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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쓰는 역사] 충장공 남이흥 비장한 순국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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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5.09.07 17:34
  • 기자명 By. 충청신문
글/ 남균우
 
2부. 성장 
 
이별하는 회포는 술을 마셔도 씻을 길이 없구나.
압록강 물에 안개가 자욱하고 
용만(龍巒)의 묏부리는 월색만 가득하여라.
괴롭게 시를 읊조리는데 겸하여 병이 드니
긴 휘파람이 도리어 무료하구나.
거울 속에 비친 백발은 새롭기만 한데
하늘가에서 검은 배자가 떨어지누나.
봄바람에 준마를 달려서 옛 친구를 자주 찾아주오.
<이이첨의 한시 번역본>
 
위에 기록된 이 이첨의 시의 내용으로 보아 유명한 세도가이며 간신배였던 이이첨 같은 사람도 남이흥의 고매한 인품을 알아보고 존경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남이흥은 이이첨11)이 세도가로 후에 권세를 잡아 간흉하게 굴자 서로 찾던 문전에 절교를 하고 발을 끊었다고 한다. 
 
이 시기에 남이흥이 호영에 있었는데 이이첨이 종에게 편지를 들려 보냈으나 받지 않고 적봉(赤棒: 군관이 갖는 봉)을 휘둘러 쫓아 보냈다고 하니 불의와 타협을 아니 하는 강직한 성품을 알 수 있다.
 
■1610년(35세) 용천군수(종4품) [광해군 4년]
 
■1611년(36세) 
 
이때는 현직에서 사임함. 오성 이항복12) 정승이 제찰사로 있으면서 덕망이 탁월하고 능력 있는 무관을 휘하에 모으고 있었다. 
 
남이흥도 여기에 뽑혀 이에 참여하였으나 이 해에 다시 체부의 천거를 받아 부령부사를 임명 받았다.
 
■1613(38세) 
 
이때 남이흥은 이항복의 유배지인 북청에서 가까운 부령에서 부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는 병기를 정리(精利)하게 갖추고 군량을 비축하여 6진 중 부령을 제일가는 고을로서 갑위(1등)에 있게 하였다. 
 
어사가 부령의 실정을 검열한 결과 모든 것이 빈틈없이 정비된 것을 보고 임금께 장계로써 올리니 정부에서는 가상히 여겨 그를 통정대부 정삼품(당상관)으로 승진시켰다. 남이흥은 그 무렵 부상을 당하고, 그 부상 때문에 부령부사의 직을 을 사임했다.
 
■1614년(39세)
 
부령부사 재임 시의 치적에 공이 많았고 국경 경계를 침범하는 적을 소탕한 공이 인정되어 가선대부(종2품)에 승진됐고 곧이어 부총관 겸 포도대장 겸 군기사 제조를 임명받았다.
 광해 107 08/09/10(무인)
 
■1615년(40세)
 
공홍(공주+홍성=충청도를 말함) 병마절도사를 임명 받음. 흐트러진 기강을 바로잡고 관원들에게 엄명을 내려 난폭한 행실을 막았고 민폐를 없애서 주민들의 환영을 받았으니 영속들이 모두 기뻐하였다. 
 
이즈음 이이첨의 하인들이 그 주인의 권세를 등에 없고 양민을 괴롭히는 난폭한 행동을 수없이 자행하였으나 이이첨의 세도에 눌려 이속들도 그들을 감히 다스리지 못하고 있었다. 
 
병마절도사에 부임하여 이 정황을 알게 된 남이흥은 가차 없이 그들을 검거, 죄상이 악독한 놈을 엄히 다스려 장살하기에 이르렀다.14)
 
괴로움을 당하던 양민들은 모두 쾌재를 불렀으나 이이첨의 사주를 받은 대사간원 등이 임금께 탄론을 무려 7차례나 제기했으나 광해군은 ‘남이흥의 일은 본도의 감사로 하여금 사실을 조사하여 아뢰게 하라’하여 의논하여 처리하게 하였다. <조선왕조실록 광해군 108 08/10/03(경자)> 
 
사간원이 아뢰기를 지금 공홍감사가 병사 남이흥에 대하여 조사하여 보고한 장계를 보니 읍비를 위협하여 간통한 일은 비록 분명치 않았으나 곤장을 맞고 죽은 사건은 과연 사실이었습니다. 임금은 존귀하기가 짝이 없는 직위인데도 죄 없는 사람은 한사람이라도 죽일 수가 없는데 그 변방의 신하가 왕명을 받고 외방에 있으면서 어찌 감히 죄 없는 백성을 멋대로 죽이는 일을 사사로이 이행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 족속들의 고소로 인하여 죄 없는 자를 곤장으로 죽인 일의 정상이 환하게 드러났으니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남이흥을 잡아다가 엄하게 국문하여 율대로 죄를 정해서 지방관이 명백하게 조사한 것을 증시하소서.(조선왕조실록 원전 32집 322면).
 
그러나 임금(광해군)은 남이흥의 치적이나 이 일의 경위를 참작하여 큰 문책을 하지 않았고, 그 직위에서만 물러나게 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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