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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포럼] 즉흥(卽興), 그 순간의 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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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7.05.11 16:54
  • 기자명 By. 충청신문
▲ 박상희 피아니스트

 계절의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하여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인다. 봄이면 수줍게 피어난 봄꽃을 찾아다니고, 여름이면 내리쬐는 태양과 시원한 풍경을 즐기기 위하여 산과 바다로 먼 여정을 떠나기도 한다. 가을이면 형형색색으로 물든 나무들을 찾아다니고, 자연이 모두 잠든 겨울에는 설광을 찾아 떠난다.

매번 오는 계절이지만 모두들 부지런하다. 기다리면 또 돌아올 계절이지만, 매번 설레고 새로워하는 모습들이 전혀 진부하지 않다. 우리는 순간의 변화를, 같은 듯 다른 찰나의 아름다움을 알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음악에도 이러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요소가 있다. 즉흥이라는 연주 형태인데, 이는 연주자가 곡의 형태나 요소들을 파악한 뒤 임의대로 해석하여 연주하는 것을 말한다. 즉흥(卽興)의 사전적 의미-그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는 감흥. 또는 그런 기분-에서 알 수 있듯이 매우 순간적인 예술이다.

이러한 특색이 잘 드러나는 음악으로는 재즈라는 장르가 그렇다. 연주자에게 부여되는 자유가 무한한데, 곡의 특징이나 형식은 언제든지 연주자가 상황이나 편성에 맞게 변형이 가능하다.

재즈를 사랑했던 유명한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은 재즈는 작곡가보다도 연주자를 위한 예술이라고 불러도 넘치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해서 재즈 연주는 같은 곡이라 해도 항상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일반적으로 많은 구전 음악들, 즉 기보가 되지 않은 다양한 음악들이 즉흥에 의하여 발전되었다. 클래식 음악도 초기에는 반복되는 구간의 변형이나 변주의 형태에서 즉흥의 모습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정통성을 지니게 되고, 작곡가의 권위가 상승하면서 연주나 해석에 있어 정형화 되어진 부분이 없지 않다. 재해석에 초점을 두게 된 연주자들은 더 이상 작품에 자신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감하기가 조심스러워졌고, 연주 스타일이나 해석에서 다양성을 찾지만 곡의 변형은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어쩌면 누구나 갖고 있었을 법한 자유로운 연주 형태인 즉흥 연주는 자연히 클래식 연주자에게 필수가 아니게 되었다. 꽤 아쉽게 생각되는 부분이다. 연주의 ‘자유’가 틀에 갇혀버렸다고나 할까. 너무나 경직되어있는 연주회장 분위기나, 심오한 작품 세계에 빠져 관객과의 소통이 멀어지는 모습들에서 음악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하곤 했다.

본디 음악이 인간의 정서적인 교감과 놀이의 본능을 충족시키기 위한 역할을 해왔던 것을 생각하면, 딱딱한 분위기의, 엄숙하기까지 한 무대의 건조함은 거리감만 더 주게 되었다.

이러한 생각들에 전환을 가져다 준 피아니스트가 있었다. 가브리엘라 몬테로.

‘즉흥 연주의 대가’라는 수식어답게 연주회 프로그램의 대부분을 관중으로부터 멜로디를 받고, 그것을 즉석에서 풀어내는 방식의 즉흥 연주로 구성하였다. 그는 모두가 알만한 노래나 전통적인 선율을 요구했고, 관객들은 그에게 멜로디를 전달하기 위하여 한마음으로 노래를 하기도 했는데, 록밴드 공연에서나 볼 법한 합창을 클래식 공연장에서 보다니 무척 이색적이었다.

관객이 들려준 선율을 받아 몇 번 정도 손가락으로 되짚어보더니 금세 여러 가지 스타일로 곡을 풀어냈다. 여러 시대의 클래식 사조를 지나 라틴 리듬에 이르기까지 형식과 리듬의 조화가 실로 다채로웠다. 대략 여섯 곡 이상의 즉흥 연주를 풀어냈는데 어느 것 하나 새롭지 않은 것이 없었다. 얼마나 많은 작품들을 섭렵하고 연습했었는지를 짐작하게하기도 했는데 마치 미리 짜여진 곡처럼 곡의 완성이나 귀결이 매우 아름다웠다.

관객들은 자신이 부른 노래가 새로운 음악으로 다가오는 것에 대해 매우 즐거워하고 있었다. 순간의 우연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연주자와 관객 모두를 집중하게 만들었다. 무대와 객석이 교감하는 순간의 환희란, 연주자가 만들어내는 음 하나하나에 관객들은 기뻐했다.

연주자가 숭고하게 작품 속으로 걸어가는 무대를 바라보는 것도 나름의 미학이 있지만, 이토록 친밀해지는 에너지는 아마 즉흥연주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이 아닐까. 예견된 길이 주는 안정감과 편안함이 지루하다면, 한번쯤은 변화무쌍한 즉흥의 세계에도 귀기울여보자. 듣고 있는 음악의 작은 변화가 일상의 새로운 자극이 될 것이다.

박상희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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