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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원의 렌즈로 보는 세상] 잡초의 삶속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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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5.10.19 16:39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유등천의 풀꽃들

언제였던가. 라디오 연속극에서 불합리한 사회적 구조에서 모진 핍박을 받으면서 생활하는 주인공 청년은 저 길가에 있는 잡초처럼 밟히고 밟혀도 끈질기게 살아남을 것이라고 자기의 기질과 각오를 다짐하는 대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렇듯 끈질길 생명력을 가지기에 잡초는 시골의 밭두렁 논두렁에는 물론 밭에, 논에, 산속에, 강가에 지천으로 살아갑니다. 잡초는 썩어서 그리고 생초로도 온갖 곡물과 동물을 먹여 살립니다. 물론 논밭에 벼나 보리 등의 작물들이 자라고 있을 때에는 잡초를 뽑아내는데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닙니다. 어릴 적엔 우리 농사일을 맡아서 하시는 아저씨는 저녁 때만 되면 잡초를 한바지게 베어와 소에게 먹이로 주면 그놈은 밤새도록 되새김질 하던 것이 생각납니다. 예전엔 밭농사와 벼농사를 위한 밑거름으로 잡초를 썩혀 두엄을 만들어서 농작물을 심기 전쯤에 밭과 논에 뿌려줍니다. 여름밤에는 저녁을 먹고 마당에 멍석을 깔고 이웃들과 함께 둘러앉아 동네 이야기나 낮에 마치지 못한 일을 할 때 약간 마른 풀과 생풀을 섞어 태우면 연기가 엄청나게 나와서 득실거리는 모기들을 쫓아버립니다. 그 연기 속에서 풍겨나는 냄새의 구수함은 지금도 코 속에서 맴도는 것 같습니다.

저 푸른 초원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년 살고 싶다는 노래가 있지요. 그 집을 둘러싼 산과 들은 울창한 나무들, 무성한 과수와 온갖 아름다운 화초들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운치를 땅위에 이루어 빛내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 바닥에 저 수만 가지의 이름도 모를 풀꽃들이 피어 엉클어진 초록이 받침이 되어주어, 고운 옷을 차려 입은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처럼 보여주는 것이지요. 잡초는 일부러 씨 뿌리고 가꾸지 않아도 바람에 날리고, 비 오면 움이 돋아 저절로 피어 나부끼는 가지가지 어여쁜 빛깔과 모양을 만들어, 산천이 아름다운 의상을 곁들이도록 돕고 , 맑게 갠 하늘빛과 아우른 삼라만상은 멋진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잡초는 민초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민초는 오랜 역사를 통하여 억세고 질긴 삶을 지켜 온 서민과 그들을 일시적으로 억압하는 사회세력과의 관계를 암시하는 것으로도 이해될 수 있습니다. 들판의 수많은 풀처럼 이 세상에 언제나 무수히 있어왔던 서민들, 풀이 끊임없는 시련을 견디며 삶을 지키고 번성하였듯이 그렇게 살아왔던 민중의 삶이 그 잡초에 녹아있습니다. 이렇듯 잡초는 자기의 희생으로 세상을 풍요롭고, 깨끗하고, 아름답게 합니다. (사진은 유등천의 풀꽃들입니다.)

서인원(전 한국해양연구원 운영관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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