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홍성 용봉산

옹골찬 암릉길 호서의 금강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입력 : 2015.12.09 17:04
  • 기자명 By. 안순택 기자
[충청신문= 대전] 안순택·이성엽 기자 = 이응노 화백 생가  ‘소향’이란 이름을 들으면 4옥타브를 넘나드는 폭발적인 가창력의 가수를 떠올릴지 모르겠다. 홍성 땅에 소향이란 이름의 규수가 있었단다.
 
아리따운 모습에 반한 백월산(일월산) 장수와 용봉산 장수가 그녀를 차지하기 위해 한판 승부를 벌였는데, 그게 투석전이었단다. 그런데 용봉산 장수가 먼저 지친 거라. 백월산 장수가 던진 돌을 막지 못해 무수한 돌들이 용봉산에 수북이 쌓였다는 거다.
 
기암괴석과 암릉으로 유명한 용봉산의 그 많은 돌들이 예쁜 규수를 차지하기 위한 산신들의 투석전 때문이라는 홍성 사람들의 넉살에 웃음보가 터진다. 그래서 소향 아가씨는 어떻게 됐느냐고? 일월산과 소향리는 행정구역이 같다.
 
어떤 이들은 암릉을 용의 등줄기로 보았다. 어떤 이들은 늘어선 기암괴석을 봉황의 벼슬로 보았다. 운무 사이를 휘도는 용의 등줄기에 달빛을 감아올리는 봉황의 머리를 얹었다 해서 용봉산(龍鳳山)이다. ‘가보지 않았으면 말을 마라’는 산이다.
 
직접 올라봐야 왜 ‘호서의 금강산’, ‘작은 금강산’으로 불리는지 알게 된다. 옹골찬 암릉길이면서도 위험하지 않아 아이들을 데려가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대전에서 출발해 당진-영덕 고속도로를 타고 당진 쪽으로 가다가 고덕나들목에서 나와 고덕IC 교차로에서 오른쪽 덕산 고덕 방면으로 간다. 622번 지방도를 타고 직진하고 덕산초등학교 가기 전 삼거리에서 홍성 쪽으로 틀어 봉신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고암 이응노 생가 기념관, 용봉초등학교로 들어간다.
 
용봉산 산행은 대개 용봉산자연휴양림이나 용봉초등학교에서 시작한다. 용봉초등학교-용도사(석불사)-투석봉-최고봉(정상)-노적봉-악귀봉-용바위-병풍바위-용봉사로 이어지는 코스다. 대략 3.4㎞에 3시간쯤 걸린다. 용봉초등학교를 지나면 바로 용봉산자연휴양림 매표소가 나온다.
 
휴양림과 거리가 있지만 표를 끊어야 한다.
 용도사는 역사가 깊은 사찰이 아니다. 절집보다는 그 옆에 있는 상하리 미륵불을 만나야 한다. 높이가 7.7m, 어깨 폭이 4m에 달하는 이 미륵불은 넓은 어깨와 크고 각진 얼굴이 씩씩하고 후덕하다. 충남 유형문화재 제87호. 절집 오른쪽으로 등산로가 시작된다.
 
투석전 전설이 배어있는 투석봉을 지나면 걷기 좋은 소나무 숲길이다. 용봉산은 소나무가 많다. 때문에 가을 단풍이 붉게 물드는 멋은 없지만 기암괴석과 노송이 어우러진 마치 커다란 분재 속을 걷는 듯한 풍광을 사계절 볼 수 있다. 정상인 최고봉에는 조망이 시원하게 트인다.
 
동쪽으로 내포신도시의 모습이 오롯하다.
 
최고봉에서 노적봉-악귀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은 용봉산 절경 중에서도 으뜸이다. 발밑 영불계곡에선 눈 코 귀가 선명한 사자바위가 뚜렷하고 지척에선 볏가리를 쌓아 놓은 듯한 노적봉이 산객의 마음을 넉넉하게 감싸준다. “허어 참! 바위 좋네” 감탄이 절로 나온다.
 
기암들은 각기 동물과 사물의 모습을 하고 용바위, 물개바위, 삽살바위, 두꺼비 바위 등의 이름을 얻어 자태를 뽐낸다. 행운바위는 그릇처럼 생긴 바위 위에 동전을 던져 들어가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뜻이겠다. 바위 틈새에 뿌리를 박고 옆으로 자라는 소나무는 용봉산의 명물이다.
 
