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충청포럼] 고독한 연습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입력 : 2017.06.08 16:29
  • 기자명 By. 충청신문
▲ 박상희 피아니스트

 연습실은 네 면이 모두 꽉 막힌 방이다. 어느 공간이 그렇지 않겠냐마는 사방이 방음벽으로 둘러싸여 창문이 없는 곳도 많은 연습실은 그야말로 꽉 막혀있다. 요즘은 디자인이 잘 되어있는 방음 소재도 많지만 대부분은 칙칙하고 단조로운 색의 답답한 분위기가 대부분이다. 피아노라는 덩치 큰 악기가 들어가고도 앉아 있을 공간이 있다면 정말 감사한 환경이다. 멋들어진 조명과 울림을 갖춘 연습실은 그래서 모든 연주자들에게 꿈의 공간일 것이다.

연습하기가 싫은 어떤 날은 연습실에 들어서면 피아노가 나와 대치하고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평소 피아노의 곡선이 매우 우아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날은 마녀가 풀어헤친 머리카락이 넘실대는 것처럼 보여 호러 영화가 따로 없다. 그래도 떠날 수 없는 곳이 이 곳이다. 연습을 하지 않아도 피아노 옆에 있어야 심적으로 안정감을 느낀다. 애증의 관계가 아닐 수가 없다.

그 안에서 작품을 위해 오랜 시간을 연습한다.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익히기도 하고, 부분을 발췌하여 연습하기도 한다. 그 날의 연습 주제는 그때그때 달라지기도 하는데, 대부분은 반복적인 연습이 많다. 혼자 그 오랜 시간을 악보와 씨름을 하다보면 어떤 이미지나 이야기가 생성이 된다. 이 작업이 잘 이루어질 경우에는 곡의 완성도가 높아진다. 작품과는 친숙해지는 것이 관건이다. 어떤 작품은 직접 내게 말을 걸어오기도 하지만, 어떤 작품은 숱한 프러포즈를 보내도 돌아오는 대답이 시원찮을 때도 많다.

학생 시절에는 지금보다 더 많은 시간을 연습에 할애했다. 대략 하루 6~8시간 정도의 연습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주어진 역할이 다양해지면서 연습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꽤 어려워졌다. 그럼에도 해야 하는 연습, 그 때문에 언제나 마음 한 켠이 불편하다. 여유가 생기면 모든 것을 연습에 할애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오늘은 좀 진득하게 앉아서 연습을 해볼까? 라고, 마음을 먹으면 꼭 처리해야 하는 다른 일들이 생긴다. 연주자에게 쉰다는 것이 허용되는 날이 있을까 싶다. 만족스러운 연습 시간을 가진 후에야 만 찰나의 꿀 같은 휴식 시간이 허용되겠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날에는 그냥 피아노 옆에라도 앉아 있는다. 그 옆에서 숨이나 돌리면서.

작품 안에서 혼자만의 세계를 만드는 작업은 깊은 내면과의 대화가 중요하다. 자신에게 솔직해져야 하고, 자신을 설득해야만 한다. 연습을 하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매우 흥미로운 작업 중의 하나이다. 내가 내 마음대로 만드는 드라마가 한 편 생겼다고나 할까. 에피소드들과 음악적, 연극적 장치를 마음대로 배치해보기도 하고, 감독이나 작가가 되어 기승전결을 구성하는 것이, 모노드라마를 연출하는 것처럼 짜릿할 때도 있다. 긴 작품일수록 이 작업은 고도화 되어야 하는데, 여간 집중을 요하는 일이 아니다.

혼자 하는 연습은 매우 고독하다. 어려운 부분이 있어도 상의를 할 수가 없고, 매우 아름다운 선율을 만나 기뻐도 감동을 같이 나눌 수가 없다. 혼자서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 씨름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책이나 음반에서 그 해답을 얻기도 하고, 스승님께 조언을 구하거나 동료들과 대화를 하다 길을 찾기도 하지만, 어찌됐든 그 연습하는 시간은 오롯이 혼자 깜깜한 우주를 헤쳐 나가는 느낌이다. 이 인내의 시간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으로, 이것을 견디지 못하면 무대에 서기는 어렵다.

앙상블 연주를 맡게 되면 파트너와 함께 연습을 한다. 이 때에는 교감이라는 시너지가 작용하면서 연습의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고독했던 연습 시간의 장막을 걷어내고, 숨소리와 에너지가 느껴지는 소통의 향연이 펼쳐지는 것이다. 물론, 파트너와 교감이 기가 막히게 일어날 때 생기는 아주 감동스러운 순간으로 일어나는 빈도수가 항상 높지는 않다. 각자가 겪어낸 고독한 연습 시간의 결과를 대화와 음악적 언어로 풀어내고 맞춰나가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과정을 매우 사랑하며 즐기는 편이다. 그래서 앙상블을 아주 좋아한다. 단, 일방적인 소통을 요구하는 파트너와 작업을 하면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어서, 다시 독주의 세계를 갈망하게 된다.

이런 저런 활동을 마치고, 또 다시 연습실로 돌아온다. 당장 잡힌 연주가 없다하더라도 일정 시간 이상은 연습을 해야 하는 것이 연주자의 숙명이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키신은 어느 나라에서 연주를 하던 하루 일곱 시간의 연습시간을 확보해달라고 요청을 한다고 한다. 연습 때문에 관광은 아예 생각지도 않는다고. 어느 피아니스트는 대화를 하다가도 자신이 정한 연습시간이 되면 가차 없이 자리를 뜨고 4시간가량의 연습 시간 후에 돌아온다고 한다. 저들과 같은 엄격한 연습 시간을 갖고 있지는 않아 부끄럽지만, 그래도 최대한 노력은 하고 있다는 것으로 안위하며. 아무도 대신 해줄 수 없는 일, 다시 고독한 연습에 집중한다.

박상희 피아니스트

저작권자 © 충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충청신문기사 더보기

하단영역

매체정보

  • 대전광역시 중구 동서대로 1337(용두동, 서현빌딩 7층)
  • 대표전화 : 042) 252-0100
  • 팩스 : 042) 533-7473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황천규
  • 법인명 : 충청신문
  • 제호 : 충청신문
  • 등록번호 : 대전 가 00006
  • 등록일 : 2005-08-23
  • 발행·편집인 : 이경주
  • 사장 : 김충헌
  • 「열린보도원칙」충청신문은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 노경래 (042-255-2580 / nogol69@dailycc.net)
  • Copyright © 2024 충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ilycc@dailycc.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