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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 가을하늘과 한글

안순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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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6.10.06 16:00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안 순 택 논설실장
[충청신문=안순택 논설실장] 하늘을 보셨습니까. 시리도록 푸른 하늘이 아찔할 정도로 장엄합니다. 가을하늘입니다.
 
중학교 시절 국어선생님은 나지막하면서도 단단한 목소리로 가난에 찌든 우리를 다독였지요.
 
“없이 살아도 기죽지 마라. 다른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보물을 너희는 맘껏 누리고 살고 있단다.”
 
지금이야 세계에 자랑할 게 여럿이지만 1970년대는 그저 먹고살려고 발버둥 치던 때입니다.
 
“하늘을 보라. 공활한 가을하늘이 얼마나 아름다우냐. 저처럼 아름다운 하늘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 또 하나는 한글이다. 한글을 말하고 쓴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겨라. 한글이 얼마나 위대한 글자인지 세계가 인정하는 날이 반드시 올 거다. 가을하늘의 아름다움을 한글로 노래할 수 있는 너희는 축복 받은 아이들이다.”
 
자랑스럽게 하늘을 봅니다. 이마마저 푸르게 물들일 태세인 하늘의 푸름에 반해 넋을 잃습니다. 고려 도공은 가을하늘을 보았기에 그토록 아름다운 푸른빛을 청자에 담아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희승 교수는 ‘청추수제(淸秋數題)’란 글에서 가을하늘의 아름다움을 그려냅니다.
 
“옥에도 티가 있다는데 가을하늘에는 얼 하나 없구나! 뉘 솜씨로 물들인 깁일러냐? 남이랄까, 코발트랄까, 푸른 물이 뚝뚝 듣는 듯하구나! 내 언제부터 호수를 사랑하고 바다를 그리워하고, 대양을 동경했던가? 내 심장은 저 창공에 조그마한 조각배가 되어, 한없는 항해를 계속하여 마지않는, 알뜰한 향연을 이 철마다 누리곤 한다.”
 
‘얼’은 얼룩, ‘깁’은 비단입니다. 얼룩 하나 없는 비단이라며 연신 감탄사를 토해냅니다. 가을하늘빛은 너무도 맑고 투명해서 바늘로 콕 찌르면 “쨍”하고 깨질 것 같습니다.
  
맑고 푸른 가을하늘을 한문으로 ‘추청(秋晴)’이라고 합니다. 글 쓰는데 도움이 되는 글이 있을까 싶어 인터넷 검색창에 ‘추청’이라고 쳐 보았습니다. 그런데 온통 쌀, 그것도 일본말로 ‘아키바레’만 가득 뜹니다. 쌀값이 얼마이고, 얼마에 매입하고, 어디서 살 수 있는지만 가득합니다.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그냥 한글로 ‘가을하늘’라 쓰면 족한데 말입니다.
 
새삼스러운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우리말을 맛과 향과 결을 그대로 글로 옮겨놓을 수 있는 건 이 지구상에 오직 한글뿐입니다. 한글이 얼마나 뛰어난 글자인지는 우리를 정보기술(IT)산업 강국으로 이끈 데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 어디에도 스며들어가는 한글 덕분에 우리는 큰 어려움 없이 인터넷 세상으로 옮겨갈 수 있었던 겁니다. 만약 지금까지 한자를 함께 써야 했다면 한국은 세계 최강이라는 ‘인터넷의 나라’를 구축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모두 12개로 제한된 휴대폰의 자판으로 가장 빠르고 쉽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문자가 한글 말고 또 있습니까.
 
한글학회가 발행하는 기관지가 ‘한글’입니다. 1932년에 창간됐으니 올해로 84년이 됩니다.
 
이윤재 선생은 창간사에 이렇게 썼습니다.
 
“우리 조선 민족에게는 좋은 말 좋은 글이 있다. 더욱이 우리글-한글은 소리가 같고, 모양이 곱고, 배우기 쉽고, 쓰기 편한 훌륭한 글이다. 우리는 여태까지 도리어 이것을 푸대접하고 짓밟아버렸음으로 매우 좋아야 할 한글이 지금에 와서는 지저분하여 아주 볼모양 없이 된 것이다. 우리는 하루바삐 죽정밭 같이 거칠은 우리 한글을 잘 다스리어, 옳고 바르고 깨끗하게 만들어 놓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80년이 넘게 지났지만 달라진 게 전혀 없다 싶습니다. 누구의 잘못이라 가리고 따질 것 없습니다. 영어나 한자를 써야 유식하게 보인다는 허영심, 덜 떨어진 사고가 주범이니까요.
 
해마다 한글날이 돌아오면 ‘문화의 터전이요, 민주의 근본이요, 생활의 무기’이니 ‘이 글로 이 나라의 힘을 기르자’고 노래합니다. 정말 한글은 문화를 꽃피우는 토양이요, 널리 쓰여 배움의 평등을 이뤘으니 민주의 근간이며, 쉬이 배워 불편 없이 쓰임은 생활의 무기로 손색이 없습니다. 더욱이 스마트폰과 인터넷으로 표현되는 신유목민시대에 가장 효율적인 생활무기가 됐습니다.
 
이 위대한 한글을 만든 선조들, ‘미래의 문자’를 창제한 세종대왕과 그 시대 학자들에게 고맙고 죄송합니다. 모레가 한글날입니다. 이날도 가을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푸르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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