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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속으로] 회향

이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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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7.03.13 17:05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이혜숙 수필가
[충청신문=이혜숙 수필가] ㅇㅇ호가 멋진 출발을 하더니 회향을 한다고 한다. 희망 차게 출발한 지 꼭 일 년만이다. 원대한 꿈과 높은 기치를 내걸고 항해파트, 기관파트, 갑판파트까지 조직하고 힘차게 출발했다. 많은 선원들을 태우고 출항해서 바다 한가운데 왔을 때 선장의 마음이 바뀌었다. 더 큰 배에 오르기 위해 회향하기로 했다고 통보한다.
 
항해사로 일했던 나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출항할 때의 마음은 어디로 갔는지. 함께했던 선원들의 만류도 소용이 없다. 바람 난 남편이 새로운 사랑에 눈이 먼 것처럼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자신의 뜻대로 하겠단다.
 
사람의 욕심은 어디까지 일까. 먹지도 못하고 재물도 아닌 명예는 도대체 무엇일까. 큰 세상이나 작은 세상이나 다 똑같은 것 같다. 신뢰를 중요시해야 하거늘 이미 그런 것은 엿 바꿔 먹은 지 오래인가 보다. 아니 신뢰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지 모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그런지 항해를 계속하자는 쪽과 회향하자는 의견이 대립하다가 서로 상처를 주기도 한다. 나는 바람난 마음은 절대 돌아오지 않으니 보내주자는 쪽이다. 보내줘야 한다고 했더니 무책임하단다. 말을 쉽게 하는 사람들에게 실망을 한다. 이런 사태를 만든 선장은 묵묵부답이다. 오로지 옮겨가기 위한 준비만 하고 있다.
 
함께 했던 선원들은 갑자기 왜 그렇게 다들 잘났을까. 의견이 분분하고 다들 자기 주장이 우선이다. 조용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선두지휘를 하려고 한다. 내 탓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 남의 탓이다. 나 역시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흘러 선장의 마음을 돌이킬 수 없다는 결론이 나자 선원들은 어쩔 수 없이 회향하는 쪽으로 마음을 잡는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기분이 찝찝한 것일까. 사람이 만나 서로를 알아가고 함께 일하기 위해서는 맞춰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결혼한 부부도 그렇고 친구도 그렇다. 우리도 역시 그런 시간이 필요했다. 일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서로를 조금 더 알고 잘 맞춰가고 있는 이 때, 이런 일이 벌어지니 배신감이 나를 더 힘들게 한다.
 
나는 늘 기본이 서는 사회를 강조한다. 작금의 나라도 기본이 무너져서 어지러운 상태가 되어 온 국민이 분노하고 있는 게 아닌가. 지도자들은 서로 잘났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세상에는 정말 잘난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다. 다들 국민을 위한다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 우리 선원들도 지금 똑같다. 앞에서 잘난 사람과 뒤에서 잘난 사람들이 서로 앞을 다투고 있다. 
 
뜻밖의 사태를 보면서 나는 뒷걸음 치고 있다. 이럴수록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싫어진다. 보왕삼매론을 다시 새겨본다. 나를 다스리기 위한 몸부림이다. 사람에게 싫증날 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부처님의 말씀을 되새기는 일이다.
 
결국 선장은 내렸다. 다시 새로운 선장과 구성원이 조직이 될 것이다. 새로운 선장도 높은 뜻을 펼치려고 출항의 돛을 올릴 것이다. 어떤 항해가 될지 모르지만 새 선장도 원대한 꿈을 꾸겠지. 어떤 계획이 설계 되었는지 모르지만 중간에 회향하는 일만은 없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삼 년의 임기 중에 일 년 만에 나는 구성원에서 빠졌다. 다시 맡아 일을 해 줄 것을 요청해 왔지만 사양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고 했다. 
 
내가 문인이 된 것은 글을 쓰기 위한 것이다. 문인이라면 글 잘 쓰는 것을 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번에 책임을 맡고 일을 하다 보니 글을 쓰는 일보다 다른 일이 더 많다는 것을 알았다.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일단 소임을 맡은 이상 책임을 다 해야 했다. 마음을 비우고 배에서 내리면서 모든 것을 훌훌 털어낼 수 있음에 감사하고 글 쓰는 일에 더 마음을 써야겠다고 생각하니 후련하다.
 
크든 작든 사람들은 권력을 좋아하나 보다. 권력을 가지면 그것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 그러나 책임과 의무는 뒷전이고 권력만 행사하려 한다. 지금 시끄러운 나라도 그것 때문이 아닌가.
 
새로 출항하는 ㅇㅇ호의 선장은 봉사와 화합을 우선으로 하는 값진 항해를 하길 진심으로 바라본다. 아무리 권력을 좋다고 해도 우리는 허명뿐인 명예보다는 글로써 자신의 격을 높이는 진정한 문인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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