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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유희남 할머니 별세

아산 선장 출신으로 15세 끌려가… 생존자 40명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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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6.07.12 15:05
  • 기자명 By. 이강부 기자

[충청신문=아산] 이강부 기자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아산 선장 출신 유희남(사진) 할머니가 지난 10일 오전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영면했다.

고 유희남 할머니는 1928년 충남 아산군 선장면에서 출생해 15세에 강제로 끌려가는 것을 피하려고 도망 다니다가 붙잡혀 1943년 시모노세키에서 1년 동안 일본군 위안부로 온갖 고초를 겪었다.

그리고 오사카에서 싱가폴로 이동 중 원자폭탄이 떨어져 돌아오다가 오사카 주민의 도움으로 한국으로 귀환하게 됐다.

유 할머니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계속 도망을 다니다가 절에 들어가 생활을 하기도 하고 해방 후 보따리 장사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다가 지난 2012년 6월부터 나눔의 집에서 생활을 해왔다.

나눔의 집 입소 후에는 많은 활동과 증언을 통해 일본의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을 요구해왔으며 2015년 7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연방법원에 인도에 반한 죄와 명예훼손으로 일왕, 아베 총리, 산케이신문, 미쓰비시 기업에 소송을 제기하고 12월 한일정부간 합의안에 대해 피해자들의 의사나 동의가 없어 인정할 수 없다며 한일정부를 질타했다.

유 할머니는 폐암으로 투병 중에도 반인권적이고 반역사적인 책으로 할머니들의 명예를 실추시킨 박유하 교수 재판에도 참여했으며 지난 3월 아산 평화의소녀상 제막행사에도 참여하는 등 열정을 보여왔다.

고 유희남 할머니는 아산 평화의소녀상 제막식에서 “다시는 이런 아픈 역사가 반복돼서는 안 되며 일본의 만행은 전 세계인이 알아야 하기 때문에 피해 역사를 유네스코에 반드시 등록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또 “미국에서 논란을 일으키는 소녀상은 평화를 상징하며 자신의 분신이며 도움을 주신 분들에 대한 고마움과 사회에 대한 죄송한 마음, 자식들에게는 부족한 엄마로 마음 속에 늘 그늘이 있다”는 이야기를 주변에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고 유희남 할머니의 빈소는 국립의료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2일 오전 8시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 추모공원에서 열렸다.

한편 아산시민단체협의회(회장 최만정)는 분향을 위한 빈소는 없이 온양온천역 광장에 안내소를 마련하고 추모의 글 등을 남길 수 있는 게시판을 게시하고 안내소를 13일 오후 6시까지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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