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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길을 걸으며

변정순 음성수필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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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7.03.28 17:12
  • 기자명 By. 충청신문
 
[충청신문=변정순 음성수필문학회 회장] 오후 다섯 시 무렵 산책길에 나선다. 흙길이 좋아 오른쪽 길로 도는 원남지를 택했다. 요즘 나의 일상에서 제일 기다려지는 요맘때의 걷기 시간이다. 무수히 많은 길 중에 어느 길을 갈까를 정하는 것도 새로움이고 걷는 길마다 느낌이 다르다. 아직 겨울의 산을 벗어나지 못하여 적막하고 고독한 산 옆길을 지나며 머릿속은 또 설계하기 시작한다. 조금 있으면 산 벚꽃이 필 테고 산기슭 그 아래 조그맣고 예쁜 집 한 채를 지어볼까. 고작 한 시간여 걷는 길에서 상상의 나래를 펴며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집을 짓는다. 자연 속에서 나만의 행복이다. 이 길을 걸으며 낮에 있었던 소소한 일들을 떠올리고 별의별 일을 상상하며 반성도 하고 지친 몸을 재충전한다. 소중한 에너지 길이다.
 
그런데 이 시간 산책길에서 건축가가 되어 산새소리 벗 삼아 멋진 풍경이 있는 집도 지어보았건만 발걸음이 그리 가볍지만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낮에 있었던 일이 머릿속 한편에 저장되어서 계속 맴돌고 있기 때문일까.
 
점심을 먹고 있는데 젊은 여자가 네댓 살 되는 아이와 그 위에 나이 되는 아이를 데리고 들어왔다. 두 사내아이가 닮은 것을 보니 한눈에 형제라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작은 아이가 무슨 못마땅한 일이 있었는지 들어오자마자 갑자기 골을 부리고 울기 시작했다. 음식점 주인이 음식을 차리는 동안과 음식이 그들 자리에 놓여 있어도 그 아이는 자리에 앉지도 않고 계속 울고만 있었다. 
이런 아이에게 엄마로 보이는 여자는 앉은자리에서 꼼짝도 안 하고 더 큰소리로 “못 그쳐? 이리 와서 앉지 못해?” 하며 여러 번 소리 지르고 그 목소리가 진작부터 화가 나 있음을 짐작게 하였다. 참 칙살맞아 보였다. 식당 안이 시끄럽든 남들은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버티고 있었다. 
 
아이 엄마에게 “아이를 데리고 나가지 왜 저러고 앉아 있지 참 대단한 엄마야?”하고 속으로 불평을 했다. 이미 그 여자의 성격을 대충 짐작을 하여서 친한 사이가 아니면 보통 지적할 수 없음이다. 어른들은 어른보다 아이에게 훨씬 더 수용적이기 때문에 식당 주인도 손님들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지만 이 아이 엄마의 훈육 방식인지도 모른다.
 
드디어 그의 아빠로 보이는 이가 뭘 하나 들고 아이 곁으로 가니 아이 울음이 그치고 식당은 조용해졌다. 짐짓 식당에 들어오기 전에 아이가 뭘 사달라고 한 것 같은데 늦게 서야 아이가 원하던 것을 자신의 손에 쥐어지니 금방 울음을 그친 것 같다. 
지난날 아이들 키울 때 거의 경험했던 일들이다. 우리 집도 사내 둘이 컸으니 오죽했을까. 집에서보다 밖에 나와서 아이가 떼를 쓰고 말을 듣지 않으면 나는 정말 난처하고 훨씬 더 예민했다. 
 
공공장소에 가서도 낯선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 들으면 내가 교육을 잘 한 것 같아 괜히 으쓱해지고, 말 안 듣고 아이가 천방지축 나돌아다니면 창피하여 아이를 거칠게 잡아끌었거나 소리를 질러 빨리 통제하기도 하였다. 
 
기본적으로 아이를 잘못 키운 부모로 볼까 봐 사람들을 의식했다. 다른 사람 앞에서는 우리 아이들이 예의 바르고 무조건 말 잘 듣는 애들로 평가받는 것을 좋아했으니까. 
 
네댓 살 된 유아는 많은 사람들의 사회적 시선에 대한 발달이 아직 미숙하다. 지적과 통제보다 현 상황을 피하여 식당에서 아이를 데리고 나오는 행동으로 보여줘야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리고 왜 나와야 했는지를 부모가 아이에게 보여주면 되는 것을.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작은 규칙도 지키는 모습을 보이면 아이는 그대로 부모를 따라 자연스럽게 행동으로 하게 된다는 것을. 그런데 나도 실제 상황에서는 자각하지 못했고 행동하지 못했다. 
 
나도 우리 아이들을 키울 때 얼마나 많은 위선과 시행착오가 있었을까. 지나고 나니 부끄럽다는 생각과 그나마 지금 이 정도로 잘 커 준 아이들에게 고맙다는 생각을 한다. 아이 엄마도 자신의 좋은 육아 방법으로 아이들의 길을 잘 인도해 줄 것이라고 믿고 싶다. 
 
멋진 집도 여러 번 지었다가 부수고 아이 엄마의 믿음과 많은 생각을 하면서 걷는 동안 벌써 흙길이 어둑어둑해져 온다. 외진 길이어도 무섭지 않고 복잡했던 감정들이 하나씩 소멸되는 것 같아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다. 내일은 또 어떤 길을 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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