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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삶, 도돌이표로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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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5.09.08 16:00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이 정 희 시인. 둥그레동인회장
바람이 서늘하다. 하지만 볕은 따가워서 여름으로 되돌아간 것 같다. 도돌이표라는 말이 생각난다. 새벽으로 이불을 끌어다 덮은 지는 벌써 오래 되었다. 밤에 외출할 때는 겉옷을 입어야 하는데도 낮에는 덥다. 본격적인 익힘을 위해서도 아직은 무더운 게 당연하고 날씨 또한 그래서 여름으로 되돌아가 결실을 준비하는 것일까.
 
도돌이표는 가장 기본적인 음악 용어로, 이 표시가 나올 때는 다시 되돌아가서 연주하거나 노래하게 된다. 음악의 특징은 일정하게 음이 반복되는 거지만 도돌이표가 있어 더욱 확실해지듯 가을도 한여름 같은 땡볕과 무더위로 익는다. 영그는 일도 싹이 터서 자라는 과정만치 중요하기에 후텁지근한 날씨가 계속되었나 보다. 일차 영근 것 같아도 몇 번 무더워가 이어지면서 거듭 익히는 셈이다.
 
한여름 더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나 선선해진 후라 그런지 힘들다. 견디다 못해 창문을 열면 창밖의 여름이 한눈에 들어왔다. 대추나무 한 그루가 온몸으로 땡볕을 받고 서 있다. 손톱만한 대추가 조발조발 달렸다. 아직은 퍼렇지만 잠깐 새 연지를 찍은 듯 붉어 추석상에도 올라가겠지. 깻잎 또한 나물을 무쳐도 부드럽다. 맛은 똑같은데 억세지 않고 차분한 게 느껴진다. 칡덩굴처럼 뻗어나가던 기세를 끝으로 익힘이 시작되는 성 싶다.
 
가으내 몇 번씩 여름으로 되돌아간 결과다. 되돌아가기만 할뿐 성과가 없다면 제자리에 머무른 것 밖에 되지 않으나, 지루하기 쉬운 한계를 뛰어넘은 익힘은 인내로 다져지는 삶의 궤적과 풍성한 가을의 분수령을 이룬다. 주제를 확실히 드러내는 게 도돌이표의 효과라면 번거로운 과정을 견디면서 추구하는 결실보다 엄숙한 건 없다.
 
우리 삶에도 수많은 도돌이표가 있다. 과거로의 유턴은 아니고 추억 속에서 돌아갈 때도 현실로 돌아오면 안개처럼 사라지지만 그 또한 인격적 성장이 된다. 직접 가 볼 수는 없어도 그 때를 생각하며 사색의 장을 넓히고 돌아볼 동안 높은 차원의 품성으로 바뀐다. 밤이면 또 우리 하루를 반성하게 되지 않던가. 서늘해진 뒤에도 한여름 같은 무더위로 곡식을 영글게 하는 가을처럼 우리 또한 늘 되돌아가 허점을 보완하면서 내실을 다진다.
 
요즈음 무더위가 힘든 건 사실이다. 콩은 아직 퍼렇고 팥도 그냥 남아 있어 남은 더위로 익혀야 되는 줄은 알지만 여름에 더운 것은 그나마 견딜만한데 가을에는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탓인지 짜증이 날 정도다. 그나마 수월하다고 보는 건, 악보 중간에 표시된 짧은 도돌이표는 건너뛰는 일없이 쭉 나아가되 악보 처음으로 가는 도돌이표는 소절이 많은 대신 건너뛰게 되는 것처럼 무더운 중에도 시기는 더러 짧아질 수 있다.
 
도돌이표라 해도 배경은 여러 가지다. 중간에 표시될 때는 그 자리만 돌아갔다 오지만 D.C(디카포)와 &(달세뇨) 등은 읽기가 쉽지 않다. 끝나는 것도 일반적인 도돌이표와는 달리 몇 소절씩 혹은 더 많이 건너뛰면서 복잡해진다. 날씨도 초가을 바로 앞의 즉 막바지 여름의 기후가 잠깐 나타나고 어느 해는 뜻밖에 길어서 다양한 도돌이표 그대로다. 악보가 짧은 건 문제될 게 아니지만 생각보다 길거나 짧지 않은 것처럼 지루하다 싶을 때는 속히 종결되기도 한다.
 
시작과 끝이 순탄하게 나갈 때는 문제될 게 별반 없다. 악보 또한 간단할 때는 수월해도 웬만치 수준에 이를 때는 단순히 돌아가는 게 아닌 건너뛰면서 돌아가야 되는 등 복잡하다. 명곡일수록 악보가 어렵고 까다로운 도돌이표가 자주 나오듯 원숙한 삶을 위해서는 어디서 어떻게 되돌아가야 할지 혹은 끝나는 자리까지 정확히 파악하지 않으면 뜻밖의 혼란을 야기하게 된다.
 
이 정 희 시인. 둥그레동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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