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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쓰는 역사] 충장공 남이흥 비장한 순국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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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5.08.31 20:33
  • 기자명 By. 충청신문

 1부 만남

 

글/ 남균우

 

그런데 그 정당 위차를보면 ▶주벽으로 평안병사 의춘군 남이흥 ▶동무위차 : 평안우후 박명룡, 강계부사 이상안, 용천부사 이희건, 개천군수 장돈, 태천현감 의흥군 김양언, 맹산현감 송덕종, 증 병조참의 김언수, 훈련봉사 북영장·한덕문으로 하고 ▶서무위차 : 안주목사 겸 방어사 김준, 구성부사 전상의, 영유현령 전영장 송도남, 박천군수 윤혜, 증 호조좌랑 함응수, 동지중추부사 중군 양진국, 천총, 임충로를 서무좌로 했다.

광주직할시에 건립된 ‘충민사’ 사당은 안주의 ‘충민사’에 모셔져 있는 분들 중 이 지역 출신인 전상의 장군 한 분만 뽑아서 현창하고 있는데 주벽인 남이흥 장군을 비롯한 다른 분들에 대한 설명의 안내판이 세워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단, 전상의 장군의 출신지가 광주시이고 광주 출신 선열을 추모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 할 수도 있겠으나 충민사는 ①나라에서 사액한 사원이며, ②남이홍 이하 여러분의 충성스런 공적에 의해 이루어진 사당인데 그 중에서 한분만 뽑아서 현창한다는 것은 다른 분들의 공적을 상대적으로 죽이는 것이 아닌가 염려가 되고 또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 되지 않는 것이라 생각이 되고 그리고 애국충혼에도 지방색을 가리는 못된 결과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염려하지 않을 수가 없지 않은가 생각된다.

다시 말하면 충민사라는 사당은 정묘호란 때 공을 세운 남이홍 장군이하 여러분의 애국충절을 찬양하고 엄숙히 모시는 안주에 있는 임금님이 사액한 사당의 이름인데 안주성 싸움의 총대장으로 총지휘한 주역인 남이흥 장군은 물론 휘하 여러 장수들은 모두 빼고 그 휘하인 전상의 장군만 모신 개인 사당을 지으면서 충민사라는 이름을 함부로 붙여 현창하는 것은 바른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 되고 혁혁한 공을 세우고 순국한 다른 선열들을 무시하는 것이 되고 있으니 그 부당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으며 속히 시정해야 옳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외적에 저항하며 조국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용감히 싸우다가 중과부적으로 승산이 없자 많은 적을 유인 화약고에 불을 지르고 많은 적과 함께 순국한 남이흥 장군과 휘하 여러 장수들의 숭고하고 비장하며 거룩하고 귀하고 위대한 우국정신은 일언반구도 없으니 정묘호란의 쓰라린 치욕에 울분하고 아픈 애국의 정신을 후손들이 어떻게 알 것이며 또 충민공이라는 명칭은 위대한 공훈을 세운 사람에게 나라에서 즉 임금이 내린 시호인데 전상의 장군이 충민공이라는 시호를 받았다는 사실은 역사기록에는 전혀 없으니 어찌 된 일인가.

후세의 권력자가 자의로 붙였다면 크나큰 망발이며 시호를 받은 다른 여러분들에게는 수치이고 이런 일을 자행한 당사자의 머리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가 남이흥 장군의 전기를 쓰면서 여러 자료를 접한 결과 모르던 사실도 알게 되었고, 이 분이야말로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추앙을 받아야 할 정말로 훌륭한 분이라는 점을 절실하게 느꼈다.

이 분의 위대한 공적 중 추앙할 점을 요약하여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 남이흥은 공직 생활 26년에 목민관(牧民官) 7번 곤월(대장) 3번 도합 10차례를 역임하였는데, 백성들이 공을 사모하고 찬양하여 노래를 지어 부르거나 송덕비가 세워진 곳이 7곳이다.(다른 책에는 노래는 없고 송덕비만 7곳으로 되어있음)

2. 인조반정 같은 혼란기를 겪으면서도 시기 질투 모함하는 자가 많았으나 인품이 중후하고 온화했기에 중상모략을 수없이 당하면서도 명재상들(이항복, 장만 등)이 보호하고 천거하여 중망에 올랐고 나라를 지키는 간성이 되었다.

3. 이괄난을 평정하는데 주역으로 활약이 커 진무 1등 공신이 되었다.

4. 연안 백성들은 북신사라는 신당을 지어서 공의 화상을 그려 모시고 가뭄이 들거나 역질이 있을 때 기도를 드려 도움을 받으려 했다.

5. 정묘호란 때 안주성 전투시 후금 총사령관 아민은 남이흥 이하 조선군의 충의 정신에 감동하여 충혼을 기리었고 그래서 조선군 포로 수백 명을 석방하면서 고향에 가서 편안히 생업에 종사하라고 했다 한다. 이것은 비록 싸움에는 패했지만 비장한 충의정신이 적장에게 감동을 주어 수백 명 포로를 석방하게 하였으니 정신적으로는 승리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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