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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쾌하고 후련한‘은빛’억새바다 보령 오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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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5.11.04 17:21
  • 기자명 By. 안순택 기자
[충청신문=대전] 안순택·이성엽 기자 = 힘들다.
 
“헉 헉.”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통신 중계탑을 오르는 마지막 계단에 발을 딛는 순간 시야가 확 트인다.
 
능선에 올라선 것인데 억새가 마중 나왔다.
 
오솔길 양옆으로 은빛 물결이 춤을 춘다. 
 
억새의 자태에 빠진 산행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울타리를 넘어 억새 숲에 몸을 맡긴다.
 
인증 숏 셔터 소리가 요란하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너무나 장쾌해서 서쪽으로는 바다가 아련하고 동쪽으로는 홍성과 청양 일대의 농촌이 아늑하게 펼쳐진다.
 
길 양쪽은 절벽처럼 가파르다.
 
정상에서 과거 오서정 자리라는 전망대로 가는 인공데크 길은 그야말로 최고였다.
 
억새바다 속 미풍에 출렁이는 은빛 물결 위를 건너는 구름다리 같은 느낌이다.
 
밀양 천황산의 사자평의 억새를 너른 평원에 이는 가을 파도라 해서 ‘광평추파(廣坪秋波)’라 한다는데, 오서산의 정상 능선의 억새 길은 ‘지상의 은하수’라 할 만하다.
 
스쳐가는 바람결이 빚어내는 억새들의 화려한 합창은 자연의 교향곡이다.
 
“으악새 슬피우니 가을인가요”다.
 
오서산은 보령시와 홍성군에 걸쳐 뻗어있다.
 
해발 791m로 보령 일대에선 가장 높다. 까마귀가 많이 살아 오서산(烏棲山)이라 한다지만 다른 ‘설’도 있다.
 
삼국사기에 ‘오서악(烏西岳)’으로 기록되어 있는, 나라에서 천제를 올리던 곳이었단다.
 
대사, 중사, 소사 중에 대사를 올릴 만큼 영산으로 추앙받던 산으로 백제부흥운동의 정신적 중심이 되기도 했던 곳이란다.
 
‘태양엔 세 발 달린 까마귀, 즉 삼족오가 살고, 신의 사자로서 천상과 인간세계를 이어준다’는 우리민족의 태양숭배사상이 배어있는 산인데, 언제부턴가 까마귀산으로 비하해 불리게 됐다는 것이다.
 
조선시대엔 한양을 등지고 앉아 있어 역적의 산으로 불리기도 했으니….
 
서해를 굽어보는 산 중에서 으뜸이어서 뱃사람들에게 길잡이가 돼줘 ‘서해의 등대’로 불리기도 한다.
 
너른 평야에 갑자기 우뚝 높이 솟은 산은 산세는 부드럽지만 높이를 꼬박 올라야 해 적잖이 인내를 감수해야 오를 수 있음을 일러준다.
 
오서산을 오르는 코스는 다양하다.
 
어느 곳으로 오르든 정상으로 통하지만 보령시 청라면 오서산 자연휴양림을 들머리로 삼으면 그나마 힘을 덜 들이고 오를 수 있다.
 
오서산은 사시사철 아름다움을 자랑하지만 은빛 억새와 함께 하는 가을 산행이 오서산 산행의 백미다.
 
울창한 천연림 속으로 군데군데 소폭포를 이루고 있는 명대계곡을 지나면 오서산 자연휴양림이다.
 
휴양관과 숲속의 집, 수련관, 맨발걷기체험장, 자연관찰로, 야영장, 취사장, 어린이 물놀이장 등 가족단위의 휴양객이 편히 쉴 수 있는 다양한 시설이 갖춰져 있다.
 
자연휴양림의 자랑인 대나무숲과 1913년 김동초 씨가 지었다는 아담한 월정사를 지나 산중턱 임도로 오른다.
 
비교적 완만한 흙길이다. 월정사 주변의 단풍이 곱다.
 
산허리를 가로지르는 임도에 도착하면 1㎞ 남았다는 표지판과 약수터가 보인다.
 
여기서부터는 경사 45도에 가까운 가파른 길이고, 군데군데 바위도 솟아 있다.
 
비교적 쉬운 코스라 해서 산행이 쉬우리라 생각한 건 큰 오산이었다.
 
오르막과 평탄한 길이 번갈아 나타나면서 가쁜 숨을 몰아 쉬어야했다.
 
수시로 바위에 걸터앉아 숨을 골랐다.
 
