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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 복수초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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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6.03.17 14:45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안 순 택 편집부국장
인류를 대표하는 이세돌 9단이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를 꺾어 감동을 주었던 그 날, 꽃이 피었다. 연합뉴스는 서울의 명동거리에 핀 하얀 매화꽃 사진을 편집국에 보내왔다. 그러고 보니 오늘 매화로 유명한 광양의 다압면 매화마을에선 매화축제가 열린다.
 
대전은 23일께 개나리가 핀단다. 진달래는 27일, 매화는 4월 5일 무렵 핀다는 게 케이웨더의 예보다. 벚꽃은 만우절인 1일에 핀단다. 꽃소식에 귀를 기울이는 건 봄을 기다리기 때문이다. 봄은 역시 꽃이 피어야 봄답다.
 
사방에서 꽃이 터진다. 봄꽃이 어디 개나리 진달래뿐이랴. 봄꽃을 기다리던 이들은 진즉 산으로 갔다. 충청 땅에 가장 먼저 봄소식을 전하는 꽃은 천리포수목원과 속리산에서 핀 복수초다. 속리산 복수초 사진이 데스크에 올라온 게 지난 7일이었으니 지금쯤은 앉은부채, 바람꽃, 노루귀도 피었을 것이다.
 
삽으로도 파기 힘든 꽁꽁 언 땅을 뚫고 나와 꽃을 피우는 경이로운 생명력이 그 무엇보다 봄답다. 복수초의 다른 이름이 ‘얼음새꽃’이다. 얼음사이에서 피는 꽃이니 꽃샘추위쯤은 우습다. 봄이 오기 전에 먼저 핀 봄꽃을 만나는 것보다 멋진 봄맞이가 또 있을까.
 
꽃도 예쁘다. 술잔을 닮은 노란 복수초가 흰 눈 위에서 색의 대비를 이루는 광경은 탄성이 절도 나온다. 꽃말이 ‘영원한 사랑’이다. 꽃말도 곱다. 앉은부채의 꽃말은 ‘그냥 내버려 두세요’란다. 내버려 두어야지 무성한 잎이 배추를 닮았다고 입으로 가져갔다간 큰 탈난다. 하얀색 바람꽃은 단아하다. 꽃말이 ‘금지된 비밀스런 사랑’이란다. 섹시하다.
 
입이 노루의 귀를 닮았다는 노루귀의 꽃말은 ‘인내’란다. 현호색의 현(玄)은 ‘하늘’, 호(胡)는 ‘드리우다’, 색(索)은 ‘꼬이다’는 뜻이 있단다. 이름을 풀면 ‘싹이 꼬이면서 올라오는 하늘과 같은 푸른색의 꽃’쯤 되겠다. 꽃말이 ‘보물주머니’다. 산과 들에 피는 봄꽃들은 봄의 비밀을 숨겨둔 보물주머니다 싶다.
 
복수초를 처음 만난 건 천리포수목원에서였다. 꽃받침은 흙색에 가깝지만 위에서 보면 보이지 않기에 온통 노란 황금색이다. 한낱 봄꽃이겠거니 하고 지나치다가 안내하는 사람의 소개말을 듣고는 눈이 번쩍 떠졌다. 궁금했다. 복수초가 피는 건 아직 눈이 내리는 철이거나 잔설이 남아 있을 때다. 이 녀석은 왜 하필 이렇게 추운 때를 택해 꽃을 피울까.
 
“생존전략입니다. 다른 키 큰 나무들이 새 잎을 내기 전에 서둘러 종족 번식에 나서려다 보니 추위도 무릅쓰는 것이지요. 꽃을 피워 종족 번식을 마친 다음에야 잎을 틔우고 광합성 작용으로 뿌리를 굵게 한답니다.”
 
다툼을 피하려는 건 다른 나무, 화초들보다 약해서일 터다. 그런데 이 연약한 풀이 어떻게 꽁꽁 언 땅을 뚫고 꽃을 피우는 걸까.
 
“뿌리에 저장해 둔 녹말을 분해해 열을 발산합니다. 광합성 세균이 산소를 이용해 분해할 때 나오는 열로 얼음이며 눈을 녹이는 거죠. 복수초는 3~4년 동안은 꽃을 피우지 않고 뿌리를 굵게 만드는 시간을 갖는 답니다. 뿌리가 경이로운 생명력의 원천인 셈이지요.”
 
꽃을 피운다고 추운 날 꽃가루받이를 해줄 곤충이 있기는 할까.
 
“겨울에 무슨 곤충이 있느냐, 있답니다. 무당벌레처럼 성충인 상태에서 겨울을 나는 곤충들이 숲에는 제법 많이 있습니다.”
 
그런 곤충를 불러모으는 매력은 또 뭘까.
 
“비밀은 노란색에 있습니다. 복수초는 햇볕이 나면 꽃을 활짝 열고 해가 지면 꽃잎을 닫습니다. 날씨가 흐려도 꽃잎을 열지 않아요. 복수초는 꽃을 열어 태양열을 그 안에 모으는 능력을 가졌습니다. 오목거울 역할을 하는 노란빛으로 태양열을 모으는데 꽃 안이 바깥보다 대략 5도 정도 높습니다. 추운 날 곤충들에게 5도의 온도차는 충분히 매력적이죠. 기꺼이 찾아들고 싶어지는 공간일 겁니다.”
 
때를 기다리는 인내, 스스로를 태워 역경을 이겨내는 생명력, 주위를 불러 모으는 따뜻한 가슴, 게다가 ‘복 많이 받으시고 장수하시라’는 이름까지. 복수초는 미덕이 많은 꽃이다.
 
4월이면 봄꽃들이 앞다투어 피고 울긋불긋 꽃대궐을 이룰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도 국회로 나를 보내달라는 현수막이 울긋불긋 내 걸리고 저마다의 목소리로 시끄러울 것이다.
 
복수초처럼 충분히 기다리며 준비하고 나온 후보, 주민들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할 줄 알고, 남을 품을 줄 아는 따뜻한 가슴을 가진 후보가 있다면, 기꺼이 내 표를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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