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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원의 렌즈로 보는 세상] 50. 감나무 곁에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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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5.11.02 17:26
  • 기자명 By. 충청신문
▲ 대문 옆의 감나무

가을이면 즐거웠습니다. 마당 한편에는 감이 붉게 익어가고, 다른 편에서는 은행이 노랗게 익어갑니다. 감은 따는 즉시 이웃과 조금씩 정을 나누고, 가을이 끝나면 겨울엔 홍시가 되어 입을 즐겁게 하고, 또한 은행은 털어서 겉껍질을 뭉겨 내는 작업이 끝이 날 즈음에는 가을이 기울어 갑니다. 이 또한 친지들에게 마음을 전하고, 긴 겨울 밤엔 전자렌지 속에서 신문지에 꼭꼭 싸인 은행알들이 톡톡 소리를 냅니다. 서리가 내리고, 찬바람이 나면 감나무의 붉은 갈색의 잎들은 떨어지고, 은행나무의 샛노란 잎들도 골목길과 마당을 물들입니다. 이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만 남고 모든 이파리들은 대빗자루에 쓸리어 대형자루 속으로 들어가 길가로 나앉고, 가로수 낙엽 수거차에 실려서 멀리로 떠납니다. 나무들은 헐벗은 채로 줄기에서 가지까지 눈보라를 맞아가며 굳세게 겨울을 납니다. 그리고 봄날, 잎을 내밀고 6월엔 향기로운 꽃을 피워냅니다. 이렇게 가을이 오기를 수십 번, 그 정겨움이 나의 가슴 속에 깊숙이 배어옵니다.

지금 감나무가 있는 이 집으로 이사 온지도 30여 년이 지난 것 같습니다. 아마 큰애가 초등학생이었으니까요. 집안 뜰에는 감나무, 은행나무, 목련, 향나무, 가문비나무, 단풍나무 그리고 정원석들 사이사이에 심어진 철쭉 등 많은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어른 팔뚝 굵기만한 감나무와 은행나무는 대문 양편에서 자라 감과 은행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해가 지나면서 감나무와 은행나무에는 감과 은행이 나뭇가지가 처지도록 열리더니, 드디어 어느 해인가는 바람이 심하던 여름날 두 갈래로 크던 감나무는 감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양쪽으로 찢어지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다행히 새마을운동 본부에 근무하던 애들 삼촌이 휴가 나와 있었습니다. 우선 양쪽 가지에 열린 감들과 이파리의 무게를 줄이기 위하여 많은 가지들을 쳐내야 했습니다. 우리 둘은 짧은 지식으로 볏짚 새끼줄과 굵은 로프로 밑둥부터 촘촘히 감아 올렸는데 진땀이 났습니다. 살균과 소독에 쓰이는 황토에 물을 섞어 찰흙을 만들어 감아 올린 새끼줄 위에 짓이겨 발랐습니다. 원 상태로 되는 것은 시간에 맡기는 수밖에요. 젊은 나무라서 그런지 다행히 회복이 빨라 다음 다음 해부터 많은 감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감나무의 첫 시련을 넘기게 되었는데 그때의 상처가 변하여 지금은 배불뚝이가 되어 있습니다.

서인원(전 한국해양연구원 운영관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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