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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정호-아름다운 일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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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5.11.18 16:36
  • 기자명 By. 안순택 기자

[충청신문= 대전] 안순택·이성열 기자 =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 천호산에는 천년고찰 개태사(開泰寺)가 있다.

 
서기 936년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의 신검(神劍)을 무찌르고 후삼국을 통일한 것을 기려 창건한 절이다.
 
이때 왕건은 황산벌을 지키던 ‘황산’의 이름을 고쳐 ‘천호산’이라 했단다.
 
왕건이 부근에 어린사(漁鱗寺)를 세우고 석탑을 세웠는데 석탑이 정자 모양을 하고 있어 동네 이름을 탑정(塔亭)이라 했단다.
 
다른 이야기도 있다.
 
개태사가 번창할 때 부근에 사찰과 암자가 여럿이었던 모양이다.
 
개태사 대명 스님의 사리가 발견된 자리에 사리석탑 3층을 세웠는데, 훗날 충청도 감찰사 이몽필이 석탑의 품위를 높이기 위해 마을의 이름을 탑정이라 했다는 것이다.
 
석탑은 충남유형문화재 60호로 지금도 남아 있다.
 
그러나 탑정이라는 이름에서 석탑을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다.
 
대부분 바다처럼 넓고 하늘처럼 맑은 물을 떠올린다.
 
탑정호다.
 
어둠이 짙은 이른 새벽, 길을 나섰다.
 
탑정호는 4개 면에 걸쳐 있어 찾아가는 길이 다양하지만 은진미륵을 만날 수 있는 관촉사 갈림길을 나는 좋아한다. 흔히들 오전엔 은진미륵을 보고, 오후엔 탑정호를 보라고들 한다.
 
오전에는 밝은 햇살이 미소처럼 빛나는 미륵부처의 얼굴을 보고, 탑정호에선 소문난 노을을 보라는 얘기이겠다. 하지만 늦은 가을날엔 새벽에 가야 한다.
 
이른 아침 피어오르는 물안개를 봐야 한다.
 
물안개에 감싸인 수변 풍경은 그야말로 환상의 세계다.
 
탑정호는 충남에서 두 번째로 큰 저수지다. 넓은 호수 앞에 서면 가슴이 확 트인다.
 
호수에 가슴을 적셨다면 수생식물원, 자연학습원, 분수, 팔각정 등이 예쁘게 조성돼 있는 수변생태공원을 걸어보시라.
 
사시사철 아름답다.
 
봄이면 벚꽃이며 조팝나무, 철쭉이 반겨주고 여름이면 샤스타데이지가 꽃물결을 이룬다.
 
연꽃이 데크길 주변을 곱게 물들였다 지면 가을에는 갈대와 억새가 찾는 이들을 품어준다.
 
지금은 갈대와 억새철이지만 머잖아 탑정호의 주인은 철새들이 될 것이다. 하얀 눈이 소담하게 쌓인 호수도 좋지만 물안개와 어우러진 철새들의 비상은 최고의 눈 맛이다.
 
물은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출렁이는 리듬이 마음을 흔든다.
 
탑정호는 거꾸로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힘이 있다.
 
누구는 마치 다도해 같이 산을 품고 있는 풍광 때문이라는데, 논산 사람들의 눈물이 배어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한다.
 
일제강점기, 곡창을 끼고 있는 어느 곳이나 그랬지만, 특히 논산은 수탈의 전진기지였던 군산항과 가까웠기에 수탈의 강도가 어느 곳보다 셌다.
 
그게 탑정호가 만들어진 동기가 됐다. 일제는 독일의 수리 기술자까지 불러들여 1941년 첫 삽을 뜬다.
 
그때 ‘은진미륵의 턱까지 물이 찰 것’이라는 말이 돌았다.
 
요상한 유언비어에 주민들이 하나둘 고향을 떴고, 깨진 결속력은 강제이주로 이어졌다.
 
요설은 이주를 거부하는 주민들을 쫓아내기 위해 일제가 꾸민 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니 탑정호의 물은 논산 사람들의 눈물이다.
 
고난의 세월을 잘 알기에 사람들의 마음을 쓰다듬고 위로해주는 게 아닐까 싶은 거다.
 
탑정호에 가면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
먼저 취수탑을 보자.
 
탑의 디자인이 특별한데 오천군사의 방패와 계백의 창과 방패, 삼진을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 계백장군을 만나야 한다.
 
탑정호 호반길을 따라 연산방면으로 걸어 나오면 장군과 오천결사대의 혼이 스며있는 계백장군 유적지를 만날 수 있다.
 
백제시대 군사문화를 재현해 놓은 백제군사박물관과 장군의 동상, 장군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충장사, 장군의 묘, 전망대인 황산루를 만날 수 있다.
 
말에 올라 칼을 휘두르는 장군의 동상은, 이처럼 용맹스럽고 힘이 넘치는 동상은 일찍이 보지 못했다.
 
충장사에는 장군과 함께 성충, 흥수, 백제 삼충신이 모셔져 있고, 백제군사박물관은 백제 군사의 의장 무기 등을 볼 수 있는 전시공간이다.
 
고구려 시대 벽화고분의 행렬도를 재현해 놓아 고구려와 대등하게 전쟁을 치른 백제의 군사력을 유추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자녀들과 함께 찾는다면 실내 체험장에서 백제를 배울 수도 있다.
 
박물관 뒤편 능선에 올라 오천결사대가 항전을 펼쳤던 황산벌을 바라본다.
 
천년이 넘은 세월이 지났음에도 백제의 한이 전해지는 듯하다.
 
탑정호의 변화는 아직 진행형이다.
 
논산시는 탑정호를 전국 최고의 관광지로 만든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딸기향 농촌테마공원, 둘레길 등을 차근차근 진행해 나가고 있다.
 
최근에는 논산이 고향인 소설가 박범신 씨가 집필실을 마련하면서 탑정호는 문학의 산실로도 유명세를 얻고 있다.
 
작가와 함께 하는 소풍길에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각지에서 모여들면서 탑정호의 자연미에 반한 이들이 늘고 있다.
 
그들도 알게 될 것이다.
 
탑정호는 보는 위치에 따라 각기 맛이 다르고, 찾을 때마다 또한 맛이 다르다는 것을.
 
가슴 뭉클한 노을을 보려면 부적면 신풍리 쪽에서 봐야 한다.
 
호수를 물들이며 서산으로 넘어가는 노을을 보면 왜 논산(놀뫼)이 노을의 고장인지 알게 된다.
 
명상이라도 하는 듯이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마음에 한 자락 여유가 그립다면 일상을 훌훌 털고 그리움을 찾아 탑정호로 떠나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찻집에서 여유로움을 더해도 좋고, 호수를 따라 도는 24㎞ 순환도로는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다.
 
-주변 함께하면 좋다
 
관촉사 ▶ 은진미륵으로 유명한 부처가 있다.
 
부처 왼쪽에 있는 사적비에 따르면, 고려 4대 광종 19년(968)에 왕명을 받은 혜명대사가 조성하기 시작하여 37년 만인 7대 목종 9년(1006)에 완성되었는데 찬란한 서기가 삼칠일 동안 천지에 가득하여 찾아오는 사람으로 저잣거리를 이룰 만큼 북적댔다고 한다.
 

논산 솔바람길 ▶ 충청도 유교문화와 계백장군유적지를 걷는 길이다.

 

돈암서원-충곡서원-계백장군유적지-휴정서원까지 6.2㎞. 2시간 정도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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