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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쓰는 역사] 충장공 남이흥 비장한 순국 <71>

5부. 비장한 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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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5.12.10 17:23
  • 기자명 By. 충청신문

 적장 아민도 머리 숙여 추모했다

 

글/ 남균우

 

이윽고 요란한 폭음과 함께 안주 관아는 순식간에 불기둥으로 화하였다.

하늘로 치솟는 불기둥 속에 남이흥과 감준 등 여러 장졸들이 비장한 최후를 마친 것이다.

남이흥은 타 죽으면서 탄식을 하였다고 한다.

“수하 장병의 훈련과 단 한 번의 싸움도 익혀 보지 못하고 마침내 패함에 이르니 이것이 비통할 뿐이로다.”
그가 얼마나 아쉽고 분했으면 죽으면서까지 그런 한탄을 했을까. 안타까운 일이다. 충과 열의 화신으로 어려운 싸움을 수행하던 남이흥은 패배를 직감하고 화약고에 불을 지르겠다는 단안을 내린 것이다.

관서지역의 주장(主將)으로서 항복시 당할 자신과 장령들의 수치만이 아니라 국가적으로 미칠 커다란 사기 저하를 예방하기 위해 분사(焚死)를 단행한 것이다.

후금군은 안주성을 포위 공격한 지 이틀만에 이를 함몰시키는 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병사 남이흥을 비롯한 다수 장병들의 항전의지와 순국정신은 이 전투에 참가한 후 후금군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남이흥의 비장한 순국은 적장 아민도 머리 숙여 추모하게 했다.

이렇게 안주성은 무너졌으니 이때 남이흥의 나이 52세였다.

적병 역시 함께 타 죽은 자가 수천 명이었으나 정작 적의 총사령관 아민도 남이흥을 추앙했다. 평안병사 남이흥을 비롯한 다수의 장령들 그리고 병사들의 항전의지와 순국정신은 이 전투에 참가한 후금군에게 감동을 준 것이다.

평안감사가 안주성이 함락된 지 3개월 후 조정에 보고한 안주성 함락시 전사한 시체 수습의 수가 3041명이고 불타 죽은 시체의 수가 1천여 명이라고 보고한 것을 통해 그들의 죽음은 아무리 적장이라 할지라도 항전의지와 순국정신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적의 총대장 아민은 안주성 안의 폐허를 보고서는 머리를 조아려 곡을 하면서 남이흥을 비롯한 조선의 순국 장병에게 다음과 같이 충의를 기렸다.

“조선은 충의의 나라라 하더니 내 이제 그 참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도다.”

태조의 2왕자라고 불리는 적의 총대장 아민은 성 안에서 조선장병을 죽은 후금군 병사를 말리고 남아 있는 조선 사람들을 살려주었다.

‘조선 장병들의 충의에 감동된 바 있어 너희들을 석방하노니 각기 고향에 돌아가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라.“
당시의 조선군의 병력이 3000명이라고 했는데 전부 전사했다고 하더라도 나머지 1041명은 적의 시체가 아닌가. 전사자가 6000명이란 기록도 있는데 이것을 인정한다면 우리의 조선군이 3000명이고 아무리 전쟁이었어도 사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고 수백 명 포로를 석방했다고 했으니 이 전쟁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그리고 이 기록으로 보아 남이흥의 죽음이 나라를 위해 위대하고 숭고한 순국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결국 평안병사 남이흥은 안주성을 지키지 못했지만 살아남은 수백 명 백성들의 생명을 지켜준 셈이다.
그리고 아민의 이런 사례는 몽골군에게서나 후금군의 전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유화정책이었으니 남이흥의 순국이 얼마나 위대하고 비장한 것인가를 웅변으로 말해주는 것이다.

 

안주 주민은 남이흥의 사후 북신사라는 사당을 지어 추모

또한 안주 주민들은 남이흥의 사후에 북신사라는 사당을 지어 놓고 남이흥의 초상을 모시고 가뭄이나 전염병이 들면 이곳에 기도를 할 정도로 그의 인격과 정신을 높이 공경했고 죽음을 애석하게 여겼다. 이것 역시 남이흥의 순국에 대한 백성들의 지극한 숭모이다.

후금군은 안주를 함락시킨 후로는 무인지경으로 남진을 계속했다. 그리고 당일로 평양성으로 진군했다. 소현세자는 전주로 피난하고 인조는 강화도로 피난하였다.

그리고 김상용을 유도대장, 여인길을 부유도대장으로 삼아 도성인 한양성을 지키게 하였다. 그리고 도체찰사 영의정 이원익, 좌의정 신흠, 서평부원군 한준겸 등에게 세자와 남하하게 하였고, 인조는 강화도로 거동하였다. 충신 김자겸, 장유, 병조판서 이정구, 호조판서 김신국 등이 왕을 호종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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