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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 설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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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6.02.04 17:07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안 순 택 편집국장

설은 새해 첫머리란 뜻이요, 설날은 그중 첫 날이다. 설맞이는 섣달그믐 날부터 시작됐다. ‘까치 까치 설날’이다.

부엌 헛간 샘가 도장 마루밑 뒤란 측간 외양간 어느 한 구석 어두운 곳 없이 등불을 밝히는 ‘조허모’(照虛耗)를 하고 부엌신을 기다렸다. 한해 내내 식구들의 말과 행동거지를 꼼꼼히 지켜본 부엌신은 섣달 스무사흘 날 승천해 옥황상제에게 낱낱이 이른 후 상제가 내린 상벌을 챙겨들고 그믐밤에 돌아온단다. ‘하늘에 오르사 좋은 일만 말해 주십사(昇天言好事)’라든가 ‘좋은 일은 많이, 나쁜 일은 조금 고해주십사(好多設不好少設)’라는 글을 써 붙이고 빌었던 거다. 부엌신을 기다리지 않고 잠이 들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고 했다.

신과 어울려 자신을 돌이켜 보는 이 시간을 수세(守勢)라 했다. 지긋지긋한 한 해야 가라는 망년이 아니라, ‘정든 시간이여, 가지 마라’는 수세요, 불을 밝히고 가는 세월 붙잡고자 했던 수세다.

‘묵은세배’도 했다. 동국세시기는 “묵은세배를 하느라 초저녁부터 밤중까지 초롱불을 든 세배꾼들이 골목길을 누볐다”고 적고 있다. 집안 곳곳 등촉이 켜지고, 골목엔 초롱불이 떠다니는 섣달의 그믐 밤, 높은 데서 내려다보면 별이 내려온 듯 장관이었을 거다. 수세는 신에게, 사람에게 감사하는 마음이었다.

새해 첫 날을 ‘설날’이라 하는 연유는 여럿이다. ‘설다’ ‘낯설다’에서 기원했다고 하는데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의 첫날이라는 점에서 낯선 날에서 비롯됐다는 거다. ‘사리다’ ‘삼가다’에서 왔다고도 한다.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 조심스레 한 해를 시작한다는 뜻이다. 설을 ‘신일’(愼日)이라 한 것도 이런 맥락이겠다.

봄의 시작을 ‘입춘’(立春)이라 하고, 들어갈 입(入)이 아니라 ‘서다’의 입(立)을 쓴 것처럼, ‘선날’에서 기원했다는 주장도 있다. ‘선무당 사람 잡는다’는 속담에서 보듯이 ‘선’은 서툴고 미숙하다는 뜻이다. 처음이기에 생소하고 서툰 새해 첫날이라는 의미의 선날이 연음화돼 설날이 됐다는 얘기다. 어디서 유래됐든 설은 조심조심하라는 당부가 담겨있다.

나이가 ‘몇 살’하는 ‘살’에서 비롯됐다는 주장도 있다. 우랄 알타이어계에서 해가 바뀌는 나이를 ‘살’(산스크리트어), ‘잘’(퉁구스어), ‘질’(몽고어)이라 하는데서 유래를 찾는다. 한국인은 설을 쇰으로써 비로소 나이를 한 살 더 보탠다.

조선 중기의 문신 이수광은 ‘여지승람’에서 설날을 ‘달도일’이라 했다. 달은 슬프고 애달파한다는 뜻이요 도는 칼로 마음을 자르듯 아프다는 뜻이다. 점차 늙어가는 처지가 ‘서러워서 설’이라는 얘기인데 아무리 살기가 버겁고 힘들어도 ‘서러워서 설’이 돼서는 안 되겠다.

연암 박지원은 ‘설날 아침에 거울을 보며’라는 시에서, ‘거울 속 모습은 해마다 달라졌지만 어릴 적 마음은 그대로’라고 읊고 있다. 나이 든 사람도 설이 되면 즐거워 천진한 동심으로 돌아간다는 얘기다.

동심으로 돌아가 새 마음으로 새 출발하려면 묵은 것은 물론 해묵은 것도 다 털어내야 한다. ‘해묵다’는 건 어떤 일이나 감정이 해결되지 못한 상태에서 오랜 시간이 지나다 라는 뜻이다. 오래 묵을수록 좋은 것도 있지만, 슬픔이나 아픔, 그리고 거짓과 특권은 버려야 한다.

새해 새달 새날, 새롭게 시작하는 시간, 마음가짐도 행동거지도 다 새로워야 한다. 나 자신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 앞서 입(立) 즉 ‘서다’를 미숙하다는 뜻으로 설명했지만, ‘서다’의 뜻 그대로 우뚝 서는 설이 됐으면 한다. 나의 말과 행동을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나 스스로의 주인, 나아가 나라의 주인으로 우뚝 섰으면 하는 거다.

그래서 국회의원 선거에서 나라의 주인노릇 제대로 해봤으면 하는 것이다.

안 순 택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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