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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멀리 가려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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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5.09.01 19:15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이 정 희 시인. 둥그레동인회장
빨리 가려면 혼자 가라고 했다. 그러나 멀리 가려거든 함께 가라고 했다. 아프리카의 동부 지방에 성인식이라는 의식이 있고 거기서 나온 말이라는데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성인식이 시작되면 소년들은 빨리 가고 싶은 마음에 혼자서 막 달려간다. 나흘간의 말미를 주고 멀리 떨어진 강에 가서 물을 떠오도록 하는 것인데, 문제의 강에 닿으려면 수많은 봉우리를 넘어야 하고 가다 보면 야영을 하게 된다. 이미 알려진 대로 아프리카에는 사나운 동물이 많은데다가 언제 출몰할지 모르는 위험지대다. 빨리 가고 싶어서 혼자 달려온 소년들은 혼자 무서워 떨며 밤을 새운다. 그렇게 이틀 사흘 잠도 못 자고 나아가다가 지쳐 그냥 돌아간다는 거다.
 
그러나 동무와 함께 나선 사람들은 다르다. 처음 떠날 때는 뒤처지다가도 밤에는 교대로 망을 보기 때문에 단잠을 잘 수 있다고 한다. 둘이 도란도란 얘기도 나누면서 갈 테니 지루한 줄도 모를 것이다. 그렇게 며칠간의 여행 끝에 마침내 강에 이르러 물을 떠 갖고 돌아가 무사히 성인식을 치르는 것이다. 혼자 가는 것보다 더디기는 해도 천천히 나아가면서 원만한 노정이 되고 그게 먼 길을 가는 비결이다.
 
우리도 인생이라는 길을 향해 간다. 어떤 사람들은 혼자 가벼운 마음으로 또 어떤 사람들은 동무와 오순도순 얘기도 나누면서 나가겠지만 멀리 가기 위해서는 누구든 동행하는 게 바람직하다. 혼자 가는 게 홀가분하기는 하나 일례로 바다만 해도 태풍이 불고 파도가 치는 게 다 이유가 있다. 아득히 수평선 너머까지 배 한 척 보이지 않고 물결마저 잔잔하면 더 무료해지고 그런 속에서 자기가 타고 있는 배는 한 장 나뭇잎같이 작아 보일 테니 파도가 치기라도 하면 무료함은 가시지 않을까 싶다.
 
함께 가는 길은 마음 맞는 친구 혹은 평생을 같이 할 배우자와 가는 길 등 여러 가지 유형이다. 그 외에 스승과 제자 또는 취미가 같은 사람끼리 가기도 하는데 어떤 경우든 혼자일 때와는 달리 무료하거나 피곤치 않다. 티격태격 다투기도 할 것이나 얼마 후에는 관계가 원만해지는 배경이 삶의 묘리다. 소소하게 부딪치는 가운데 모난 기질이 부드러워진다. 혼자라면 다툴 일 없이 조용하게는 살겠지만 인격적인 변화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성인식을 치른 소년들 역시 수많은 갈등이 있었겠지만 그래서 맹수가 나오는 산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다툴 때는 같이 가는 게 피곤한 일이었으되 험준한 산에서는 교대로 망을 보면서 잠잘 수 있고 그게 함께 가는 길의 정겨운 모습이다. 혼자 가다가 견디지 못하고 돌아선 소년들과는 달리 교대할 동안 자기는 물론 상대방의 안위까지 책임지면서 형성되는 유대감이야말로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는 소중한 감정이었다.
 
눈 감으면 슬라이드처럼 돌아가는 환영이 보인다. 빨리 가려거든 혼자서 가라고 그러나 멀리 가려거든 함께 가라는 메시지와 함께 험한 노정을 답파하는 아프리카 소년들이 스쳐간다. 둘이서 혹은 삼삼오오 짝을 지으며 눈도 뜨기 어려운 열풍을 뚫고 나아가는 모습이 한껏 어기차 보인다. 그렇게 의지하고 나아갈 때는 제아무리 험한 길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우리 또한 삶이라는 바다에서도 잡은 손을 놓지 않는다면 무사히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아프리카의 성인식은 멀리 가는 것에 익숙해져야 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게 또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면 더불어 가는 길에 의미가 있지 않을까. 성인식을 마친 소년들이 대부분 혼자가 아닌 함께 가면서 강물을 떠 온 것만 봐도 이는 곧 멀리 가기 위한 동반자의 역할을 나타낸다. 갈 동안 다툼은 계속 이어지지만 둥글어지면서 원만한 삶으로 바뀐다. 혼자 떠난 소년들이 밤이면 뜬눈으로 새운 것과는 달리 탈없이 강물을 떠갖고 돌아가 무사히 성인식을 치른 것처럼 말이다.
 
이 정 희 시인. 둥그레동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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