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는 ‘기르다’나 ‘키우다’에 못지않게 ‘자래우다’를 문화어로 널리 사용한다. ‘기르다’는 ‘길다’에서, ‘키우다’는 ‘크다’에서, ‘자래우다’는 ‘자라다’에서 나온(파행된) 말이다. ‘자래우다’는 ‘자라다’의 ‘자라게 하다’를 말한다. 북한에서는 일반적으로 “나무를 자래우고, 자식을 자래우며, 민족 간부를 자래운다” 등으로 쓴다.
민족의 저항시인으로 잘 알려진 윤동주(1917~ 1945)도 습작기 시 ‘아침’에 ‘자래우다’를 사용한 적이 있다.
“이제 이 동리의 아츰(아침)이/ 풀살 오른 소엉덩이처럼 기름지오./ 이 동리 콩죽 먹는 사람들이,/ 땀물을 뿌려 이 여름을 자래웠소.”
윤동주 시어에는 그 할아버지 고향인 함경북도 방언 등이 더러 있다. ‘자래우다’도 그 한 가지다. 오늘날 중국이나 중앙아시아 동포들도 익히 쓰는 말이다.
* 길게 자래운 머리 우에 태양모를 살짝 올려놓은 멋쟁이 처녀였다.(윤림호 ‘산의 사랑’. 중국)
* 그 성격 그 성미를 자래운 고향(박화 ‘영원한 요람’·중국) *무엇 때문에 자식들을 자래우는지?(리영광 ‘가을비…’. 옛 소련)
* 매일 같이 단 하나의 태양이 땅을 덥혀주고 곡식을 자래우고(강 겐리예따 ‘일곱번째 태양’ . 옛 소련)
‘자래우다’(자라다)와 같은 짜임새로 된 말에 ‘재우다’(자다), ‘태우다’(타다), ‘놀래우다’(놀라다, 북), ‘새우다’(서다), ‘키우다’(크다) 따위가 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말 중에 ‘심지어’(甚至於)라는 말이 있다. 문자대로 해석하면 ‘심하게…에 이르러’ 라는 뜻이다. 심훈의 ‘상록수’에 채영신이 어려운 아이들의 교과서와 연필, 공책까지도 당해 주고, 심지어 넝마가 다 된 옷을 입고 다니는 아이들에게 옷까지도 해 입히는 내용이 나온다. ‘심지어’는 ‘심하게는, 심하다 못해 나중에는’의 뜻으로, 뒤에 오는 말의 사실을 강조할 때 주로 사용한다.
북한, 중국, 러시아 동포들 사회에서는 ‘심지어’ 보다 ‘지어’(至於)를 더 널리 쓴다. 역시 표준말에 남한에서는 어감이 설다. ‘심지어’와 같아 보이나 사전에 그 준말이나 동의어로 관련짓지 않았다. ‘심지어’는 아주 강조할 때 쓰고, 보통은 ‘지어’를 사용하는 것 같다.
* 로씨야에 와 있는 조선 사람들은 ‘지어’ 정치 망명자들까지도 전부 다 조선으로 추방하기로 되여 있었다.(김세일 ‘홍범도’. 옛소련) ‘심지어’와 같은 쓰임이다.
* 도 소재지나 ‘지어’ 수도의 거리 한 모퉁이에 갖다 놓아도 손색이 없을 건물. (북 ‘조선말대사전’)
* 나는 당신을 질투하게 되었고/ ‘지어’ 당신의 가정/ 당신의 사업마저/ 훼방하려 하였더라도.(김성휘 ‘사랑이여’·중국) ‘심지어, 심하게는’ 보다 ‘나아가(서), 거기다가 더하여’ 하는 뜻에 가깝다.
* 마치 땅도 바다도 ‘지어’ 하늘까지도 여기로부터 시작되는 듯하였다. (강태수 ‘기억을 뚜지면서’ . 옛 소련) ‘심지어’보다 ‘또한’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