보건대 간호학과 교수
‘웰 다잉(well-dying)’ 말 그대로 잘 죽는 것. 나에게 있어서 웰 다잉 첫 번째 포인트는 ‘건강하게 눈을 감는 것’이다. 나의 할머니께서는 췌장암으로 1년 넘게 암투병생활을 하시다가 돌아가셨다. 어렸을 때라 암이라는 게 그렇게 무섭고 위험한 병인 줄은 그때는 정말 몰랐다. 하지만 점차 커가면서 그리고 간호사라는 꿈을 더 깊이 꾸게 되면서부터 나는 ‘암’이라는 게 인류에게 있어서 얼마나 큰 재앙이자 두려움의 대상인지 알게 되었다. 외할머니께서는 어린 내가 놀랄까봐 아파도 아프시다 하시지 않으셨고 항상 “괜찮다, 괜찮다”라고만 하셨다. 나는 암이 감기처럼 금방 뚝딱 나을 수 있는 병이라 생각했다. 할머니께서 병원에 입원하시고 나서 아파하시고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힘들고 괴로워 보였다. 나로서는 아무것도 해드릴 수가 없는 게 너무나도 가슴 아팠다. 옆에서 지켜보는 엄마의 가슴은 더욱 미어졌을 것이다. 할머니께서 아프시니 집안은 항상 어둡고 우울하고 가라앉는 분위기가 지속되었다. 그게 싫었던 것은 아니지만 웃고 싶어도 웃을 수가 없는 그런 상황이 더욱 힘이 들었던 것 같다. 
 
그 당시 집안일과 할머니 병간호를 동시에 하시던 엄마는 항상 몸이 아프셨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으셨다. 그래서인지 할머니 홀로 아프신 게 아니라 내 기억으로는 우리 가족 모두가 함께 아팠던 것 같다. 이런 경험이 있어서인지, 나는 오래 살고 싶지는 않지만 건강하게 살면서 내 가족과 내 주위의 사람들에게만큼은 절대로 같은 아픔을 안겨주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사랑하는 내 가족에게 마지막까지 해줄 수 있는 게 있다면 그것은 많은 재물을 안겨 주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웃으면서 사랑하는 이들에게 작별을 고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훗날 내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고 숨이 다하는 그 날까지 함께 행복을 나눈다면 그것보다 더 좋은 웰 다잉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외할머니께서도 항상 내게 미안하다고 하셨다. 그때는 그 말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할머니가 아프신데 왜 내게 미안해하실까. 오히려 아무것도 해드릴 수가 없었던 내가 더 죄송스러웠는데 말이다. 하지만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미안하다”라는 그 말은 할머니 자신이 아픔으로서 나와 내 가족이 겪어야 했던, 소중한 한 사람을 잃게 될 거라는 그 불안감을 안겨주었던 사실과 아픈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했던 그 사실 자체가 미안했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나에게 있어서 웰 다잉 두 번째 포인트는 ‘내가 죽은 뒤에도 나를 추억해 줄 수 있도록 많은 추억을 남기는 것’이다. 만약 내가 죽는다면 소중한 내 사람들에게 내가 어떠한 사람으로 그들의 머릿속에 잊혀지지 않고 계속 남아있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누군가가 말했다. ‘가장 무서운 건 내가 이 세상에 존재했던 그 사실이 잊혀진다는 거’라고. 나는 그 말에 공감한다. 분명히 얼마 전까지만 해도 멀쩡히 사람들의 곁에 녹아 숨을 쉬었던 내가, 어느 날 죽어서 그들에게 있어서 없었던 존재가 되어버린다면 그것보다 더욱 슬픈 일이 또 있을까? 
 
죽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그 사실이 가장 무서울 것이라고 난 생각한다. 물론 떠날 사람은 떠나야 한다. 그리고 살 사람은 살아야 한다. 하지만 육체는 떠나더라도 정신적인 추억만큼은 산 사람들과 함께이고 싶다. 살아 생전 사람들에게 상처주지 않고, 서운하게 하지 않고 늘 웃는 모습으로 할 수 있는 한 많은 사랑을 베풀었다면 나를 순식간에 잊지는 않을 것이다. 평범한 하루를 보내다가도 문득 내 생각이 떠올랐다면 그것은 나와 함께였던 순간이 행복했었고 전혀 헛되지 않았음을 기억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곁에 없는 사람을 떠올린다는 건 참으로 힘든 일이다. 또한 곁에 없는 사람을 떠올린다는 건 참으로 대단한 일이다. 위대한 위인들이 아직까지도 현대인들에게 잊혀 지지 않고 원할 때에 떠올릴 수 있다는 건 그들이 사람들에게 잊지 못할 무언가를 남겼기 때문이다. 나는 아인슈타인이나 에디슨처럼 위대한 발명가도 아니고 마틴 루터 킹처럼 존경받는 종교 지도자도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소중한 친구였고, 내 가족의 소중한 구성원이었고, 성당에서는 착실한 신앙인이었다. 이렇게 내가 어느 위치에서 누군가와 어떤 관계였는지를 떠올릴 많은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나는 잘살아왔고, 잘 죽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허영희 대전보건대 간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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