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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아침에] 체육대회 고민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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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7.05.07 16:32
  • 기자명 By. 충청신문
▲ 박종용 대전화정초등학교 교장

초등학교는 대개 4월 말이나 5월 초에 어린이날을 기념하여 체육대회를 개최한다. 체육대회하면 청군과 백군을 떠올린다. 체육대회의 꽃이라 불리는 ‘청백계주’ 순서가 되면, 응원 열기는 최고조에 달한다. 학생들은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운동장이 떠나갈 듯 목소리를 높인다. 학생들에게 청백계주는, 올림픽 경기나 월드컵 축구 결승전보다 더 흥미진진한 볼거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작년에 체육대회를 마치고, “교장 선생님, 해마다 3반 학생들만 청군과 백군으로 나누는 것은 좀 지양했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의 불만이 많아요.”라는 학부모님들의 말씀이 있었다. ‘아차!’ 싶었다. 필자는 전교생이 3000명 넘는 학교부터 50여 명에 이르는 학교까지 34년간 근무했지만, 의례히 체육대회를 할 때는 청군과 백군으로 팀을 편성하곤 했다. 그동안 익숙했기에 관행적으로 당연하게 여기던 내용이었다.

만약 1학년이 9반까지 있을 경우에는, 1반은 청군, 2반은 백군과 같은 형식으로 팀을 구성한 후, 끝 반인 9반 학생들을 반으로 나누어, 청군과 백군으로 정하면 그만이었다.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기에 이와 같은 틀을 벗어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학생들에겐 아주 중요한 문제였는데, 이제껏 어른들의 잣대로 편의성만 따져 간과했던 것이다. 학부모님들은 그런 의견을 제시할 때, 학교장이 그 문제에 대해 귀담아 듣고 긍정적으로 반영하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게 학교장을 믿고 건의한 학부모님들이 고마웠다.

어찌 되었든, 문제가 제기되었으니 해결 방안을 찾아야 했다. 같은 반이면서도 절반으로 나뉘어 서로 경쟁해야 할 학급을 선정해야 했다. 학년별로 담임선생님들이 추첨하여 선정하면 어느 정도 공평하겠다는 생각도 했으나 뾰족한 해결책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했다. 예전 방식과 별다를 게 없어 같은 불만이 생길 것이었다. 묘수를 찾으려면 발상의 전환이 필요했다.

궁하면 통한다더니, 학년별로 3개 학급씩이니까 ‘청·홍·백’ 3개 팀으로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부장교사들은, 경기 방식을 바꿔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해볼만하다며 힘을 실어주었다. 고마웠고, 또 한편으로는 선생님들께 또 다른 고민을 드린 것 같아 미안했다. 입학생이 예상외로 증가하여 4개 학급으로 편성된 1학년이 걱정 되었는데, 부장교사가 선생님들과 협의해서 팀을 잘 편성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한 가지 고민이 해결되니 또 다른 걱정거리가 생겼다. 그동안은 학교에서 체육대회 날짜를 택일할 때 가장 염두에 둔 것은 ‘비’가 내리느냐, 그렇지 아니하느냐가 주요 포인트였다. 근데 요즘은 ‘미세먼지’가 화두이다. 텔레비전의 일기예보에서 미세먼지의 농도를 알릴 정도로 우리 생활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직경이 10㎛(10/1000㎜) 이하인 미세먼지는, 입자가 미세하여 코·구강·기관지에서 걸러지지 않고 몸속에 흡입되기에 생명과도 직결되는 문제라고 한다. 선생님들은, 미세먼지의 농도가 나쁨 단계(80㎍/㎥~150㎍/㎥)가 지속되고 미세먼지 주의보 발령이 빈발함에 따라, 환경부에서 제공하는 ‘우리동네 대기질 앱(App)’을 적극 활용하여, 미세먼지 농도를 확인한 후 체육대회 연습을 해 왔다.

청백을 넘어서고, 비보다 더 미세먼지를 늘 확인해야 하는 새로운 변화를 겪은 시간! 드디어, 체육대회가 시작됐다. 전날 오후에 비가 내려 운동장은 먼지 하나 날리지 않을 정도로 최적의 조건이 되었다. 미세먼지 농도도 좋았다. 전교생 378명이 교표와 태극기가 부착된 빨강색 모자를 쓰고 정렬을 했다. 유치원 원아부터 6학년 학생까지 학년별로 색깔을 달리한 티셔츠를 입으니 뚜렷하게 구분되고 보기에도 알록달록 예뻤다.

무엇보다도 ‘청군·홍군·백군’ 3개 팀이 어떻게 단체경기를 펼치는지 궁금했다. 선생님들은 짧은 시간에 3팀이 함께 경기를 할 수 있도록 멋지게 구성했다. 다양한 미션이 주어지고 흥미진진한 경기가 이어지니, 학생들의 움직임에는 힘이 넘쳤고, 학부모님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었다. 체육대회를 마친 후 인터넷으로 학부모님의 의견을 들어보았다.

약속된 시간에 심플하게 끝나서 좋았다는 의견부터 학부모와 자녀가 간식 먹을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든지, 학부모가 참여할 수 있는 경기가 많았으면 좋겠다든지…. 100여 명의 학부모님들이 다양한 격려와 당부의 말을 남겼다. 올해 학부모님들께서 제안한 팀 편성으로 새로운 풍경을 선보였듯이, 내년에도 작은 변화를 통해 함께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 학부모님들의 의견을 세심하게 읽고 또 읽는다.

박종용 대전화정초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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