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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쓰는 역사 ] 충장공 남이흥 비장한 순국 <74>

5부. 비장한 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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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5.12.15 17:20
  • 기자명 By. 충청신문

적장 아민도 머리 숙여 추모했다

글/ 남균우

병조가 정묘호란 때 일선에서 전쟁하다 사망한 자의 자손들 중 이미 모범적으로 싸우다 죽은 남이흥의 아들 남두극(南斗極)은 시임(時任) 수령으로, 기협(奇協)의 아들 기진경(奇震慶)은 시임 별좌(別座)로, 김준(金浚)의 아들 김진성(金振聲)은 시임 주부(主簿)로서 이미 상전(賞典)을 받았다고 인조에게 말한 후 복수장(復讐將)인 전 권관(權管) 김양언(金良彦)의 아들에게도 관직을 제수할 것을 건의하였다. 인조는 김양언의 아들 김세호(金世豪)에게 변장(邊將)을 제수하라”고 지시하였다.

안주성이 풍전등화격인 어려운 이때 남이흥은 김준의 아들 김유성을 조정에 안주성 전황의 급보를 전할 사자로 택하려 하니, 그는 국토 수호의 중요한 임무를 버리고 갈 수 없다고 사절하였다. 할 수 없이 안주성에 같이 있던 남이흥의 둘째 아들 두병에게 장계를 써주어 서울로 보냈던 것이다.

남이흥의 둘째 아들 두병은 정묘호란의 안주성 전투가 일어나기 바로 전에 약관 15세로 경상도 남쪽, 남해 고을의 목민관(현령)으로 부임하여 근무하고 있었다. 그런데 두병은 1625년 2월에 아버지가 계신, 전운이 감도는 이곳 관서지방에 가서 아버지를 돕기로 마음 먹고 임금에게 상소를 하여 남해현령직 사직을 청하여 임금의 허락을 받았다.

남해현령(南海縣令) 남두병(南斗炳)이 상소하기를,

“관직을 사직하고 서쪽으로 가서 아비 남이흥과 서쪽 변방에서 함께 일을 하여 부자의 군대가 됨으로써 장식(張植) 형제가 장준(張浚)의 군사가 되었던 예를 본받고 싶습니다.”

하였는데, 상이 이조에게 처리하게 하였다. 이조가 아뢰기를,

“남두병이 그의 아비를 따라 함께 시석(矢石)을 무릅쓰고자 하니, 사정(私情)이 간절하기는 하나, 한 지역을 책임진 신하를 마음대로 처신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하니, 상이 그의 소원대로 시행하라고 명하였다.

그 당시는 대부분의 관리들이 후금의 침공에 대비해야 하는 변방인 관서지방을 사지로 알고 부임하기를 꺼리던 때였다. 그런데 남이흥의 아들인 남해현령 남두병은 후금의 공격에 목숨을 버릴지 모르는 관서지방인 아버지의 임지에 같이 있게 해달라는 상소를 조정에 보냈다. 그리하여 그는 안주성으로 가 아버지를 모시고 있었다.

남두병이 후금의 다가올 침공에 아버지와 함께 생사를 같이 하고자 하였던 뜻은 단순히 효심을 초월하여 오늘날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다. 구성에 가서 아버지를 모시고 있으면서 정묘호란 때 후금군을 방어하는 안주성 전투에 임하고 있었다.

그런데 남두병은 이런 인물이었다. 남두병이 약관 15세 남해현령으로 부임했을 때 환영하는 의식이 있었다. 육방 관속과 고을 유지 등 수십 명이 동헌에 가득 모여있었다. 그런데 어린아이인 원님을 깔보고 아전들이 함부로 대했다.

“사또께선 너무 어리시니 망아지처럼 멋대로 날뛰는 민심을 어찌 수습하시렵니까?”

방에 가득한 모두가 빈정거리며 홍안(紅顔)인 현령의 대답을 기다렸다. 이렇게 지방 유지들과 육방 관속이 번갈아가며 상관을 은근슬쩍 놀려댔다.

“사또께선 어찌 그리도 특출하셔서 열다섯 나이에 사또가 되셨나이까?”

남두병은 정색을 하고 반문했다.

“내 나이에 지방 현령 따위가 뭐 그리 대수롭다고 호들갑들이냐? 역대 왕조를 살펴보면 젖 안 떨어진 동궁도 계셨고, 코 흘리는 상감도 계셨느니라. 열다섯이나 돼서 현령 한 자리 한 것이 무엇이 그리 대수롭다고 그렇게 떠들어대느냐?”

좌중에 있던 육방 관속과 여러 지방 유지들이 모두 혀를 내둘렀다.

늙은 이방이 한 마디 더 지껄였다.

“하오나 사또께선 이 고을 백성들을 손아귀에 넣으셔야 비로소 백성을 다스릴 수가 있을 것인데, 너무 어리시니 망아지처럼 멋대로 날뛰는 민심을 어찌 수습하시렵니까?”

좌중은 모두가 빈정거리며 대답을 또 기다렸다.

괘씸하게 생각한 두병은 혼을 내주어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아전들을 전부 불러 한 자리에 모아 놓고 밭에 가서 수수땡이 한 대씩 꺾어오라고 명령을 내렸다. 이들 모두는 밖으로 나가 한 길이 넘는 수숫대 하나씩을 가지고 들어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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