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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가스라이팅, 과연 개인의 문제일까

구미경 대전시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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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7.07.02 16:13
  • 기자명 By. 충청신문
 
[충청신문=구미경 대전시의회 의원] 지난 장미대선의 치열함은 나 개인의 건강에도 큰 여파를 끼쳤었다. 대상포진을 얻어 병원에 입원했으나 약사로서의 나를 찾는 상담 손님 등 나를 필요로 하는 분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즈음 들은 이야기였다. 남편에게 오랜 시간 시달려왔고, 그렇게 시달리다 못해 폭력까지 당해 몸이 완전히 상해서 집을 나온 여성분이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전형적인 가정폭력의 희생자였는데, 왜 초기에 대처를 하지 못했는가를 들어보니 역시나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었다. 
 
가스라이팅이란 상황 조작을 통해 타인의 마음에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켜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게 만듦으로써 그 사람을 정신적으로 황폐화시키고 그 사람에게 지배력을 행사하여 결국 그 사람을 파국으로 몰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심리학 용어이다. 이것은 비단 부부뿐만 아니라 부모와 자식 등 친밀한 관계에서 많이 일어난다.
 
가스라이팅은 우리 주변에서 너무나 흔히 일어나고 있다. 한 사람의 자존감을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잔인한 세뇌임에도 불구하고 가해자도 피해자도 잘 깨닫지 못한다. 왜일까? 단편적으로 생각해본다면 역시 개개인의 정당화 수위가 도를 지나쳐서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폭력은 어떠한 형태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그것은 정신적 폭력도 마찬가지다. 잘못을 고치게 하기 위해서 라는 핑계를 대지만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못하는 성정과 태도가 오히려 문제 있는 것이며, 치명적인 실수라 해도 인내심을 갖는다면 온건한 대화로도 충분히 풀어나갈 수 있음을 우리 모두 다 알고 있다. 때로는 어려운 일이지만 최소한 그렇게 해야 한다는 인식은 무의식의 기저에 깔려 있어야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문명인이라 자부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가스라이팅이 어째서 횡행하는 것일까 고민하고 있을 때 불현듯 머릿속을 스쳐 가는 생각이 있었다. '빌미가 있다면 그릇된 행동도 정당화할 수 있다'는 명제에 대해서였다. 과연 가스라이팅을 저지르는 가해자는 어떠한 심리적 기작에 의해 그러한 행동을 하는 것일까.
 
요전번 SNS를 통해 경력단절 여성을 위한 강의자료를 봤던 적이 있었다. 기업에서 경력단절 여성을 잘 채용하지 않으려 하는 이유를 열거해놓은 자료였다. 가정사로 자리를 비울 것 같아서, 야근 출장 등이 어려울 것 같아서 등등을 이유로 들어 기업에서는 아이가 있는지, 몇살인지, 아이가 아프면 어떻게 할 것인지, 남성에게는 물어보지조차 않는 것을 경력단절 여성에게는 당연한 듯이 묻는다. 혹자는 '기업 입장에서는 업무효율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여성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논리를 펼치기도 한다. 과연 이것이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되고, 기업과 사회에서는 ‘경력단절 여성은 업무효율이 높지 않으니 취업의 기회를 적게 주는 것이 정당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어디에서 많이 들어본 논리가 아닌가. 바로 가스라이팅 가해자의 논리다.
 
여성들은 사회 전반에 걸쳐 일상적으로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다. 저출산 시대에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이기적이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은 온전히 여성의 일이다. 엄마가 아이를 두고 일을 하는 것은 아이의 정서상 좋지 못하다. 등등. 그래서 여성들은 결혼적령기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강박에 시달리고, 자연스럽게 여성 앞으로 미뤄지는 독박육아에 고통받고, 재취업 후에도 죄책감에 힘들어한다. 여성 또한 한사람의 인간이고, 각 개인의 다양한 자아실현 욕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출산 육아로 인해 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어버린다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큰 손실이 아닐 수가 없다.
 
육아는 오로지 여성의 일이라는 사회적 인식을 먼저 바꾸지 않는 이상 경력단절 여성을 위한 지원이 아무리 많아도 여성의 삶의 질은 올라갈 수가 없을 것이다. 애초에 출산과 육아로 여성의 경력이 단절되어서도 안 된다. 국가 차원에서 여성의 역할과 남성의 역할에 대해 고정시키고 그 역할을 강요하는 사회적 가스라이팅을 멈춰야 한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퍼트려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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