암벽등반을 해야 할 정도로 험난한데 위험하다 싶은 길엔 나무 계단과 난간이 설치돼 초보 산행객도 걱정은 접어두시라. 악귀봉에서 나무계단을 내려가 작은 다리를 건너면 용바위다. 능선을 따라 곧장 걸으면 병풍바위에 닿는다. 병풍바위는 악귀봉이나 노적봉에서 봐야 제 모습이 보인다.
 
용바위에서 전망대로 오른다. 오서산이며 가야산, 덕숭산의 줄기, 내포신도시가 한눈에 들고 운이 좋으면 천수만도 볼 수 있다. 전망대에서 내처 수암산으로 올라 종주를 할 수도 있다. 종주길은 신리 세심천온천호텔로 이어진다. 종주를 끝내고 온천욕을 즐길 수 있다는 얘기. 
 
용봉사에는 두 개의 나라 보물이 있다. 하나는 지장전에 보관돼 있는 괘불탱화(보물 제1262호)이고 다른 하나는 용봉사 뒤에 있는 마애관세음보살상(보물 제355호)이다. 영산회괘불탱화는 조선 숙종 때 조성됐다고 한다. 왕자가 일찍 죽자 숙종 16년(1690년) 승려화가 진각이 그렸고, 영조 1년(1725년)에 그림을 고쳐 그렸다고 한다. 숙종보다 먼저 세상을 뜬 아들은 연령군이다.
 
연령군을 각별하게 챙겼던 영조가 영험하게 잘 그려진 괘불탱화를 동생의 명복을 비는 의식에 걸도록 했고, 연령군의 묘가 덕산으로 이장되면서 용봉사에 걸리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괘불탱화는 초파일 때만 일반인에게 공개된다. 
 
마애관세음보살상은 앞으로 기울어져 있지만 그 앞에 서면 부처님과 눈을 맞출 수 있다. 왜 기울여 조각했는지를 알 수 있다. 왼팔을 가슴 위로 올려 저 산 아래, 우리 인간을 향해 손바닥을 펴 보이신다. 시무외인(施無畏人). “두려워 말라. 우환과 고난은 이미 지나갔다.”
 
지금은 용봉사 하나 달랑 남아있지만 충남도 조사를 보면 용봉산엔 절터가 무려 27곳이나 된단다. 신라 경주에 석불들이 즐비한 남산이 있다면 내포 땅에는 용봉산이 수많은 사찰로 불국토를 이루고 있었던 셈이다. 미륵불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일 텐데, 무엇보다 미륵불을 세우고 두 손을 모으고 미래 세상에서 올 구원을 기다렸다는 건, 역설적으로 그만큼 삶이 고통스러웠기 때문일 터다.
 
그럼에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언젠가 미륵이 내려와 구원해 주기를 빌고 또 빌었던 거다. 그래서 용봉산 산행은 희망을 다시 일으키는 여행길이 된다. 새해 새 마음으로 새 뜻을 세우는 여행길로 이만한 곳도 없다 싶다. 천천히, 천천히 걸어야 한다.
 
- 주변, 함께하면 좋다
 
홍북면 중계리=마을에서 동떨어져 산 아래 홀로 있다. 안채 헛간채로 지은 초가다. 이응노는 한지와 수묵이라는 동양화의 도구로‘서예적 추상’이란 독창적인 세계를 구축했다.
 
마당에 서면 용봉산의 기기묘묘한 암봉이 펼쳐진다. 수려한 용봉산이 소년 이응노를 심오한 미의식의 세계로 이끈 건 아닐까.
 
홍주성=홍성읍에 들어서면 나그네를 맞아주는 조양문이 홍주성의 동문이다. 홍주성은 1906년 을사늑약에 일어선 의병들이 성 안의 일본군을 6문의 화포로 공격해 퇴각시킨 곳이다.
 
‘성 밑에 오두막에/ 푹 엎어져 살던 이들/ 돌 하나 쌓으면 피붙이 흩어지고/ 돌 하나 쌓으면 땅 흔들리던…’(신대철‘홍주성’) 백성들의 피맺힌 흔적을 읽게 한다. 순국한 의병들은 의사총에 모여 있다.
저작권자 © 충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충청신문기사 더보기

하단영역

매체정보

  • 대전광역시 중구 동서대로 1337(용두동, 서현빌딩 7층)
  • 대표전화 : 042) 252-0100
  • 팩스 : 042) 533-7473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황천규
  • 법인명 : 충청신문
  • 제호 : 충청신문
  • 등록번호 : 대전 가 00006
  • 등록일 : 2005-08-23
  • 발행·편집인 : 이경주
  • 사장 : 김충헌
  • 「열린보도원칙」충청신문은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 노경래 (042-255-2580 / nogol69@dailycc.net)
  • Copyright © 2024 충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ilycc@dailycc.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