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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평행선과 만남의 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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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5.11.10 18:02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이정희 시인. 둥그레동인회장
기차다. 요란한 금속음 소리가 흩어지면서 구름이 꽈리처럼 부풀어 올랐다.
 
경부선 철도 너머 일망무제 벌판이 아득하다. 아득히 산봉우리가 한올 머리카락처럼 희미한 거기, 두 개의 선로가 끝없이 펼쳐진다. 손을 잡거나 어깨를 기댄 것도 아닌데 마주보며 간격을 유지한다. 언덕이 보이고 굽은 길이 나올 때마다 함께 오르고 구부러지면서 길을 만든다.
 
무심코 선로를 따라갔다. 아무리 가도 똑같은 간격이며 기울기다. 나란히 이어질 뿐 바뀌지는 않을 평행선 특유의 풍경이다. 평행선은 만날 수 없다던가. 좀 더 자세히 말하면 평행을 이루는 선 또는 입체에서 두 개 이상의 직선, 반직선, 선분들이 아무리 늘여도 그대로 나가는 상황이다.
 
만날 수는 없지만 그래서 헤어질 리도 없는 상반된 개념이 더욱 강하다. 만나지도 않을 거면서 똑같은 노선을 고집한다. 경부선 철로는 천리를 가도 절대 만나지 않는 대신 필경은 한 목적지에 닿는다. 만날 수는 없어도 끝내 헤어지지는 않는 강점을 보는 것 같다.
 
각도만 약간 눕혀도 만나지만 짧게 정점을 이룬 뒤 곧 바로 벌어진다. 그 다음 기하급수적으로 확산되면서 상상할 수 없는 간격을 초래한다. 바로 그 여파를 줄이기 위한 방법이 일정한 간격 유지였으나 그렇게 목적지까지 가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나란히 가야 되는 선로 역시 언덕을 오를 때도 같은 기울기가 아니면 탈선을 피하기 어렵다. 비탈이 지는 각도 역시 같지 않을 때가 많다. 약간 높은 지점과의 차이를 정확히 감안하지 않으면 균형이 어긋나고 그 또한 탈선의 요인이 될 테니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겠다.
 
눈앞의 선로가 닿을 최후의 지점이 떠오른다. 서울서 부산까지 천리라면 그렇게 계속 평행을 유지하며 달릴 테지. 각도가 벌어지거나 간격이 조금만 틀어져도 함께 갈 수 없는 노정이다. 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쳐도 견디면서 내일을 기약한다. 약간만 어긋나도 간격은 좁혀지고 만나게 되지만 곧바로 벌어지면서 거대한 X 자로 확산되는 걸 알았을까.
 
만나는 것도 잠시 끝없이 벌어질 여파보다는 온건적이다. 만만치 않은 과정이나 함께 바라볼 수 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평행선상의 두 직선은 결코 만나본 적은 없지만 오랜 날 바라보기는 했었다. 만나기는커녕 정해진 그 이상 가까워진 적도 없었다. 손만 뻗으면 잡힐 듯해도 더는 가까워질 수 없는 운명이되 그래서 오랜 날 함께 갈 수 있었다. 직접 살을 부비고 맞대지는 못했어도 함께 갈 수 있는 행운은 작은 게 아니었으니까.
문득 보니, 두 개의 선로가 산모롱이에서는 닿을 듯 완만하다. 피차 양보도 없이 자기 갈 길만 고집하던 팽팽한 운명의 또 다른 모습이다. 천 리를 가고 만 리를 간들 가까워질 리 없고 멀리서 볼 때 비로소 마주친 것뿐이지만 어쩐지 색다르다. 단순한 착시현상이라 그 지점에 가면 똑같아지는데 그래서 더 환상이었다.
 
만날 수 없는 중에도 더불어 가야 되는 세상이다. 꿈과 현실, 삶과 죽음 또한 나란히 갈 수밖에 없으니 얼마나 극적인가. 현실을 떠나서는 꿈이 빛날 수 없고 꿈이 없으면 각박한 현실일 수밖에 없다. 살아 있는 한 죽음은 동떨어져 있는 것 같고 죽고 나면 또 삶이 삭제되지만 살 동안의 끝이 죽음이라는 것은 함께 가야 될 운명을 드러낸다.
 
단지 오랜 날 가기 위해서는 똑같은 보폭이어야겠다. 기차는 양쪽 바퀴가 다른 속도로 나갈 경우 엄청난 위험을 초래하지만 인생의 선로는 그나마 여유롭다. 나란히 가야 된다고는 했지만 약간은 뒤처져서 갈 수 있기에 그나마 여유롭다. 이따금 난데없는 운명의 기차와 맞닥뜨리지만 상관은 없다. 쿠르릉 쿠르릉 하는 금속음에 산이 들썩이면 기차가 오는 것을 알게 되듯 막무가내인 운명도 조짐은 있었으니까.
 
어릴 적, 마을 앞에 철교가 있었다. 학교를 가기 위해 건널 때는 예고도 없이 달려올 것 같아 늘 조마조마했었다. 어느 날 철길 근처에서 놀다가 공사를 하는 아저씨 몇 분을 만났다. 비가 오고 난 뒤 들뜬 흙과 침목을 다지는 작업이었는데 꽤 오래 걸렸다. 잠깐 건너갈 때도 종종거리던 우리와는 달리 태연한 기색이었다. 그게 참 불안했는데 얼마 후 기적소리가 들리고 뒤미처 철수했다. 비로소 그 지점을 통과하는 시간이 있다는 걸 알았지만 일단은 기척을 듣고 돌아간 것 같아 조금은 편해졌다.
 
 가끔 그 길에 코스모스가 피고 들꽃이 흐드러졌다. 기차가 달려올 때는 온통 시끄럽지만 여느 때의 철길은 편안했다. 여기까지 온 것처럼 앞으로도 무사히 종착역에 닿게 될 테지. 멀리 가기 위해서는 더불어 가는 게 무난하다. 나란히 선 누군가는 또 마주보거나 만나기보다는 함께 가야 될 동반자였으며 먼 길도 문제되지 않을 것이다. 하찮은 일이면서도 중요한 사실을 끝없이 연결된 레일에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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