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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아침에] 너와 나의 만남

정관영 공학박사. 우석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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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7.01.22 16:01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정관영 공학박사. 우석대 겸임교수
[충청신문=정관영 공학박사. 우석대 겸임교수]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무수한 사람들을 만나고 접하기도 한다. 독일의 문학자 한스 가롯사는 ‘인생은 너와 나의 만남이다’라고 말했다. 산다는 것은 만난다는 것이다.
 
진흙 속에 묻혀있는 진주는 누군가 발견해 주어야만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학교에서도 학생들의 재능이 뛰어나도 선생님이 발굴해 주지 못하면 사장되는 것을 본다. 자체발광이 아름다워도 발견하는 눈을 만나지 못하면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인생에서 누구를 만나느냐는 어쩌면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수도 있다.
 
파리의 뒤를 쫓으면 변소 주위만 다닐 것이고, 꿀벌의 뒤를 쫓으면 꽃밭을 함께 노닐게 될 것이다. 물은 어떤 그릇에 담느냐에 따라서 모양이 달라지지만 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운명이 달라진다.
 
이렇듯 사람은 내면이 아무리 고와도 가치를 알아주는 눈을 만나지 못하면 묻힌다. 좋은 환경,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은 한 번의 겸손도 훌륭한 인품이라고 드러나고 칭찬을 받는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의 겸손은 쌓여야 비로소 드러난다. 부자는 가짜 진주를 목에 걸어도 아름답다는 찬사를 듣지만 가난한 사람은 진짜를 걸어도 가짜라고 여기는 것과 같다. 그러나 정품을 알아보는 눈을 만나면 배경과 상관없이 가치를 인정받는다.
 
아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있다. 그는 경제적으로는 어렵게 살지만 이웃의 어려움을 보면 지나치지 않고 솔선수범하며 돕는다. 성격도 밝고, 인정이 많다. 봉사는 물론 희생정신도 투철하다. 그를 지켜보며 주위사람들의 관점이 다양하다. 자기관리를 위해 가끔 말쑥한 옷차림으로 외출이라도 하면 셋방살이 주제에 무슨 멋이냐고 비아냥거리기 일쑤이다. 어른들에게 식사대접을 하면 궁색하고 초라한 여건에 남에게 베푸는 것이 분수에 넘치는 것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그러던 중에 집 주인과 말다툼이 벌어졌다. 겨울에는 일이 적어 월세를 제 때에 내지 못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주인이 생각하기에는 제 앞가림도 못하면서 주제에 무슨 남 걱정이냐는 것이다.
 
시골은 이웃의 가족관계, 대소사, 심지어 밥그릇 숫자까지도 알고 지낸다. 서로 끈끈하여 옳고 그름을 따지기 이전에 월세 사는 뜨내기에 대한 호의는 깊지 않다. 언젠가는 떠나갈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간과하기 때문이다.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은 그는 점점 소심해지고 구설수를 피해 고립되어 갔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 살아온 행동에 대한 불안감이 컸다. 자신감도 잃어갔다. 
 
외로웠던 그는 인근의 교회를 나가게 되었다. 주변에서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비현실적인 세계에 빠진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사실적이고 진실의 여부가 중요하지 않았다. 사람의 피해의식 때문에 사람의 위로보다 초월적 존재에 기대보고 싶었을 뿐이다. 그는 교회에서 ‘초라한 접시를 보기보다는 당신을 생각하며 만들어준 음식에 감동한다’는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다. ‘재료가 풍부하지 못해 제 맛을 내지 못해도 애쓰는 마음을 귀하게 여긴다는 분은 예수님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사람은 보이는 모습이 어떠하든 사랑 외에는 더 이상의 가치 있는 덕목이 없다’고 강조하는 분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몇 개월 후에 세상을 향해 일어서는 두 다리에 힘이 생기고, 평안한 마음을 찾을 수 있었다. 그곳에서는 만나는 사람마다 손을 잡아주고 격려해 주었다. 그의 이웃을 생각하는 인정스러움과 헌신의 열정에 박수를 보내며 호응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가 정신적인 안정과 평안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이해해 주는 예수님 품이었다. 예수님의 품이 얼마만큼 넓고 큰지도 모른다. 잘 살 수 있도록 집을 사 주지도 않았다. 나를 상처 준 사람들에게 복수 해 주지도 않았다. 그냥 그대로 자연스러운 내 모습을 인정해 주었을 뿐이다.
 
조명이 무슨 색이냐에 따라 비춰지는 모습이 다르다. 곱게 화장을 하고 어두운 공간에서 붉은 조명을 받으면 요염하게 보인다. 파란빛은 괴기스럽고, 은은한 빛은 고상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똑같은 조건에서도 만남에 따라 달라진다.
 
정유년 새해가 밝았지만 세계정세는 물론 국내정세도 어두운 터널과 같다. 이럴 때 일수록 상대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생각해 보자. 남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과 말, 행동은 너그러움이 아닐까. 
 
우리 모두 자신을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좋은 인연의 만남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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