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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충청남도사회적경제인스토리] 임은순 (사)한산모시조합 대표

잠자리 날개 같은 우리 옷 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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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6.12.27 19:04
  • 기자명 By. 지정임 기자

동네 동네마다 바디집 소리가 울리던 그때를 추억하며 한산모시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한산모시조합. 젊은이들이 외면하고 돌선 그 자리에서 노익장을 과시하며 오늘도 베틀에 올라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아마 여장부가 있다면 바로 임은순 대표같은 열정과 용기를 가진 사람이 아닐까? 순수한 열정만큼 뜨거운 것은 없다는 임은순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한국의 멋과 아름다움을 영원히 간직하고자 2006년 6월, 한산모시조합을 설립하여 진솔한 땀과 정성으로 한산모시 계승에 힘쓰고자 한다"

 

 
모시 관련 일을 한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제가 모시 짠지는 30년이 조금 넘었고 이 조합을 운영한 건 2006년도 4월 6일부터에요. 처음에 너무 고생을 해서 날짜도 안 잊어버려요. 그때 당시는 시장에 한산모시협동조합이 있었어요. 생산자 조합원요. 매년 지원을 하는데도 해마다 시장이 죽어가서 바닥치기 직전에 생산자 단체들이 직접 단체를 만드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이 있어 생산자를 구성하기 시작했어요. 너무 오랫동안 장사꾼들의 주머니만 채우다 보니 모시가 없어지게 생겼지요. 한산모시는 여기밖에 없는 거잖아요. 없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서천군과 계속해서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이야기를 나누며 1만원, 2만원 출자금 받아서 56명 생산자 조합을 만들었어요.
창립하는 그때부터 대표를 맡게 됐어요. 초기 조합비가 140만원밖에 안됐어요. 생산자들이 다 여자들이고 연세도 많아서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 이사 6명이 십시일반으로 1800만원을 만들어 시작했어요. 도청에서 사단법인 간판을 달고 사진을 찍어 보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식당 하려고 만들어놓은 집에 주소이전해서 식당 간판을 25만원에 천갈이 해서 어렵게 어렵게 사진 찍어 보내고 울기도 많이 울고 힘겹게 여기까지 왔어요.
 
열정과 의지가 대단하세요. 더 말씀해주세요?
처음에 장사꾼들이 이 여자가 석 달 이상 다니면 손에 장을 지진다고 했어요. ‘여자가 그렇지’라는 소리를 정말 듣기 싫어 억척같이 다녔어요.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판로를 찾아다니는데 정말 어렵더라고요. 하루는 조합원들에게 “3년 동안 나도 짝사랑할 만큼 많이 했으니 더 이상 어쩔 수 없다. 모시를 아무리 팔아달라고 해도 안 되니 나 원망하지 말아라.”라고 하며 포기하려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포기할 수 없더라고요. 그래서 이사들을 설득해서 700만원에 컨테이너 하나 들여놓고 옷을 만들어서 팔기 시작했어요. 시작하고 한 석 달 동안 1억 넘게 팔았어요. 그해 가을까지 매출이 3억 이상 되었어요. 여름에는 모시철이라 괜찮은데 겨울은 돈 벌려고 별거 다 했어요. 여러 가지 소모품 같은 것도 만들고…
 
한산모시 상표등록자가 대표님으로 되어 있나요?
네. 농림부 클러스터 사업으로 자금이 나온 게 있었어요. 지리적 표시단체인증을 그해에 받았고 단체표장 등록을 하면 상표등록까지 되더라고요.
판로도 없고 가진 것도 없어 우리가 내세운 건 품질과 신용이에요. 시장모시는 30cm안에 660올이 들어가는데 우리는 그 모시와 차별화를 두기 위해 31cm 700올을 넣어요. 그걸로 시작해서 품질도 높이고, 신용이 생명이라 원산지 관리를 엄청 철저하게 해요.
현재 제품은 인정을 받고 있는데 일하시는 분들의 연세들이 너무 많아서 이것을 계승해야 하는 게 걱정이에요.
 
사회적기업은 어떻게 알게 되셨어요?
그렇게 조합을 운영하다 보니 사회적기업이라는 말을 들었어요. 지난 2007년인가 사회적기업 서류를 냈는데 탈락했어요. 이유는 매출액이 많은데 뭐 하러 사회적기업을 하냐고 탈락시켰어요. 그래서 서류에 또 냈어요. 그런데 또 떨어진 거예요. 그러다 그냥 이곳에 실사나 와 들여다보자고 오셨다가 준비도 없이 설명했는데 예비지정을 받았어요. 인건비 지원받는 동안 급여 나가는 부분을 계속 모아 두었다가 지원이 끝난 다음에 인건비로 지출했어요. 인건비 지원이 끝났다고 해고할 수는 없잖아요.살림만 하던 아줌마라 살림하듯이 사업을 했어요. 돈이 벌리면 계속 예치해 놓고, 이제는 어느 정도 자리 잡았어요. 한번 찾아온 손님들이 계속 찾아 오고 소문도 많이 났고요. (서류를 보여주며) 지금 이 발주서는 하이모 가발 만드는 곳이에요. 서울 광장시장에 동양직물, 대구에 승복을 만드는 대린상사로 납품하고요. 나머지는 거의 일반 손님들이에요.어느 교수님이 한산모시 이름만으로도 가치가 엄청날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사회적기업을 하게 된 동기가?
작업장에서 모시직조하는 일자리 창출로 사회적기업을 운영하고 있어요. 우리 여사님들 일자리도 얻게 되고… 제일 연세 많으신 양반이 70세가 넘으셨고 그리고 50대가 6명 정도 되는데 여기서 가르쳐서 모시를 짜고 있어요. 기존 사람 중에 제일 적은 나이가 저에요. 지역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만들고 이 기술이 계속 전수되게 하고 싶은게 사회적기업을 하게된 동기라면 동기죠. 여기는 사무직 1명, 판매직 1명, 지하 작업장에 모시 짜시는 분이 14명이 일하고 있는데 10명 이상은 고령자가 대부분이에요.
 
