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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시각] ‘강쇠불볕’ 주의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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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6.07.14 18:30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안 순 택 논설실장
[충청신문=안순택 논설실장] 장맛비가 퍼붓고 나더니 폭염이 지글지글 끓어댑니다. 장마가 길어지면 볕이 났음 하고, 더위가 기승이면 한줄기 쏟아졌음 바라는 게 사람 마음인데, 내렸다하면 폭우요, 볕이 나면 찜통더위니 못 살겠다는 푸념이 절로 나옵니다. 비 오면 몇 밀리미터나 내릴는지, 볕이 나면 또 몇 도나 오를지 데스크는 신경이 곤두섭니다.
 
장맛비와 폭염이 서로 다투는 걸 우리 선조들은 하늘에서 용(龍)과 후(吼)가 싸우는 것으로 보았답니다. 비가 많으면 용이 득세한 때문이요 더위가 혹심하면 후가 득세한 때문으로 알았습니다. 용이나 후는 상상 속의 동물인데, 후는 서해 바다에 사는 몸길이가 두 길쯤 되는 말과 비슷한 짐승으로 용의 골을 빼먹고 산답니다.
 
강희년 간에 중국 고정산 하늘 아래에서 용과 후가 싸운 목격담이 ‘술이기(述異記)’란 문헌에 적혀있는데 용은 물을 토하고 후는 불을 토하며 맞싸우더라는 겁니다. 이 더위를 몰고 오는 후를 우리나라에서는 ‘강쇠’라 한다고 실학자 이덕무가 고증하고, 황해도 앞바다에 사는 강쇠가 김포평야에 상륙한 것을 뒤쫓았더니 망아지만한 것이 지나는 곳마다 작물이 타고 서해로 뛰어드는데 바닷물이 부글부글 끓더라 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무더위가 유난히 맹위를 떨치던 여름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고려시대 문인 이규보가 시 ‘고열(苦熱)’에서 그린 더위가 그렇습니다. ‘바람이 불어와도 화염과 같아/ 부채로 불기운을 부쳐대는 듯/ 목말라 물 한잔을 마시려 하니/ 물도 뜨겁기가 탕국 물 같네….’ 폭염특보라도 내려야 할 만한 더위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우리 선조들은 이런 찜통더위, 한증막더위를 강쇠가 출현한 때문이라 여겼고, ‘강쇠불볕’이라 불렀습니다.
 
두려울 거 없어 보이는 이 강쇠가 무서워하는 게 하나 있으니 기러기랍니다. 아마도 서늘한 가을을 몰고 오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만 그래서 선조들은 기러기를 그린 발을 치거나 기러기 매듭을 문에 매달고 기러기 모양의 떡을 해먹으며 정신적인 피서를 하고 있습니다.
 
올 여름엔 기러기를 쌍으로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할 모양입니다. ‘강쇠불볕’으로 평년보다 무더울 확률이 높다는 예보가 나오고 있답니다.
 
기상전문가들은 지구 온난화, 센 북태평양고기압, 엘니뇨 등 세 요인이 결합되면서 장마가 끝나는 이달 말부터 8월까지 강력한 폭염이 한반도를 덮칠 거라고 내다봅니다. 우선 지난해부터 심해진 지구 온난화 현상이 지속 중입니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은 세계 평균온도(20세기 평균 13.9도)가 지난해 0.9도나 높아져 근대 기상관측이 시작된 1880년 이래 가장 높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또 지난해 ‘슈퍼 엘니뇨’가 발생해 바닷물 수온이 평
년보다 높아진 상태입니다. 엘니뇨는 동태평양 적도 부근의 해수면의 온도가 올라가는 현상이지요.
 
여기에 8월에는 북태평양고기압이 예년보다 폭넓고, 오랫동안 한반도를 덮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북태평양고기압은 보통은 한반도를 오르내리며, 이에 따라 덥게도 하고 덜 덥게도 만듭니다. 하지만 올해는 북태평양고기압이 한반도 전체를 지속적으로 덮으면서 강한 폭염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육칠월 더위에 암소 뿔 빠진다’는 속담 같은 폭염, ‘칠월 저녁 해에 황소 뿔 녹는다’는 옛말 같은 열대야는 생각만으로도 괴롭습니다.
 
무엇보다 걱정되는 건 홀로 사는 노인이나 장애인, 노숙자 등 취약계층입니다. 좁은 방 안에서 선풍기를 돌리는 것조차 어려운 이들이 많은 게 현실입니다. 더위를 피할 수 있는 ‘무더위쉼터’를 늘리고, 간호사나 노인돌보미가 독거노인, 거동 불편자들을 방문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건 좋은 정책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그칠 게 아니라 상시적으로 취약계층을 방문해 건강상태도 체크하고 쉼터로 유도하는 선제적 행동이 있어야 ‘살인폭염’으로 가는 걸 미리 막을 수 있습니다.
 
“더위, 그까이 거”라고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닙니다. 1994년 밀양이 39.4도를 기록하는 등 합천 대구가 연일 역대 최고 기온을 경신하던 그해, 최악의 폭염에 전국에서 3384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2003년 유럽을 덮친 폭염은 12개 나라에서 3만5000명의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프랑스에서만 1만5000여 명이 숨졌습니다.
유독 프랑스였을까요. 혼자 사는 노인이 유난히 많은 데다 노인들을 돌봐야 할 자손들, 의료진이 모두 바캉스를 떠났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애타게 도움을 외쳤지만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기에 외로이 쓰러져 간 겁
니다.
 
폭염이든 뭐든 이웃에 대한 관심이 생명을 살립니다. 프랑스의 교훈을 거울삼아 힘들지만 슬기롭게 ‘여름나기’를 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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