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세상사는 이야기]어디쯤 서 있을까?

강희진 음성예총 부회장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입력 : 2017.06.20 17:32
  • 기자명 By. 충청신문
 
[충청신문=강희진 음성예총 부회장] 아파트 안에 있는 인도를 파헤치는 공사가 며칠째 진행 중이었다. 아직은 보도블록을 교체할 정도는 아닌데 안내문도 없어 무슨 공사인지 궁금했다. 그런데 어제 아파트 입구에 있는 경비실에서 택배를 찾아오면서 걷는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유심히 보니 인도가 절반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좁은 인도를 걷다 보니 안정감도 없고 자꾸 화단 쪽으로 내 몸이 기울어서 걷게 되었다. 무엇 때문에 공사를 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지만 무언가를 빼앗긴 듯 억울한 생각이 자꾸 들었다.
 
예상한 대답이 나올 줄 알면서도 아파트 관리소장을 만나 물어보았다.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가 빠져 나갈 때 회전 반경이 좁아 불편하다는 민원이 들어와서 반상회의 결정에 따라 인도를 줄이고 주차장을 넓혔다고 했다. 그동안 한 번도 반상회에 참석하지 않았으니 할 말은 없다. 하지만 그다지 불편하지 않았는데 그 작은 불편함도 참지 못하고 인도를 반으로 줄여 버렸다니 아쉬운 마음이 컸다. 내가 회의에 참석해서 반대 의사를 던졌으면 어땠을까? 국민투표는 꼭 참여해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늘 말했다. 그런데 반상회를 한다는 안내문을 보면서도 참석하지 않았던 내 이중성에 부끄럽고 화가 났다.
 
결혼해서 아이들과 주택에 살다가 직장을 다니게 되면서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그리고 그나마 다른 아파트보다 녹지 공간도 많고 조용한 것이 마음에 들어 오래 살고 있다. 이사를 가고 싶다고 말하면 남편은 우리 동네에서 이 곳 만큼 쾌적한 아파트가 없다며 앞집을 사서 베란다를 터서 살라고 할 정도로 마음에 들어 했었다.
 
나 또한 이사 와서 아파트 뒤쪽 화단과 나무들 사이를 산책할 수 있어서 좋았고 여름이면 화단 옆에 앉아 개와 늑대의 시간에 석양을 즐기고는 했다. 그런데 2~3년 전 내가 그렇게 사랑했던 아파트 뒤 화단을 없애고 주차장으로 만들어 버렸다. 아파트를 지을 당시에는 한 집에 한 대의 주차 공간을 확보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세대가 2대의 차량을 소유하게 되었고 주차대란이 일어났다. 나 또한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주차 공간 부족으로 애를 먹었다. 화단과 나무를 없애는 것이 몹시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이 집으로 찾아온 반장에게 동의를 했다. 하지만 크게 불편하지도 않는데 인도를 줄이고 주차공간을 넓힌 것에 대해서는 씁쓸하다. 
 
이사를 올 당시만 해도 창문을 열면 산과 밭이 눈에 들어왔다. 봄이면 진달래꽃을 보며 봄이 왔음을 알았고, 여름에는 감자와 옥수수를 수확하는 할머니를 보면 밭으로 달려가 금방 수확한 감자와 옥수수를 사다 쪄서 먹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밭에 건물이 들어섰다. 지금도 아파트 앞에 있는 산과 논은 끊임없이 공사를 하고 있다. 가로질러 가는 길을 내고 있다고 했다. 일요일인 오늘도 창문을 열어두고 잔 탓에 시끄러운 굴삭기 소리에 잠을 깼다. 이러다가는 ‘편리’라는 미명 아래 우리가 설 공간도 없어져 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함까지 든다. 
 
우리는 끊임없이 편리한 것을 추구하며 산다. 누구는 인간의 이런 추구가 과학과 지식을 발전시켰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편리함 때문에 잃어버린 것들은 어디서 찾을 것인가? 산업의 발달로 편하게 살고 있지만 지구 온난화는 비례하여 심각성을 더해간다. 생명의 근원인 물과 땅의 오염, 생태계 파괴로 인한 어두운 그림자들을 하나하나 열거하지 않더라도 그 심각성에는 다들 공감한다. 
 
요즘 온 나라가 가뭄으로 걱정이다. 우리 동네에서 가장 큰 저수지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지만 비가 온다는 소식은 없다. 이런 사태도 지구 온난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짧은 생각들로 나만 편리하자고 화단을 없애고 논밭을 없애고 산을 없애니 지금 지구가 이렇게 병들어 가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저작권자 © 충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충청신문기사 더보기

하단영역

매체정보

  • 대전광역시 중구 동서대로 1337(용두동, 서현빌딩 7층)
  • 대표전화 : 042) 252-0100
  • 팩스 : 042) 533-7473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황천규
  • 법인명 : 충청신문
  • 제호 : 충청신문
  • 등록번호 : 대전 가 00006
  • 등록일 : 2005-08-23
  • 발행·편집인 : 이경주
  • 사장 : 김충헌
  • 「열린보도원칙」충청신문은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 노경래 (042-255-2580 / nogol69@dailycc.net)
  • Copyright © 2024 충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ilycc@dailycc.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