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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시각] 고목과 나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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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6.11.17 17:10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안 순 택 논설실장
[충청신문=안순택 논설실장] 가을단풍은 한 90일 볼 수 있다 해서 ‘구추단풍’(九秋丹楓)이라 부릅니다. 조선의 학자 이천상은 ‘관동록’(關東錄)에서 노래합니다. ‘곳곳의 단풍 비단에 수놓는 듯 새롭고, 구추의 붉은 잎 꽃보다 더 붉네.’(處處霜林錦繡新, 九秋紅葉勝花辰) 단풍이 꽃보다 더 좋답니다.
 
중국 당나라 때 시인 두목은 ‘서리 맞은 단풍이 이월 봄꽃보다 더 붉네’(霜葉紅於二月花)라는 절창으로 한 술 더 뜹니다. 아름다운 단풍도 끝물입니다. 낙엽이 지고 있습니다.
 
나무들은 털어버릴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빈 몸으로 겨울맞이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잎이 지고 나면 빈 가지들만 초겨울의 하늘 아래 허허로이 남을 것입니다. 여름철 그 무성하던 잎들은 미련 없이 떨어져 발치에 눕습니다. 단풍은 낙엽이 지는 나무들이 겨울을 나기 위한 준비입니다.
 
해가 짧아지고 기온이 떨어지면 나뭇잎에 있는 영양분이 줄기로 이동하고 나뭇잎이 가지에서 쉽게 떨어지도록 연결 부위에 특별한 세포층이 생깁니다. 이걸 ‘떨켜’라고 하지요. 헤어짐의 자리입니다. 떨켜는 식물에 있는 수분이 빠져나가는 걸 막기도 하지만 미생물이 침입하는 걸 막아주는 역할도 합니다.
 
떨켜가 생겨 헤어질 준비가 되면 잎은 물을 공급받지 못하지만 광합성은 계속 진행됩니다. 이 과정에서 초록색을 내는 엽록소가 파괴됩니다. 나무에 단풍이 드는 이유는 나뭇잎이 초록으로 보이게 하는 엽록소가 파괴되면서 그간 보이지 않던 색소들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엽록소보다 분해 속도가 느린 여러 종류의 색소들이 표면에 드러나며 붉게, 노랗게 또는 갈색으로 물들게 됩니다. 
 
흔히 단풍이 절정에 이른 걸 ‘불탄다’라고 합니다. 새빨간 단풍잎 때문이지요. 주로 단풍나무과의 나무들의 잎인데, 잎사귀 둘레가 갈라져 뾰족뾰족 나온 걸 세어 보십시오. 그게 세 개이면 신나무, 다섯 개이면 고로쇠나무, 일곱 개이면 단풍나무, 아홉 개이면 당단풍나무, 열한 개이면 섬단풍나무입니다. 새빨갛게 변하는 건 안토시아닌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은행나무가 노란 건 카로틴이란 색소가 노출되기 때문입니다. 붉은 색의 안토시아닌과 노란색의 카로틴을 혼합하면 화려한 주황색이 만들어지기도 하지요. 잎마다 안토시아닌과 카로틴의 함량이 달라 색이 섞이면서 여러 가지 빛깔로 나타납니다. 토양이나 날씨에 따라 형성되는 양이 달라 여러 색깔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남는 색소는 탄닌입니다. 잎을 갈색으로 물들이지요.
 
그리고 나무에서 떨어져 낙엽이 됩니다. 단풍은 헤어짐을 앞두고 단 한 번 찬란하게 꽃피우는 이파리의 불꽃축제인 셈입니다.
 
나무는 이파리를 모두 떨구고 미끈한 몸을 드러낼 것입니다. 색을 드러내고 몸뚱아리를 드러내고, 그래서 저는 가을을 ‘드러냄의 계절’이라 부릅니다. 나무뿐이 아닙니다. 수확이 끝난 땅도 민낯을 드러냅니다. 풀도 누워버려 지형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지금 정권은 가을인 것 같습니다. 그동안 대한민국이란 나무를 장식해온 이파리들이 하나 둘 떨어지고 그 적나라한 모습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분노의 바람이 거세게 몰아칩니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걱정하는 국정 혼란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가지를 떠난 잎들은 어디로 갑니까. 여기저기 굴러다니다가 어느 나무 밑이나 풀뿌리 곁에 누워 삭아질 것입니다. 그러다가 새봄이 오면 뿌리에 흡수돼 수액을 타고 새로운 잎이나 꽃으로 변신할 겁니다. 그렇습니다. 가지에서 져버린 나뭇잎처럼 떠나지 않고는, 나무로서는 버리지 않고는 변신이 불가능합니다.
 
벌거벗은 채 다가올 한 겨울의 시련을 준비하고 있는 나목은 보기에도 안쓰럽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나무의 순수함과 진실함, 그리고 새로운 희망이 느껴집니다. 꽃과 잎을 틔우지 못하는 ‘고목’(枯木)이 아니라 기나긴 겨울이라는 인고의 시간을 극복하고 다시 새싹을 틔울 봄날을 기다리는 ‘나목’(裸木)이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은 고목이 아니라 나목이라고 믿습니다. 이 혼돈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 벌거벗은 나목이 돼야 합니다. 그리고 새봄을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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