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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아침에] 행정실은 보이지 않는 태양

박종용 대전화정초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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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7.07.30 16:32
  • 기자명 By. 충청신문
▲ 박종용 대전화정초등학교 교장

우리는 살아가며, 가까이에서 면밀히 바라보고 함께 겪어보지 않는 한, 서로의 노고를 잘 모른다. 시시때때로 느끼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며 아쉬워하지만, 느낀 바를 그때 바로 드러내지 않기 잘했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학교장이 되고, 다른 이를 빛나게 해 주면서도 드러내 놓지 않은, 그 손길들을 조금씩 파악해 나가고 있다.

며칠 전, 서울에서 사흘간의 교육이 있었다. 업무 공백이 우려됐다. 교감 선생님을 학교장의 대리결재자로 지정하고 다녀왔다. 교감 선생님이 그간에 있었던 사안에 대해 몇 가지 보고했다. 그 중의 하나가 기억난다. “교장 선생님, 행정실 업무가 만만치 않네요.” 행정실에서 상신하는 공문이 예상외로 많다며 놀라셨다.

나도, 학교장이 되기 전까지는, 그랬다. 교사로 20년 근무하다가 장학사를 거쳐 6년간 교감으로 근무했지만, 행정실에서 어떤 업무를 처리하는지, 업무량이 어느 정도인지 대략적으로 짐작만 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2103년 3월에 대전법동초등학교 교장으로 부임한 후에, 그동안 행정실 업무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길 잘 했다며 안도했다.

행정실에서는 각종 계약을 비롯하여 급여·예산·물품·재산·기록물·시설물 관리까지 허투루 취급할 수 없는 업무들을 맡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행정실에서 작성한 공문이 하루에 수십 건을 육박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으니 고맙기만 하다.

학생들의 현장체험학습 하나만 처리하려 해도 쉽지 않다. 행정실에서 여러 건의 기안이 올라온다. 계약 담당자는 전세버스 임차를 위한 견적 공고, 계약 체결, 계약서류의 일치, 여행자보험 가입, 현장체험학습 후의 지출 업무를 맡아 처리한다. 수입 담당자는 계획서에 있는 명단과 비용을 확인하고, 징수결의를 기안하여 결재를 득한 후 CMS이체를 한다. 개인사정으로 불참한 학생에게는 환불해 줘야 한다.

매달 20일쯤 되면, 서비스 용역이나 공공요금을 지급하는 내용의 결재가 올라온다. 원어민보조교사 주거비를 비롯하여 유선방송 수신료, 도시가스·인터넷·전화요금·전기요금·CCTV·어린이안심서비스·U안심서비스·상하수도 이용료, 물끓임기·복사기·프린터기 임대료, 당직경비·청소 용역료… 등등 조금만 방심하면 놓치기 쉬운 일들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제도와 법령이 바뀌어 낯선 것 또한 많아졌다. 최종 책임자인 학교장은 결재하기가 그만큼 어려워졌다. 업무 담당자들이 어련히 알아서 잘 하셨겠지만, 돌다리도 두드리며 건너라고 했다. 알쏭달쏭한 회계법령이 가장 신경을 곤두서게 한다. 그때마다 내가 찾는 사람이 있다. 바로 행정실장님이다. 행정실장님은 자료를 찾거나 교육청에 질의해서라도 학교장의 궁금증을 해결해 준다.

방과 후에 운영되는 돌봄교실이나 방과후학교, 작년 3월에 개원한 병설유치원 2개 학급의 업무량도 만만치 않다. 이렇게 행정실에서는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교육활동을 뒷바라지 해 주고 있지만, 그 뒷바라지가 다른 사람의 눈에 얼른 띄지 않는다. 밤하늘의 달이 빛나는 건 태양빛 덕분이다. 행정실 직원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저 편에서 밤에도 달이 빛나도록 비추는 태양빛 같다.

정성희 행정실장님은, 묵직하면서도 빈틈없이 학교 살림을 알뜰히 챙기고 늘 깨어있어 믿음을 준다. 누구에게나 친절하여 선생님들이나 교직원들이 수시로 찾는다. 작년 2월에 공직에 첫발을 내디딘 유안희 주무관님은, ‘소리 없이 강하다’라는 광고를 연상시키고, 김용모 주무관님은 시설을 안전하게 관리하는 경륜이 돋보인다. 알아서 척척 처리하고 일사천리이다. 쾌활하고 깨알 같은 재미를 선사하는 양현진 행정실무원님은 늘 청량제 역할을 한다. 이렇게 4명의 뜨거운 열정이 화정의 모든 달을 늘 빛나게 한다.

방학이지만 행정실은 쉼이 없다. 학생들이 2학기 수업을 받는데 지장이 없도록 학습준비물을 미리 구입하고, 시설 전반에 대해 점검하고 있다. 오후 6시쯤, 퇴근하려다가 행정실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봤다. 내가 들어가도 모를 정도로 주무관님이 무언가에 푹 빠져 있다. 저녁 식사 전이라고 했다. 음식을 배달해 같이 먹고 밖으로 나왔다.

학교라는 하나의 공동체가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의 보이지 않는 노력 덕분에 하나씩 성과를 이루어 낸다고 본다. 예전에 행정실 직원들이 하는 일을 얼른 말하지 않고, 이제야 이렇게 마음을 꺼내놓길 정말 잘했다 싶다. 빛나는 화정 달과 그 달이 빛나게 해 뒷바라지 해 주는 식지 않는 손길이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여름이다.

박종용 대전화정초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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