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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쓰는 역사] 충장공 남이흥 비장한 순국 <75>

5부. 비장한 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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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5.12.16 16:07
  • 기자명 By. 충청신문

 적장 아민도 머리 숙여 추모했다

글/ 남균우

남두병은 이렇게 호통을 쳐서 혼을 내고는 아전들을 꼼짝 못하게 하고 부렸다는 인물이다.

그는 후에 공조참판, 어영대장, 훈련대장을 역임했다.

남이흥은 안주성이 함락되기 전에 장계를 써서 두병에게 주며 임금께 올리도록 하고 할머니와 어머니를 모시도록 하라고 한양으로 쫓았다. 남이흥은 장계에 쓰기를 ‘일만 번을 생각해 본다고 하여도 오직 죽는 일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고 하였으니, 싸움에 임하는 장수로서 이미 굳어진 충의에 찬 그의 결심의 표현이었다.

남이흥의 장계를 받은 인조는 선전관 백현민을 보내어 그를 위로하고 격려하였다고 한다.

남두병은 임금께 장계를 전달하고 빨리 서둘러서 할머니와 어머니께 문안을 드리고 작은어머니(남이흥의 부실)인 연안김씨께도 문안을 여쭙고 아버지의 말씀을 어기는 일이 되더라도 전쟁터인 안주에 속히 가려고 서둘렀다.

그런데 작은어머니가 나도 안주에 가서 위험에 처한 장군을 옆에서 도와야 되겠다고 나섰다.

“안주는 전쟁터입니다. 부녀자의 몸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우니 아니됩니다.”

남두병은 간절하게 말렸다. 그러나 그녀는 듣지를 않고 자신도 따라가서 적과 전쟁을 하고 계신 남편 남이흥 장군 곁에서 티끌만한 작은 힘이라도 도와야 되겠다고 우겼다. 작은어머니의 마음이 굳어 있다는 것을 안 두병은 다른 도리가 없었다.

연안김씨는 21살, 아들 두병은 20살, 마치 오누이 같았다. 남두병은 무복차림이 아니고 도포에 갓을 썼고, 연안김씨는 소복차림이었다. 그들은 북관으로 가는 나그네 차림이었다. 먼 길을 가기 때문에 어디서 봉변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연안김씨는 장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말을 탔다. 두 사람이 나란히 말을 타고 전쟁터인 안주를 향해서 급히 떠났다. 쉬지 않고 속히 달려서 개성에 닿으니 날이 어두워서 더 갈 수가 없었다.

그들은 개성의 여각에서 숙박하고 새벽에 일어나니 안주 등지에서 피난민 행렬이 물밀 듯이 내려오고 있었다. 남두병은 안주에서 왔다는 피난민에게 물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남이흥의 비장이 보냈다는 남이흥의 본댁이 있는 서울로 간다는 사람을 만난 것이다. 남이흥 병사가 안주성에서 전사했다는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이 된 전쟁터에서 작은어머니를 모시고 갈 수는 없는 처지였다. 두병은 연안김씨를 남겨놓은 채 쪽지를 써놓고 이른 새벽에 급히 안주를 향해 달려갔다. 역시 이른 새벽 서둘러 일어나서 이 쪽지를 본 연안김씨는 정신을 잃은 채 쓰러졌다. 연안김씨는 온종일 식음을 전폐했다. 부인도 새벽에 일찍 일어났으나 두병은 이미 전지로 떠나고 없었고 안주성이 함락됐다는 소식인 것이다. 두병과 그의 아버지 남이흥은 안주성 함락 직전에 적의 포위망 속에 같이 있었으므로 죽음을 같이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으나 임금께 보내는 장계를 전달하라는 아버지의 명령을 수행하다가 여기까지 온 것이다.

연안김씨는 다음과 같은 유서를 썼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효도하기 위해서 전쟁터로 뛰어 떠났는데 나는 도대체 무엇인가? 전쟁터에서 목숨을 내놓고 나라를 위해서 싸우다가 전사한 남편에 대해서 나는 어떤 존재인가? 도움을 조금도 줄 수 없는 거추장스런 존재가 아닌가? 나도 죽어버리자. 사랑하는 남편의 뒤를 따라서 죽어버리자. 남편은 나라를 위해서 몸을 바쳤으니 나는 남편을 위해서 몸을 바치자!”

남편이 전사한 안주를 향해 4배하고 단정히 꿇어앉은 채 글을 남겨놓고 합장을 했다.

“사또의 분수에 넘치는 사랑을 받으면서 지내 온 저도 사또의 뒤를 따르겠습니다. 사또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겠으니 버리지 마십시오.”

연안김씨의 눈에서는 진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연안김씨 여란은 망설임 없이 자신의 명치를 향해 은장도를 꺼내 힘껏 찔렀다.

연안김씨는 남이흥의 본실도 아니었고 부실이었다. 사랑하는 낭군의 충절을 흠모했고 자신의 원한을 풀어준 은인이었던 부군의 곁으로 간 것이다. 애절한 글을 남겨놓고 자결을 했다. 아까운 청춘을 남편을 위해서 버린 것이다.

그 당시는 가정을 떠나 타 지역에서 근무하는 목민관으로 의무적으로 부실을 두게 하였다. 이러한 위대한 여인(연안김씨)은 남이흥이 공흥병사로 재임할 때 관내 주민이었다.

그런데 이 지역은 당시의 세도가인 이이첨의 세력이 상당히 미치는 지역이어서 이들과 선이 닿는 아전들의 행패가 심했다. 이들은 세력이 커서 부임하는 원님도 손아귀에 넣고 조종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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