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세상 읽기] 돌죽

이종구 학부모뉴스24 편집국장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입력 : 2017.05.24 18:00
  • 기자명 By. 충청신문
 
[충청신문=이종구 학부모뉴스24 편집국장] 어렸을 때 ‘돌죽’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대략의 줄거리는 외적이 침입하여 전쟁터에 나갔던 6, 7명의 군사들이 전쟁이 끝나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인데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게 됐다. 지나는 마을마다 사람들은 삶에 지친 모습을 하고 군사들을 볼 때마다 경계의 눈초리가 심했다. 점심때가 좀 지나 또 다른 마을을 지나게 됐는데, 그 마을도 전쟁에 시달려 다른 마을과 다름이 없었다.
 
군사들의 수장이 마을 촌장을 찾아가 사정을 했다. “전쟁이 나서 모두들 어렵게 생활하고 있으니 먹을 것을 달라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저희들이 허기를 달래고자 돌죽이나 끓여 먹게 커다란 가마솥이나 하나 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라고 촌장은 너그러이 커다란 가마솥을 빌려주었다.
 
군사들은 가마솥을 냇가로 가져가 커다란 돌 위에 솥을 걸고 물을 길어다 채웠다. 그러고는 조약돌을 주워 정성스럽게 닦아 가마솥 안에 넣었다. 궁금한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냇가로 나왔다. 도대체 돌죽을 끓여 먹다니? 돌로도 죽을 끓여 먹을 수 있나? 모두들 의아해했다.
 
군사들은 이곳저곳에서 나뭇가지를 주워다 불을 지폈다. 얼마간 시간이 흐르자 가마솥 안에서 김이 나고 물이 끓어 용솟음쳤다. 이때 한 군사가 말을 꺼냈다. “아! 거의 익어가는구나, 그런데 우리 어머니는 이쯤 끓을 때 감자를 몇 개 넣었어. 그러면 돌죽 맛이 더욱 구수해” 정말 그럴 듯해 보였다. 그러자 다른 군사가 말을 했다. “감자만 넣는 것보다는 파 뿌리 몇 개 넣으면 그 맛이 더 시원해”, 또 다른 군사가 말을 이었다. “허어 모르는 소리, 우리 할머니는 고추장과 된장을 반반 섞어 한 사발 넣어, 그러면 둘이 먹다가 하나 죽어도 모를 만큼 감칠맛이 나” 군사들은 너도나도 한 가지씩 넣을 재료들을 이야기하며 열심히 불을 땠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 업은 아주머니 한 분이 집으로 달려가더니 감자 몇 개 가지고 와서 솥 안에 넣었다. 그러자 또 다른 사람이 파를, 마늘을, 고추장을, 된장을, 그 외에 보리쌀 한 줌을…, 넣기 시작했다.
온갖 먹거리가 들어간 가마솥은 침을 삼키기에 알맞은 만큼 냄새를 풍기며 소담하게 끓었다. 잠시 뒤 수장이 말했다. “이젠 다 끓은 듯하구나, 그런데 그릇이 없네, 아이구 촌장님 죄송하지만 그릇도 좀 빌려주시겠습니까?” 말이 떨어지자마자 아낙들이 집으로 달려가 그릇과 숟가락을 들고 왔다. 그러고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한 그릇씩 퍼서 군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아이고, 저희들만 먹을 수 있나요? 그릇을 빌려주신 여러분도 함께 나누어 먹으면 좋겠지요.” 마을 사람들과 군사들은 냇가에서 그렇게 돌죽을 먹었다. 정말 맛있는 돌죽이었다. 촌장과 수장은 서로 바라보며 의미 있는 눈웃음을 교환했다. 
 
죽을 끓여 먹겠다는 수장의 지혜와 어려운 삶임에도 자발적으로 먹거리를 내놓은 주민들의 인정이 합쳐진 대 통합이 이루어진 이야기이다. 
 
요즘 우리 사회는 이런 인정이 있을까?
 
연말 연시가 되면 많은 기관과 단체에서 사회시설을 위문한다. 공통점 중의 하나가 사회 시설을 위문하고 현관에서 위문품을 쌓아 놓고 기념사진을 찍는다. 뭔가 좀 깔끔하지 않은 생각이 든다. 위문이 목적인지, 기념 사진이 목적인지 구분이 안 된다. 마음이 통해 인정과 사랑이 오가는 위문이 되었으면 좋겠다.
 
지난 연말부터 온 나라를 뒤흔든 국정 농단 사건에 뒤이어 대통령 탄핵과 이어 제19대 대통령 선거까지 무려 반년이 넘는 세월을 어수선하게 보냈다. 이제 대통령 선거도 끝나고 새 정부가 들어선 지 2주가 지난다. 나라가 안정되어졌으면 좋겠다.
 
무엇보다도 19대 대통령과 새로운 정부는 갈라지고 나뉘었던 국민들의 마음을 담는 커다란 가마솥이 되었으면 좋겠다. 감자를, 양념을 스스로 가져다가 솥에 넣은 옛 이야기의 주민들처럼, 온 국민이 마음을 합하고 단결하도록 지혜있는 국정운영을 했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충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충청신문기사 더보기

하단영역

매체정보

  • 대전광역시 중구 동서대로 1337(용두동, 서현빌딩 7층)
  • 대표전화 : 042) 252-0100
  • 팩스 : 042) 533-7473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황천규
  • 법인명 : 충청신문
  • 제호 : 충청신문
  • 등록번호 : 대전 가 00006
  • 등록일 : 2005-08-23
  • 발행·편집인 : 이경주
  • 사장 : 김충헌
  • 「열린보도원칙」충청신문은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 노경래 (042-255-2580 / nogol69@dailycc.net)
  • Copyright © 2024 충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ilycc@dailycc.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