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이 운다. 시간을 보니 오후 2시, 공기 좋은 시골은 아니어도 모처럼 듣는 닭 울음소리가 명쾌하다. 올해는 특히 붉은 닭 띠 해라는 것 때문에 더 그렇게 들렸을까. 시골에서 듣는 것도 아니고 첫 새벽 아침도 아니었으나 도심에서 듣는 게 어디 보통 일인가 싶다.
불현듯 이웃집에서 들은 닭울음소리 때문에 새해를 맞는 기분이 더 설레는 것 같은 느낌. 옥탑에서 내려다보면 가끔 마당을 서성이곤 했었지. 닭 중에서도 별나게 씩씩한 장닭을 보면 남의 집 닭이지만 무척이나 믿음직하다. 먹이를 찾는 것도 같고 아니면 순찰을 도는 듯 유유히 활보하는 모습이 오늘따라 유다른 정경으로 다가온 것이다.
문득 요모조모 생김을 살펴보는데 새삼스러운 말로 아주 사납게 생겼다. 쏘아보듯 예리한 눈과 날카로운 부리, 촘촘히 박혀 있는 깃털은 또 갑옷의 비늘처럼 견고해서 잔뜩 무장한 모습이다. 먹이라도 찾는 듯 땅을 버르집는 발가락 또한 다부진 게 어디 한 구석 만만한 데가 없다. 오죽하면 ‘오달지기는 사돈네 가을닭’이라고 할 만치 야무진데다가 날개까지 있으니 활동력이 강하다는 게 괜한 소리가 아니었다.
가장 큰 특징은 뭐니뭐니해도 붉은 벼슬인데 한마디로 위풍이 당당하다. 서슬이 푸르게 그것도 머리 꼭대기에 달려 있는 모습이 과연 벼슬이라고 할 만하구나 싶다. 아니 ‘벼슬’은 곧 ‘관아에 나가서 나랏일을 맡아 다스리는 자리’, 또는 관직을 말할 뿐 다른 뜻은 없다. ‘닭이나 새 따위의 이마 위에 세로로 붙은 살 조각’은 곧 벼슬이 아닌 ‘볏’이지만 충청, 경상 지역에서는 ‘볏’을 벼슬이라고 했다는 말이 있다.
말하자면 사투리이기 때문에 ‘벼슬’이 아니라 ‘볏’이라고 하는 게 올바른 표기법이지만 조선시대 사대부 집안 사람들이 쓰고 다니던 관을 보면 끝이 뾰족한 게 어김없이 닭의 벼슬을 닮았다. 품계가 높아지고 신분이 상승되는 과정을 “벼슬이 높아진다”고 하듯 벼슬이 곧 옛날 관아에 출근하는 사람들이 닭의 깃을 꽂고 다닌 것에서 유래한다면 전혀 터무니없는 말은 아닌 것 같다. 그렇더라도 근거가 약하기 때문에 함부로 드러낼 수는 없되 특별히 닭 띠 해를 맞아 조심스럽게 펼쳐보는 것이다.
목청을 들어보면 또 드물게 시원스럽다. 지금 나른한 오후에 들을 때도 그렇거늘, 첫 새벽 울 때는 얼마나 우렁찬 소리였을까. 그렇게 울 때마다 귀신과 요괴 등이 놀라 사라졌다고 하는 게 수긍이 간다고나 할지. 비록 옛이야기라 해도 그로써 정결한 하루가 시작되었을 거라고 생각하면 첫 새벽 여명을 가르는 것으로 닭 울음만한 것은 또 없을 것이다.
날마다 그렇게 때를 맞춰 울면서 새벽을 알리곤 했으니 그야말로 ‘알람시계’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래서 다섯 가지 덕의 하나인, 믿을만하다는 신(信)으로 일컬어졌을까. 벼슬(冠)은 또 문(文)을 나타내며, 발톱은 무(武), 적이 나타날 때 용감히 싸우는 것은 용(勇), 먹이를 찾아낼 때마다 꼬꼬꼬 하면서 무리를 부르는 것은 인(仁)의 경지라고 했다. 무엇보다 닭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하루를 설계하고 횃대에 올라가는 시간에 맞춰 하루를 정리했다니, 집안에서 키우는 가금류 중 닭보다 친숙한 것도 드물다는 뜻이다.
정유년 새해가 밝은 지도 어언 사흘째. 2017년은 닭 띠, 그 중에서도 붉은 닭 띠 해라고 하니 어쩐지 특별한 한 해가 될 것 같다. 닭은 또 생김처럼 사납게 굴기도 하는데, 그래서 닭싸움이라는 말도 나왔을 것이다. 툭하면 쪼아대는 버릇 때문이지만, 잠시 전 울어대던 수탉이 한 차례 순시나 하듯 닭장 주변을 살피는 것을 보면 엄연히 가족을 지키는 차원이었다. 공격적일 것 같아도 괜한 시비로 싸움은 걸지 않는다. 말은 즉 싸움이되, 이를테면 용감하기는 해도 힘을 과시하는 등의 무모한 기질은 없다는 뜻이다.
특별히 처가에서 백 년 손님 사위에게 씨암탉을 잡아 극진히 대접하고 사람들은 또 한여름 보양식으로 삼계탕을 끓여 먹는다. 버릴 게 거의 없고 십이지 중 유일하게 날개가 달린 동물이다. 최근에는 비록 조류독감으로 수난을 겪고 있으나 첫 새벽 홰를 치면서 울어대는 소리를 생각하면 어수선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가슴까지 시원해진다. 2016년은 또 어렵고 힘든 일이 많았으니 올 한 해는 여느 때보다 모든 게 잘 풀릴 것을 소망해 본다.
이정희 시인. 둥그레동인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