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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동백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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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5.10.28 17:51
  • 기자명 By. 안순택 기자
[충청신문= 대전] 안순택·이성엽 기자 = 삶이 아무리 황홀하다 한들, 동백보다 붉을까
 
반들거리는 진초록 잎사귀 사이로 촘촘히 고개를 내민 동백꽃은 마치 붉은 보석 같다.
 
요염하면서도 순박하고, 앙다문 꽃봉오리들은 수줍기 수줍다.
 
질 때는 자신의 시든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듯 통째로 떨어져 내린다.
 
동백하면 선운사 동백꽃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습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습디다.’ 미당 서정주 시인의 절창 ‘선운사 동구’ 때문일 터다.
 
그러나 선운사 동백꽃보다 아름답고 뜻도 깊은 동백꽃이 서천에 핀다.
 
사람들이 동백정이라고 알고 있는, 마량리 동백나무 숲이다.
 
동백은 따뜻한 걸 좋아해 남쪽지방 섬에 많다.
 
동으로는 울릉도, 서쪽으론 대청도까지 분포돼 있다.
 
그러나 추운 육지에선 마량리가 동백이 자랄 수 있는 북쪽 끝이다.
 
이곳보다 북쪽에선 동백이 자라지 않는다는 얘기다.
 
선을 그은 건 기후도 사람도 아니다.
 
꽃이다.
 
그곳에 꽃을 피우기에, 그 북쪽에선 더 이상 꽃을 볼 수 없기에 한계선이다.
 
경계에 선 꽃, 어쩌면 피울 수 없는 환경을 딛고 피어낸 꽃일 수 있기에 마량리 동백꽃은 귀하다.
 
게다가 수백 년씩 된 80여 그루의 동백 숲을 마음 놓고 드나들 수 있는 곳은 마량리 외에는 없다.
 
선운사의 동백 숲이 유명하다고는 하나 거기서는 울타리 너머로 눈요기만 해야 하지 않는가.
 
전해지는 이야기는 더 예쁘다.
 
옛날 바다로 나간 남자들이 풍랑 때문에 돌아오지 못하고 목숨을 잃는 일이 잦았단다.
 
아들을 바다에 잃은 한 할머니는 용왕을 잘 모셔야 화를 면하리라 여겼는데 어느 날 할머니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동백나무 씨를 전했단다.
 
동백정 옆의 마량당집은 용왕의 화를 달래기 위해 지은 사당이다.
 
다른 이야기도 있다.
 
마량첨사가 꽃을 심으면 마을에 웃음꽃이 핀다는 꿈을 꾸고 바다에 나갔더니 꿈에 보았던 꽃이 두둥실 떠다니더란다.
 
이 꽃을 가져다 심었는데 바로 동백이었단다.
 
어느 쪽이든 마량 동백은 서천 사람들 안녕하라, 행복하라는 기원이 담긴 꽃이라는 거다.
 
그 뜻이 아름답지 않은가.
 
마량리 동백나무 숲 입구에 서면 다소 어색한 광경이 눈에 든다.
 
숲 바로 앞에 떡 하니 버티고 선 서천화력발전소 탓이다.
 
높은 굴뚝, 첨단 설비가 숲 바로 앞에 있어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예전엔 이곳에 오면 왼쪽 눈을 가리고 올랐었다.
 
발전소는 말고 동백꽃만 보겠다는 나름의 다짐이었던 셈인데, 요즘엔 그냥 오른다.
 
생태와 인간의 조화라고 생각하니 그 나름 멋이 있다.
 
올해 초 국립산림과학원이 내놓은 보고에 따르면 동백나무 1㏊의 숲에서 흡수하는 이산화탄소량이 중형승용차 3대가 내뿜는 연간 배출량과 맞먹는다고 한다.
 
1㏊는 가로 100m, 세로 100m 정사각형 넓이의 면적이다.
 
그러니까 마량 동백나무 숲이 처리하는 이산화탄소량은 엄청날 테고, 화력발전소 굴뚝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 대부분을 동백나무 숲이 흡수한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바닷바람 막아주지, 이산화탄소 없애주지, 동백나무 숲은 전설처럼 서천 사람들의 안녕을 지켜주고 있는 것이다.
 
얕은 산 위에 커다란 정자인 ‘동백정’이 있다.
 
길은 2개다.
 
하나는 올라가는 길이요,
 
하나는 내려오는 길이다.
 
내려오는 길은 가파른 계단이다.
 
올라가는 길의 양쪽에 동백나무가 빼곡하게 심어져 있다.
 
천천히 감상하면서 올라가는 맛이 삽상하다.
 
아름답기로야 역시 동백꽃이 활짝 필 때가 가장 아름답다.
 
삶이 아무리 황홀하다 한들, 동백보다 붉을 순 없다.
 
