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서인원의 렌즈로 보는 세상] 59. 갈대밭에서 만난 사람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입력 : 2016.01.11 16:36
  • 기자명 By. 충청신문

언제이던가 기억조차 나지 않습니다. 이 도시의 하늘과 대기가 청색의 바다로 변하는 저녁 일몰 시간에, 수침교를 지나서 가장교를 향하는 갈대밭에 이르렀습니다.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은 유등천 천변은 온통 갈대숲으로 덮여 있지만, 그 당시는 갈대 군락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건너편 천변도로의 가로등은 하나둘 씩 켜지고, 갈대숲 사이사이로 차들의 불빛이 쏜살 같이 달려가고 또 달려갑니다. 머리를 들어 하늘을 보니, 어떤 청색이 어둠에 자리를 넘겨주는 저 일몰 청색만 하랴! 그 청색 하늘엔 조그맣고 하얀 조각달이 보입니다.

카메라와 같이 갈대밭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갈대밭 건너편의 모든 등불들은, 어느 사이에 어둠을 밀어내고, 여기 갈대들은 그 불들에 의해 띄엄띄엄 실루엣이 되어, 갈대꽃의 이삭들은 온갖 새들과 원숭이들의 모양으로 보입니다. 이 갈대밭은 해가 지기 전까지 붉어지는 하늘 아래, 산들 바람에 은빛과 금빛의 잔잔한 파도를 치고 있었을 것입니다. 옆을 보는 순간 사랑의 춤을 추는 두 사람의 형상이 나타납니다. 그들 뒤엔 어쩌면 지독한 허무함이 있는 반면에 애정과 고독이 한꺼번에 다가옴이 느껴집니다. 바로 그 순간 셔터를 눌렀습니다. 바로 그때 그 사진이 아직 것 필자의 마음에 드는 사진 중 한 장입니다.

고사에 따르면 갈대가 생긴 것은 목축을 다스리는 야산의 신(神)인 판은 반은 사람, 반은 염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답니다. 판은 어느 강의 요정 시랭크스를 사모하여, 들판에서 놀고 있는 요정에게 어슬렁어슬렁 다가갑니다. 시랭크스는 그 흉한 모습에 놀라 피하여 도망가다, 강가에서 강의 신(神)인 아버지의 도움으로, 그 자리에 하늘하늘 나부끼는 ‘갈대’가 되었다는 이야기 입니다.

갈대는 우리에게 정서적인 도움을 줍니다. 시인 신경림의 ‘갈대’는 인간존재의 근원적 고통을 노래한 시이고, 가수 박일남의 ‘갈대의 순정’은 사나이의 사랑에 약함을 노래합니다. 영국의 대문호 섹스피어는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다’라는 여자의 흔들리는 마음을 말합니다. 한편 갈대 뿌리는 ‘노근’이라 하며 예로부터 약용으로 한방이나 민간약으로 쓰였는데, 뿌리는 당분, 고무질, 단백질, 중성염류가 들어 있어 이뇨, 지혈, 발한, 소염, 지갈, 해독의 효과가 있다 하며, 어육체, 돼지고기 식중독, 뇨독증, 구토증, 만성복막염, 황달 등에 뿌리를 달여 먹는 등 영양제나 치료제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옛 이야기지만 갈대가 이렇게 용도가 넓고 다양해서 민생에 크게 기여하므로, 강기슭이나 바다 가까운 갯벌에 갈대밭이 많아져, 지방 관청에서는 좋은 세수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서인원(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이사) 

저작권자 © 충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충청신문기사 더보기

하단영역

매체정보

  • 대전광역시 중구 동서대로 1337(용두동, 서현빌딩 7층)
  • 대표전화 : 042) 252-0100
  • 팩스 : 042) 533-7473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황천규
  • 법인명 : 충청신문
  • 제호 : 충청신문
  • 등록번호 : 대전 가 00006
  • 등록일 : 2005-08-23
  • 발행·편집인 : 이경주
  • 사장 : 김충헌
  • 「열린보도원칙」충청신문은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 노경래 (042-255-2580 / nogol69@dailycc.net)
  • Copyright © 2024 충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ilycc@dailycc.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