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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청(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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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6.08.03 18:43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이 종 구 학부모뉴스24 편집국장
[충청신문=이종구 학부모뉴스24 편집국장] 더위가 심하다. 모처럼의 휴가에 손주들과 캠핑장을 찾았다. 2, 3일만이라도 자연 속에 묻히고 싶어서였다. 도심의 잡다한 소리를 듣지 않아 좋았다. 들리는 소리는 주변에 있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가족 간 오순도순 나누는 이야기 소리….
 
계곡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물소리, 새소리, 풀벌레 소리, 그리고 풀잎 소리와 나뭇잎 소리까지 한 가득 하모니를 이루어 들린다. 얼마 만에 듣던 소리인가. 불현 듯 어렸을 적 발가벗고 냇물에 뛰어들던 추억이 되살아난다. 
 
눈을 감고 있으니 자연의 소리 하나 하나가 새록새록 마음속에 쌓인다. 집중하여 들으니 물소리는 물소리대로, 새소리는 새소리대로, 벌레 소리는 벌레 소리대로 풀잎과 나뭇잎은 그대로의 메시지를 전달해준다. ‘아! 이 소리는 이렇구나’가 아니라 형언할 수 없는 평안을 준다.
 
듣는다는 것은 우리의 오감에서 통제할 수 없는 감각 같다. 보기 싫으면 눈감으면 되고, 악취는 숨을 멈추면 되고, 쓴 음식은 뱉어 버리면 되지만 듣기 싫은 소리는 두 손으로 귀를 막기 전에는 들을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청(聽)이란 글자를 보면 숙연해진다. 이(耳)는 왕(王)이다. 감각기관의 으뜸이란 뜻인가? 아니면 어진 군주의 마음으로 들으라는 뜻인가? 십(十)은 누가 보아도(目) 진리를 벗어나지 않은 변함없는 그 자체 일(一)의 마음(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청(聽)이 아닐까?
 
요즘 경청(傾聽)이란 말이 뉴스에 오르내린다. 특히 정치하는 분들이나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즐겨사용하고 있다. 정말 경청하고 있는가? 문제가 생기고 사건이 터질 때 마다 ‘국민의 소리를 경청하겠다’고 하는 말은 경청이라는 고귀한 단어를 폄훼하는 행위가 아닌지 걱정스럽다. 정말로 국민의 소리를 경청한다면 부정 부패나 도리에 어긋난 일이나 국민을 개돼지로 몰아가는 몰상식한 일은 애초부터 만들지도 생기지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았다. 경청처럼 오감각기관에도 같은 종류의 낱말이 있나 살펴보았다.
경시(傾示),경미(傾味), 경후(傾臭), 경촉(傾觸)등 경청(傾聽)과 비슷한 낱말은 없었다. 그렇다면 경청은 중요한 듣기 행동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했다.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붙여져 나온 귀 이외에 또 다른 귀가 들을 귀인가? 경청하라는 말이다. 듣고 마음속에 판단하고 이해하고 마음에 담으라는 말일 게다. 물리적인 고막을 자극하는 소리가 아닌 마음을 자극하는 소리로 듣는 것이 경청이다.
 
오래 전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말하기 듣기’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듣기 말하기’로 바뀌어 있었다. 듣는 것이 중요해서 교과서 이름을 바뀌었다고 생각했다. 수능이 치러지는 날은 비행기도 뜨는 시간을 변경한다, 듣기 평가를 하기 위해서 이다. 듣는 것은 그 만큼 중요하다. 신생아가 태어나 귀에 이상이 없어도 말을 듣지 못하면 언어를 습득하지 못해 농아가 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러니 잘 듣는다는 것은 삶을 행복하게 하는 첫 관문인 셈이다.
 
어머니가 임신하여 태아에게 좋은 음악과 소리를 들려주는 태교 교실도 있다. 좋은 영화나 좋은 냄새나 부드러운 것을 느끼게 하는 태교 교실의 프로그램은 없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정말 듣는 것은 태중에서부터 중요한 경청의 과정이다. 
 
노자는 (道)視之不足見(지시부족견) 聽之不足聞(청지부족문) 用之不足旣(용지부족기)라고 해서 들어도 들은(내용이) 것이 아니라고 했다. 깊이 있는 도가의 의미를 이해하기는 어려우나 들리는 소리의 물리적 실체 보다는 그 소리 속의 진리와 의미를 찾으라고 한 것 같다. 피아노 연주자의 연주 소리를 ‘저건 피아노 소리다’라기 보다는 ‘아! 베토벤의 월광곡이구나. 소리를 듣고 달빛을 느껴 보라는 것이 노자의 가르침은 아닐는지.
말복을 앞둔 막바지 더위 속에 지치지 말고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여보고, 가족과 친지와의 정감 넘치는 이야기 속에 서로의 정과 사랑을 마음에 담는 경청의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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