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는 무더운 한여름에 바다 위를 나르는 더위를 잊게 해주는 바닷새로 인간과는 여러 가지로 불가분의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무릇 자연에 인간이 손을 닿을 때 흔히 조화와 균형을 잃게 됩니다. 우리들의 텃새 괭이갈매기들의 앞으로의 운명을 생각해 봐도 우리 인간의 무자비함을 증오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 사는 곳을 멀리 떠나 외딴섬에서 저항할 줄도 모르는 그러한 갈매기를, 인간들이 한약방에서 약으로, 알은 알대로, 똥과 보금자리의의 흙은 비료로 이용하기 위하여 인간의 손에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고사에 의하면 바닷가에 한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그는 갈매기를 좋아 했습니다. 아침마다 바다로 나가서 갈매기와 같이 놀았습니다. 그러면 갈매기는 무수히 날아와서 그를 기쁘게 해주었습니다. 하루는 그의 아버지가 "들으니 너는 아침이면 바다로 가서 갈매기와 노닌다고 하니, 너만 그렇게 좋아할 것이 아니라, 그 갈매기를 잡아와서 나도 즐겁게 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이튿날 다시 바다로 갔습니다. 그러나 갈매기는 전날과 같이 춤추며 날아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는 갈매기에 대한 인간의 무자비성을 증오하고 인간을 피하여 떠난 것입니다. 그 후로는 갈매기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리차드 버크의 우화소설 ‘갈매기의 꿈’에서, 단지 먹기 위해 나는 것에 안주할 수 없는 갈매기 조나단은 가능한 것 같지 않은 ‘완성과 초월’을 향해 비상하는 꿈을 꿉니다. 피나는 자기수련을 통해 조나단은 꿈을 실현해 나갑니다. 꿈을 실현한 조나단은 자기만족에 그치지 않고 동료 갈매기들을 초월의 경지와 그것에 도달 할 수 있는 길로 이끕니다. 여기에서 작가는 ‘인간 모두에게 잠재해 있는 초월적 능력을 스스로 불러 일으키기만 하면 누구나 초월적 존재가 될 수 있다’ 는 자신의 신념을 갈매기 조나단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지만, 결국 우리 일반 갈매기들은 배가 선창에 닿기까지 계속 따라오는 손님일 뿐입니다. 두어 시간 동안 이들은 자유롭게 날아다니면서도, 가끔 배위에 떨어진 빵이나 과자 조각을 집으려고 내려오며 의기양양 하는 모양을 자세히 관찰하면 항공회사 조종사들은 아마추어에 불과하다는 느낌조차도 듭니다. 그래서 모든 삼라만상은 자기가 있는 곳에서 자기의 역할이 주어진 것이 아닐까요.
서인원(전 한국해양연구원 운영관리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