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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 죽음으로 보는 대중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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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5.09.17 16:49
  • 기자명 By. 충청신문

박 희 석 편집국 부국장

심리학 용어중에는 방관자(dispander)라는 용어가 있다. 미국에서 밤길에 집에 들어가려던 한 젊은 여자가 괴한의 피습을 받아 살해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빈번이 발생하는 범죄현장은 그러나 뉴욕타임즈가 ‘이 젊은 여자의 죽음을 주민 32명이 보고 있었지만 누구도 비극을 막지 못했다’고 밝히면서 세계적인 이슈가 된 적이 있다. 그 결과 이 마을은 모두가 한 생명의 죽음을 방관했다해서 전 세계인으로부터 잔혹한 질타를 받았다. 공범자로 몰린 주민들은 하나씩 둘씩 모두 마을을 떠났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이 사건 하나로 이 일대는 그 책임의 댓가를 치르고 있다. 방관자(dispander)가 곧 그런 것이었다. 나중 그러나 시실은 기사보도와 전혀 달랐음이 밝혀졌다. 경찰에 신고했고 일부는 범인을 향해 ‘그 여자를 내버려 두라’고 고함질렀다. 그러자 범인은 흠칫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 살인행각을 저질렀다. 한참 뒤 경찰이 나타났고 결국 여자는 죽었다.

이 사례가 여전히 우리 사회를 혼란스럽게 괴롭히고 있다. 며칠전 시리아 세살 난민 쿠르디 죽음을 보도한 한장의 사진이 전 세계인을 인간본연의 모습으로 되돌렸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론은 그러나 ‘인간은 자기 눈으로 보지 못한 타인의 고통에 공감 못한다’가 답이다. 지금 세상이 그렇다.

담배 피우는 청소년들을 나무라는 어른이 이들에게 봉변을 당해도 누구하나 나서서 잘못을 꾸짖지 못하는 사회가 한국 사회다. 어른이 자녀들을 훈육하지 못하는 나라. 그래서 학교폭력을 막자고 경찰력을 학교로 들여 보내고 강압적 수단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나라. 이것이 한국사회의 모습이다.그 결과 교권이 회복되었는가. 우리 자녀들의 행복지수는 높아졌는가. 아니다.

뿐만 아니다.이제 학교밖이 더 문제가 커졌다.일탈이 일상화 된 학교밖 청소년들이 급증하고 있지만 대책다운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정부가 바로 한국이다.

어찌보면 방관자는 우리 자신의 모습일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영토와 생존문제로 살육을 일반화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어린이를 보면서 무관심하게 지나치는 것과 같으니 말이다.

하지만 시리아 내전을 피해 부모를 따라나선 세살베기 어린아이의 참혹한 주검이 세상에 알려지자 극도의 거부감을 느꼈던 유럽 국가들이 난민수용을 허락하면서 이들의 고단한 여정에 희망이 됐다.

빨간 옷에 청색 반바지를 입은 세 살배기 어린아이가 해변가 모래사장에 얼굴을 반쯤 파묻은 채 죽어 있었던 사건. 아이의 이름은 아일란 쿠르디. 내전의 참화로 고통받는 시리아 난민이었다. 가족과 함께 그리스 코스 섬으로 가려다 배가 난파해 사망했다.

이 장면을 취재한 사진기자는 당시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아일란을 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오직 사진을 찍는 일 밖에 없었다”고…….

하지만 이 한장의 사진이 온 세계 사람들을 울렸다.유럽은 난민에 대한 빗장을 풀었다. ‘난민이 들어오지 못하게 당장 막아라’는 기사를 1면에 대문짝만하게 실었던 영국 타블로이드 신문 ‘더 선(The Sun)’ 마저 ‘이것은 삶과 죽음의 문제다’라며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에게 난민 대책을 촉구하는 기사를 1면에 내보냈다.

우리 국민들도 마찬가지 였을 것이다. 가슴을 찢고 우리를 다시 되돌아보아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커졌을 것이다.

남북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지금, 우리 국회는 북한인권선언 채택을 10년만에 채택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우리 국회가 가자 지구의 어린 아이들의 고통에 둔감했던 것처럼 쿠르디의 사진에도 아무렇지 않았을까.아닐 것이다. 그러니 이제라도 북한인권문제를 결의하는 것은 아닐까.

만약 우리가 쿠르디의 사진을 보지 못했다면, 우리는 이 사건을 무시했을 게 분명하다. 어쩌면 난파된 상황에서 고통 받는 아이의 목소리가 녹음돼 세상에 공개됐다고 해도 결과는 별반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쿠르디의 사진을 우리 두 눈으로 확인했기에 우리는 아이의 고통에 공감했고 눈물을 흘렸다. 그래서 쿠르디와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게 됐다.

옛날 조선시대에도 왕이 평복을 입고 백성들이 사는 곳을 암행했다고 하지 않는가. 오늘날 한국의 리더들은 낮은 곳으로 내려오기 위해 더욱 더 노력해야 한다.
 

박 희 석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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