한산모시에 엄청난 애착이 있으신거 같은데. 특별한 이유가?
사실 너무 많이 고생해서 한산모시에 대한 애착이…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모시 문화재 준비하다 쓰러져 한 2년 쉬었다 올해 다시 복귀했어요. 복귀할 생각은 없었는데 하도 조합원들의 성화에 다시 복귀는 했는데 지금 너무 힘들어요. ‘여자가 하는 게 별 수 없다’, ‘그 여편네들이 뭘 한다고’ 그런 얘기 안 들으려고 이를 악물고 했어요. 진짜 앞만 보고 달렸다는 표현이 이럴 때 딱 쓰는 표현이야!
 
얘기를 듣다 보니 가족들 반대가 많았겠어요?
자녀들이 1남 1녀인데 조합을 다시 맡고 나서 이제 쓰러지면 쳐다도 안 본다고 난리에요. 이제 아이들은 다 출가했어요. 한편으로 마음 아프기도 하고 허망하죠.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하는지. 지금도 집에서는 다른 일을 하면서 신경을 덜 쓰라 해요. 그런데 머리로는 되는데 행동은 그게 안돼요. 너무 힘들게 여기까지 와서 여기는 쳐다보고 싶지도 않다고 했는데 내가 생각해도 내가 조금 모자란 거 같아요.
 
사회적기업으로 운영하면서 특별히 어려운 점이?
사실 사회적기업이어서 어려운 건 별로 없었는데 교육이다 뭐다 너무 많아서 일할 시간이 없어요. 오라는 대로 다 가면 날마다 가야 돼요. 또 우리가 하는 일의 특성상 노동부나 농산물 품질관리 등 너무 감시받는 곳이 많아요. 그렇지만 인건비 지원이나 철저한 관리가 체계적으로 되어서 좋아요. 그리고 매년 대학과 연계해서 디자인 개발 등을 했어요. 그래서 지금은 상품이 많이 다양화 되었어요.
 
어떤 역량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사회적기업은 첫째도 둘째도 공정하고 원칙을 지켜가면서 근로자와 소통을 잘해서 회사내부가 안정돼야하고 서류만 갖춰놓고 말만 앞세우는 것만 안하면 돼요. 철저하게 지켜야 하는 원칙을 지키고 욕심 안 부리면 무얼 하던지 그거면 돼요.
사람이 혈관이 막히면 터지거나 죽는데 회사를 운영하는데 이렇게 계속 순환만 잘 시키자는 원칙대로 했어요. 모시를 짜서 인건비만 나오면 된다. 계속 순환만 시키자 그 원칙만 지켰어요. 그리고 신용, 거래, 얼마만큼 고객 대처를 잘 하느냐! 신용만 지키면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 내 신조에요. 우리 여사님들과 회의할 때도 첫째도 둘째도 눈 가리고 아웅하지 말고 시간이 걸려도 잘 짜라! 소비자가 같은 돈을 주고 잘 짠 거 사야지요.
 
열정과 자부심으로 여기까지 오셨는데. 앞으로 바람이 있다면?
솔직히 말로 표현이 안될 만큼 내 자식보다 내 신랑보다 내가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든 조합이라 자부심은 정말 대단해요. 앞으로도 우리 조합이 이 정도로만 잘 돌아가면 다행이죠. 그렇지만 다들 나이가 먹어 몸도 안 좋고 여사님들도 연세가 너무 많아서 이 기술이 끊기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가장 많이 들어요.
사실 돈벌이가 안돼서 배우는 사람이 없어요. 서천군에서도 1인당 60만 원씩 줘가면서 일주일에 3번씩 배울 사람을 모아도 지원자가 많지 않아요. 실 만들고 태 모시 짜는 것부터 매년 공고를 하는데 기술을 배울 사람이 없어요. 사람 마디가 6000개래요. 모시를 짜는데 사지육신 6000개를 다 놀린대요. 그런데 이걸 짜도 인건비가 안 나와요. 앞으로 바람은 젊은 사람들이 이런 우리 기술에 관심을 가지고 나라에서도 더 많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 한산모시가 계속 계승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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