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신문=대전] 정완영 기자 = 의식을 잃고 쓰러져 앞차와 추돌한 택시기사를 남기고 현장을 떠난 승객의 사건이 알려지면서 구조를 소홀히 한 승객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경찰과 법조계는 '구조의무가 없는 사람에게는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그 책임을 둘러싸고 논란이 예상된다.
지난 25일 오전 8시 40분께 대전 서구 둔산동 한 도로에서 이모(62)씨가 몰던 개인택시가 앞에 달리던 승용차를 추돌하는 사고가 났다.
사고 당시 의식을 잃었던 것으로 보이는 이씨는 택시로 앞차를 들이 받고도 30m 정도 더 달리다가 멈춰 섰다. 사고 직후 이씨는 119구급대에 의해 인근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심정지로 숨졌다.
이 택시에는 운전한 이씨 외에도 승객 2명이 더 타고 있었고, 이들 승객들은 사고 직후 다른 택시로 갈아타고 현장을 떠난 것으로 목격됐다.
경찰은 "승객들이 언제 어떻게 현장을 떠났는지 확인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사고 택시의 블랙박스에는 사고 직후 '119를 불러달라', '119를 불렀다'는 내용의 음성이 남아있지만 승객인지 목격자인지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택시 승객들은 사고 후 5시간여가 지난 오후 1시 20분께 경찰에 전화를 걸어 “일본 출국을 위해 이동하던 공항버스 시간이 촉박해 현장을 떠났고, 귀국 후 경찰조사에 협조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승객들이 귀국한 뒤 불러 정확한 사고경위를 조사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만일 승객들이 사고 직후 구조를 소홀히 했다고 가정하더라도 이들을 처벌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유수연 변호사는 "우리나라에는 아직 '착한 사마리안 법'이 없다”며 "승객의 경우 구호조치를 하지 않을 경우 도덕적인 문제는 될 수 있지만 법적인 의무는 없기 때문에 법률적으로 처벌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착한 사마리안 법은 이탈리아 등 일부 유럽 국가에서 '위험에 빠진 사람을 보고도 그냥 지나친 것이 입증되면 처벌하는 법률'을 말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형법에는 이런 조항이 없다.
국회에는 위험에 처한 이웃을 외면하거나 방관하는 문제 등을 개선하기 위해 '착한 사마리안 법안'이 발의돼 있다.
지난 6월 24일 새누리당 박성중(서울 서초을) 의원이 '구조 불이행죄'를 도입하는 형법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률안은 해당 상임위에서 심의 중으로 형법 개정안은 재난 또는 범죄로 인해 구조가 필요한 사람을 구조하지 않은 자에 대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