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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시각] 이불에 새긴 청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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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6.09.22 16:52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안 순 택 논설실장
[충청신문=안순택 논설실장] 닷새 뒤면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이른바 ‘김영란법’이 시행됩니다. 시행을 앞두고 (무엇이 걸릴지 몰라서)혼란이 클 거다, (분위기를 다잡기 위해서)칼바람이 불 거다, 는 등 다양한 예상이 나옵니다.
부작용과 불편, 시행착오가 있을 것입니다. 불편을 감내하고 더 큰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것이 우리에겐 더 소중합니다. 이 법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공직자들에겐 엄청난 도덕적 의무감, 국민들에겐 정의를 구현하려는 자정의 힘이 아직 살아있다는 안도감을 주리라 생각합니다.
 
국가나 공공을 위해 복무하는 공직은 결코 사사로움이 개입돼서는 안 되는 자리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공직자는 강직(剛直)해야 합니다.
 
강직하려면 어찌해야 할까요. “청렴하기 때문에 강직할 수 있다.” ‘검찰의 양심’으로 불리는 최대교 전 고검장은 들려줍니다. 그는 부당한 간섭이나 압력이 맞서 검찰 중립을 위해 혼신을 다한 사람입니다. 백범 김구 선생 암살사건 때 담당 검사장인 그 몰래 경무대의 지침에 따라 검찰총장이 직접 영장을 청구하자 사표로 맞섰습니다. ‘이승만의 양녀’로 불린 임영신 상공부 장관의 독직 사건 때도 대통령과 법무장관, 검찰총장 등의 회유와 압력에도 불구하고 “기소 불기소 결정은 검사의 권한이고 형사소송법에 규정돼 있다”고 한 뒤 전격 기소해 버렸습니다. 그는 결국 이 일로 옷을 벗었습니다.
 
그는 도시락을 쌀 형편이 못 돼 점심때면 문을 잠가놓고 밥 대신 누룽지를 먹었답니다. 기자에게 들키는 바람에 ‘누룽지 검사장’이란 별명을 얻었지요. 이웃집에서 담 너머로 건넨 돌떡도 돌려보내고, 시골서 동생이 씨암탉을 들고 오자 “속 모르는 남들이 보면 검사장에게 뇌물 바치는 줄 알지 않겠느냐”고 꾸중하기도 했답니다.
홍만표 전 검사장과 최유정 전 부장판사, 진경준 검사장, 김수천 부장판사, 김형준 부장검사 등 요즘 언론에 오르내리는 판사와 검사의 끝없는 타락상, 법조계의 부끄러운 몰골을 보자니 새삼 최 전 고검장의 ‘대쪽’이 그리워집니다.
 
서울 동대문 밖, 지금의 종로구 창신동 창신초등학교 골목 자리에 다 쓰러져 가는 집이 한 채 있었습니다. 세종 때 정승 유관(柳寬)이 살던 집인데, 비가 몹시 오던 날, 집에 비가 새자 우산을 펴고 책을 읽으면서 “우산 없는 집은 오늘 같은 날 어떻게 지내나”고 걱정했던 데서 따와 우산각(雨傘閣)으로 불렸지요. 우산이 집 구실을 했다고 해서 이름이 우산각입니다.
 
당시 영의정 세비는 석달에 한 번씩 나오는데 2등품 쌀 4섬에 현미 12섬, 조 1섬, 콩 12섬, 명주 2필, 베 4필, 저화(楮貨) 4장이었습니다. 저화는 일종의 화폐로 쌀 1되에 저화 1장이었다니 명목상의 월급인 셈입니다. 박봉이긴 해도 지붕이 새는 건 막을 수 있었을 테지만 그는 그 세비를 밥 굶는 백성 먹이는데 다 내주었습니다.
항상 호미를 손에 들고 밭을 가꾸었던 그는 말합니다. “농부의 마음이면 안 되는 일이 없지. 정직하고 근면하고 때와 철을 알아 농사지어서 남을 먹이는 봉사, 그게 정치의 마음이지. 땀 흘려 일하는 것이야 정승이나 농부나 같지.”
 
그의 집은 구한말까지 보존돼 관리라면 한 번은 찾아봐야 하는 ‘청렴의 성지’였다는데, 지금까지 남아있었다면 ‘김영란법’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청렴 파급 효과가 컸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청렴의 성지를 보존하고, 다산 정약용이 ‘목민심서’(牧民心書)에서 공직자의 첫 번째 자질로 청렴을 꼽고는 청렴하지 아니하고는 목민관을 잘 할 수 없다고 일갈한 것은 거꾸로 청렴한 공직자가 그만큼 드물고 귀했다는 뜻도 됩니다.
 
청렴은 말은 쉬워도 실행에 옮기기는 어렵습니다. 항상 스스로를 돌아봐야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임진왜란 시절 명재상이었던 서애 유성룡은 덮고 자는 이불 위에 삿된 마음을 경계하는 글을 적어 놓고 매일 스스로를 돌아봤습니다.
 
제목이 ‘혼자 누워도 이불에 부끄럽지 않다’입니다. “깊은 밤 깜깜해도 상제가 나에게 임하고, 사람이 보지 않는 곳에는 신명이 살핀다. 모를 것이라 마라. 그 기미는 훤히 드러난다. 무엇이 나쁘냐고 묻지 마라. 사특한 것이 점점 커진다. 숨기려는 것보다 더 잘 보이는 게 없고, 미미한 게 더 잘 드러나니,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양심이 편하지 않네, 어찌 남이 알아야 만이 굳이 부끄러워할까….” 이런 글을 써 놓은 이불을 덮으면서 매일 청렴하기를 다짐했던 겁니다.
 
유성룡은 “양심에 허물될 게 없다면 이 세상 무엇이 부끄럽겠나”하고 적었습니다. 양심에 허물될 게 없다면 이 세상 무엇이 부끄럽겠습니까. ‘김영란법’이 시행된들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김영란법’이 무에 필요가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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