반들거리는 진초록 잎사귀 사이로 촘촘히 고개를 내민 동백꽃은 마치 붉은 보석 같다.
 
요염하면서도 순박하고, 앙다문 꽃봉오리들은 수줍기 수줍다.
 
질 때는 또 어떤가.
 
자신의 시든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듯 모가지가 통째로 떨어져 내린다.
 
시인은 “모든 언어를 버리고/ 오직 붉은 감탄사 하나로/ 허공에 한 획을 긋는/ 단호한 참수”(문정희 ‘동백꽃’ 중에서)라고 그린다.
 
삶이 아무리 처연하다 한들 낙화보다 처연할 수 없다.
 
그 아름다움으로 마량 동백나무 숲은 1965년 4월 천연기념물 169호로 지정됐다.
 
꽃이 피려면 아직 멀었다.
 
동백(冬柏)은 이름처럼 겨울에 피는 꽃이다.
 
마량의 동백은 3월 중순께 시작되니 봄을 알리는 전령이라 해야 맞다.
 
동백이라기보단 춘백(春柏)이 가깝다.
 
망울이라도 보려면 족히 다섯 달은 기다려야 하리라.
 
붉은 꽃은 없어도 짙은 녹색만으로 괜찮다.
 
광택이 흐르는 잎이 많이, 빽빽하게 붙어 있어 참 곱다.
 
진초록 잎을 단 나무는 바닷바람과 맞싸워 자신의 몸을 지키느라 위로 뻗기­보다는 옆으로 생장을 거듭해 굵고 구불거리는 괴목이 되어 있다.
 
그 몸에서 벌써 500번이나 무더기로 꽃을 피우고, 무더기로 꽃이 져 내렸으니 그 몸뚱아리를 보는 것만으로 감동이다. 꽃이 없어도 찾고 싶은 이유다.
 
동백정에 오르면 푸른 서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 자리에 동백정이란 정자가 있었음은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서 확인되고 있다.
 
언젠가 무너져 내렸고 1965년 한산군 청사 누각을 옮겨와 이곳에 다시 세운 게 지금의 동백정이란다.
 
‘동백정(冬柏亭)’이라는 현판은 박정희 대통령이 쓴 것이라고 하고. 멀리 오력도가 보인다.
 
노을이 내리고 지는 해와 섬이 어우러지면 기가 막힌 광경을 맛볼 수 있다.
 
마치 그림물감을 풀어 놓은 듯 번지는 황금빛 노을은 아름답다는 말이 헛될 만큼 매혹적이다.
 
바다에 보석을 뿌리는 노을은 푸른 동백나무 숲을 붉게 물들이며, 간혹 번쩍이는 반사광은 동백꽃이 핀 듯도 한데, 그렇게 동백꽃 필 날을 하루하루 기다리고 있다.
 
가는 길 | 대전에서 공주서천고속도로 동서천 IC로 나와 국도 29호선, 금강하굿둑에서 우회전해 국도 21호선을 타고 서면사무소 삼거리에서 우회전해 홍원항 입구 삼거리를 거쳐 동백숲 입구 삼거리에서 우회전하면 동백나무 숲 주차장이다.
 
마량항 | 1816년 영국이 중국에 파견한 사절단의 맥스웰 대령이 서해안 탐사를 위해 마량에 왔다가 배를 찾아온 마량첨사 조대복에게 성경을 건네주었다는 우리나라 최초의 성경 전래지다.
 
일몰과 일출을 함께 볼 수 있어 유명한데, 마량 일출은 매년 동지를 전후로 60일 간 볼 수 있다.
 
홍원항 | 가을의 맛 하면 전어와 꽃게다. 이 전어와 꽃게 축제가 열리는 맛항이다. 
 
전어는 뼈가 굵어졌지만 꽃게는 지금 속이 꽉 찬다. 가을 꽃게는 역시 수게. 한입 베어 물 때마다 쏟아지듯 흘러내리는 속살은 생각만으로도 입 안 가득 침이 고인다.
 
신성리 갈대밭 | 이 가을 서천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다. 금강을 따라 펼쳐진 갈대밭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다른 곳은 들어갈 수 없지만 신성리 갈대밭은 직접 안으로 들어가 갈대들의 합창을 만끽할 수 있다.
 
하늘거리는 갈대는 달빛이나 역광으로 봐야 운치가 있다.
 
조류생태관 | 금강 하구가 내려다보이는 마서면 장산로에 있다.
다음달 6일부터 8일까지 3일간 ‘2015 서천·군산 금강철새여행’이 열리니 참고해 두자.
 
‘금강 길목에서 만난 자연, 그리고 사람들’이란 주제로 금강과 서해가 만나는 금강하구를 배경으로 겨울철새의 신비를 살필 수 있다. 
 
철새먹이주기, 생태둥지 만들기, 습지퍼즐놀이 등 다양한 체험활동과 놀이가 준비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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