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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시각] 진실도 인양돼야 합니다

안순택 논설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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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7.03.30 17:26
  • 기자명 By. 충청신문
 
[충청신문=안순택 논설 실장] 산수유, 생강나무 노란 꽃이 피더니 노란 리본 달고 기다렸던 사람들의 눈앞에 세월호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슬픔이, 원망이, 가여움이, 분노가 함께 끌려 올라왔습니다.
 
세월호가 떠오르던 날, 진도 팽목항에선 미수습자들을 위로하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9인분의 밥과 국, 나물 등을 갖춘 상차림엔 조은화 허다윤 남현철 박영인 고창석 양승진 권재근 권혁규 이영숙 등 이름을 수놓은 9장의 손수건, 9벌의 배냇저고리가 함께 놓였습니다. 
 
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을 만난 가족들은 “꼭 찾아 집으로 보내달라”고 오열했습니다. 사망자 295명과 유족, 생존자와 가족, 국민이 한 마음일 것입니다. 3년 동안 팽목항을 떠나지 못하고 잃어버린 가족을 애타게 찾아온 가족의 염원대로 인양된 선체에서 미수습자가 모두 나오길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정말로 밉고 보기 싫은 그러나 반드시 봐야만 하는 세월호입니다. 세월호의 인양은 필연 3년 전 그때로 우리를 소환합니다.
침몰 소식을 들은 뒤 내내 서성거렸었습니다. 아, 이래도 되나. 이런 일이 일어나도 되는 건가. 그 모질다는 목숨 줄이 어찌 이렇게도 쉽게 우리 손에서 휘청 빠져 나가 버린단 말인가. 이런 무참함, 어이없는 분노에 가슴 깊은 곳에서 먹먹한 슬픔이 밀려왔습니다.
 
어른이라는 게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숱하게 사고를 겪고도 배우지 못해, 채 벙글지 못한 꽃봉오리 같고, 여리디여린 새잎 같은 아이들이 마음 놓고 나들이도 한번 할 수 없는 세상밖에 만들지 못했는지.
 
어른이라는 사람들은 위험에 처한 아이들을 팽개친 채 자기들의 목숨 줄만 챙겨서 도망쳤습니다. 배 구조를 가장 잘 아는 어른들이 그걸 승객 구조에 활용하지 않고 먼저 도망치는 데 써 먹었습니다. 그 교활함이라니, 그 비겁함이라니. 어른이라는 게 부끄러웠습니다.
 
헬기가 뜨고 어선이 몰려왔는데도 탈출 명령은 발령되지 않았습니다. 구조 기관과 구조원이 엉킨 현장은 거의 장바닥 수준이었습니다. 탑승객 명단은 물론 구조된 인원, 사망자, 실종자 숫자가 엇갈렸습니다. 구난체계도 입체구조작전도 없었습니다. “승객들 명단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물살이 너무 세서….” 구차한 변명만 바다에 둥둥 떠다녔습니다.
 
젖은 돈을 말린 선장, 안행부 국장의 기념촬영, 통닭을 시켜먹은 대책반, 허술한 운항 관리와 안전 점검, “라면에 계란을 넣은 것도 아닌데…”, 느릿한 사후 대처, 대통령의 7시간, 허망한 눈물의 사과와 국가 대개조 약속. 어느 것 하나 분노 없이는 떠올릴 수 없습니다.
 
녹슬고 긁힌 상처투성이인 세월호의 흉물스러운 몰골에서 정부의 무능과 지도자의 불성실, 어른들의 탐욕과 안전 불감증, 사후대책을 둘러싼 국론분열과 정치인의 이기심 등 우리가 지녔던 악덕과 더러움을 봅니다. 
 
세월호는 인양됐다기보다 부상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진실은 더디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모습을 드러낸다’는 말처럼 끌어 올린 게 아니라 스스로 물 위로 떠오른 것 같습니다.
 
떠오른 세월호처럼 어둠 속에 가라앉았던 진실도 함께 떠올라야 합니다. 과적, 기계 결함, 외부 충돌 등 쟁점이 수두룩합니다.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우병우 전 정무수석이 수사방해가 무언지. 악천후에 왜 서둘러 운항을 강행했으며, 왜 갑자기 선장이 교체되고 무리하게 맹골수로를 지났는지. 세월호 밑바닥에 실은 과적 화물의 실체는 무언지. 왜 세월호 인양이 1073일이나 걸렸는지. 현장에 출동한 구조선은 왜 손발을 묶고 있었는지.
 
진실과 맞닥뜨리는 건 세상에서 가장 아픈 일입니다. 진실은 늘 고통스럽고 혐오와 분노를 부릅니다. 그러나 그 불쾌하고 쓰리고 따가운 고통을 감내해야 평화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 또 다른 비극을 막을 수 있습니다.
 
화해와 통합은 아름다운 단어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진실입니다. 노벨 평화상 수장자인 데즈먼드 투투 대주교는 “진정한 화해는 용서에 기반하는데, 진실을 알지 않고서는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세월호가 떠오른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온전한 진실입니다. 오로지 억울하고 허망한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잊지 않았다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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