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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아침에] 허무(虛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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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6.08.21 13:58
  • 기자명 By. 충청신문
▲ 허영희 대전보건대 간호학과 교수

[충청신문=허영희 대전보건대 간호학과 교수] 노생은 당나라 때 인물로 하루는 여옹이란 도사를 찾아가 인생의 고통에 대해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러자 여옹은 도자기 베개 하나를 주며 잠을 권하였고, 잠이 든 노생은 베개에 뚫린 구멍 속으로 들어가 과거에 급제하고 어여쁜 여인과 혼인도 하였다. 그러다 재상에도 올랐다가 다시 좌절을 맛보고는 결국에는 여든 나이에 죽고 말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꿈이었음을 깨닫고 노생은 인생의 고통과 부귀에 대한 집착을 모두 버리고 마침내 참된 삶을 살았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바로 ‘노생지몽(盧生之夢)’에 관한 이야기로써 한때의 헛된 부귀 영화나, 인생의 덧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얼마 전 내 주위에서 참으로 고결하게 사시다가 학교를 은퇴하신 덕망 높으신 분의 퇴임식이 있었다. 그분의 퇴임식 날 나는 숨죽여 흐느끼는 동료들의 눈물을 보았는데 인생 참 허무하다는 생각, 인생 별것 아니다는 안타까운 생각에 마음이 많이 착잡하였다.

보편적으로 ‘허무’는 글자 그대로 아무 것도 없음을 말하며 여러 경우에 쓴다. 예를 들면 인생을 열심히 살았지만 결국 남은 것도 없고 무의미하다고 느끼는 경우, 인생이란 노력해봤자 아무 소용없다고 하면서 염세적 태도를 가지는 경우, 무언가를 기대했는데 결과는 아무 것도 없을 경우나, 너무나 기대 이하일 경우, ‘허무’라는 단어를 쓴다.

솔직히 ‘허무’라는 생각을 하면 그것이 새로운 번뇌가 되고 의욕도 상실하게 되고 자포자기에 빠지기도 한다. ‘허무’와 관련된 신문지상에 실린 어느 신부님의 강론 말씀을 잠시 소개하고자 한다.

‘코헬렛’의 저자 솔로몬은 세상의 일을 통하여 깊은 허무를 경험하였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히브리어에 있어 ‘허무’는 ‘입김, 실바람, 수증기’라는 뜻이다. 인간의 권력도, 재물도, 심지어 인간의 목숨까지도 하느님 앞에서는 허무하게 사라지는 수증기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인간은 가지지 못한 권력에 취해 보고픈 유혹, 맘껏 사용해도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재물이 있기를 바란다. 여러가지 상황으로 복잡한 지금의 나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는 내용인지….

대부분의 인간은 자기가 추구하던 가치가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음을 깨달을 때, 그러나 자신의 존재는 보장될 때, 본질은 없어지고 실존만 남는 허무한 상태로 떨어진다. 생각해보면 내 기억 속에서 허무주의와 맞서 싸운 작가로 어린시절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기억나는데, 그는 ‘노인과 바다’라는 책속에서 “사람은 패배하려고 태어나지 않았고, 사람은 파괴될 수는 있지만 패배하지는 않는다”라고 하였다.

근대 스페인 민족주의 작곡가인 마뉴엘 데 파야(1876'1946)의 유일한 오페라 ‘허무한 인생(La Vida Breve)’에서는 금수저와 흙수저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집시여인 살루드가 스페인의 멋진 부자 청년 파코와 사랑에 빠진다. 사실 파코에 있어 처음부터 살루드는 희롱의 대상일 뿐이었는데, 살루드는 파코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2막에서 파코는 다른 여인 카르멜라와 결혼하게 되고 이때 축하를 위한 화려한 스페인의 춤인 플라밍고가 열리면서 살루드의 비장한 고백이 등장한다. 하지만 피코는 끝끝내 살루드를 거절하고 살루드는 마침내 자살하고 만다. 이때 늘 당하고만 사는 집시들의 한 맺힌 절규가 이어지는데, “다 같은 인생인데, 누구는 모루(불에 달군 쇠를 두들기기 위해 놓는 받침)로 태어나고 누구는 망치로 태어나는가?” 정말 공감이 존재하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나를 대변할 수 있는 언어들이었다.

인간은 지구상의 그 어떤 종(種)보다도 호기심으로 충만한 존재이다. 진화심리학에서는 이를 진화의 과정에서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뇌의 전두엽이 발달한 결과라고 한다. 창세기의 아담과 하와 이야기만 봐도 신은 선악과 나무 열매를 먹지 말라 하셨으나 하와는 끝까지 그 나무 열매를 뱀의 꾀임을 핑계 삼아 먹고 만다. 그러니까 사람은 반드시 먹고 싶은 건 먹고야 마는 존재이다. 그리고 그렇게 다 먹고 난 후에야 후회하는 존재이다. 그냥 병원에서 간호사로 살걸, 왜 이 시점에서 내가 학교로 왔는지….

판도라 신화는 어떠한가? 판도라에게 열지 말라한 항아리가 있었다. 그러나 판도라는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너무나 궁금하였다. 바로 이것이다. 삶은 언제나 궁금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항아리를 열자 그 안에 온갖 나쁜 것들이 뛰쳐 나왔다. 판도라는 뒤늦게 후회한다.

"아, 열지 말걸…."

인간은 지구상의 모든 동물에 비해 그들에게 없는 전두엽을 갖게 되어 무한한 호기심과 탐구심으로 지구상의 주인이 되어왔으나 그로 인한 병을 앓고 있다. 바로 허무함과 무의미함이라는 병이다. 요즘 ‘아재개그’가 유행인데 아마도 듣고 나면 허무한데 곱씹어 보면 쾌나 재미있다. 생각나는 아재개그 내용이 몇 개가 있다. “고양이가 시를 읊으면, 고양시”, “동생이 형을 광적으로 좋아하면, 형광펜”, “임금님이 집에 가기 싫을때 하는 말은 궁시렁 궁시렁”, “설운도가 옷을 벗는 순서는, 상하의, 상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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