8푼 능선을 넘어서자 발 아래로 전망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시원한 풍경을 보며 쉬엄쉬엄 걷는다. 철제계단 2개를 올라서면 통신 중계탑, 정상을 잇는 300m 가량의 능선을 따라 펼쳐지는 억새밭과 그 아래 시원한 풍경에 그간의 고생이 싹 잊힌다.
 
억새는 홀로 있으면 소박하지만 무리 지으면 장엄하다.
 
기암괴석과 어우러진 오서산 억새는 정상 능선 3㎞에 걸쳐 펼쳐져 있으며 면적은 1만여 평에 이른다.
 
강원 정선의 민둥산, 경남 창녕의 화왕산, 경남 양산의 천성산, 전남 장흥의 천관산과 함께 억새밭이 장관을 이루는 전국 5대 억새 명소 중 하나다.
 
오서산의 억새는 다른 억새명소들의 그것과 달리 작은 키에 곱기로 유명하다.
 
억센 억새가 아닌 고운 억새다. 연약한 줄기로 강한 서해바람을 이겨낸 게 기특할 따름이다.
 
그 억새가 반짝거리며 황홀하게 흔들거리고 있다.
 
억새는 천의 얼굴을 지녔다.
 
보는 각도와 시간에 따라 시시각각 자태가 바뀐다.
 
어두침침한 날 스산하다가도 날이 개면 언제 그랬냐는 듯 눈부시게 화사하다.
 
은빛으로 출렁거리다가도 역광에 반사되면 찬란한 금빛, 석양에 비치면 수줍은 홍조, 달빛에 젖으면 푸근한 솜털억새로 옷을 갈아입는다.
 
이 억새밭 사이를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에 가슴이 일렁인다.
 
삽상한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광경은 “달빛보다 희고 이름이 주는 느낌보다 수척하고 하얀 망아지의 혼 같다”던 최승호 시인의 감흥이 그대로 전해진다.
 
정상에서 길을 따라 계속 가면 홍성의 정암사로 이어진다.
 
유명한 1600계단으로 내려서는 길이다. 돌아가는 옛길도 있긴 하지만 제법 가파르다.
 
산행에 익숙하지 않은 신참들에겐 권하고 싶지 않다. 신참들은 다시 오서산 자연휴양림으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산행을 권한다.
 
오서산 정상엔 두 개의 바다가 펼쳐진다고 한다.
 
은빛 억새바다와 굽어보이는 서해바다다.
 
여기에 맑고 파란 가을 하늘을 더해야 한다.
 
대자연의 ‘3합’은 장쾌하고 상쾌하고 후련하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바람 따라 서걱서걱 억새가 울어대는 소리에 가을이 익어간다.
 
전망대에서 맞는 서해의 낙조가 일품이고 은빛에서 황금물결로 바뀌는 억새는 황홀감을 더해준다는데 가을에는 해가 진 후 하산하는 게 위험하다 하여 그 장관을 포기하고 돌아서야 했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주변, 함께하면 좋다
 
▲육소나무-명대계곡 입구 장현리에는 귀학정(歸鶴亭)과 육소나무가 발길을 잡는다.
 
조선시대 문인 이산해(李山海. 1539~1609)의 동생 이산광이 귀향해 심은 400년 넘은 소나무인데 한 뿌리에서 6개의 줄기로 크게 자란 것이 경이롭다.
 
이산해는 소나무 주변에 정자를 지었는데 이후 두루미가 많이 날아와 정자 이름을 귀학정이라 지었다.
 
충남기념물 제159호로 지정돼 있다.
 
▲도미부인 사당-삼국유사에 나와 있는 백제시대 도미부인은 빼어난 미모에 절개가 굳었다.
 
개루왕이 시험하려 침소에 들게 했으나 기지를 발휘해 몸종을 대신 왕에게 보냈고, 속은 것을 알게 된 왕은 분개해 부인의 눈을 빼 보복한다.
 
부인은 목숨을 부지한 남편과 함께 고구려 땅으로 가 생을 마감한다.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에 사당이 있다.
 
▲충청수영성-보령의 아름다움을 읊은 옛 선인들의 글은 대부분 충청수영성의 아름다움을 그린 것이다.
 
조선 초기에 설치됐다가 고종 때 문을 닫은 수군 주둔지다.
 
지금까지 성곽 대부분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복원 작업이 한창이다.
 
성위에서 내려다보는 오천항은 한 폭의 그림이다.
 
▲오서삼미(烏棲三味)-광천의 새우젓, 광천의 맛김, 남당항 대하를 일컫는다.
 
광천시장이 가까우니 들러 봐도 좋겠다. 근래엔 새조개와 주꾸미도 한몫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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